르노삼성의 소형 크로스오버, XM3를 뒤늦게 시승했다. 지난해 출시 이후 소형 SUV 시장에 파란을 불러왔지만, 초기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지는 못 하는 모양새다. 직접 타 본 XM3는 소형 SUV를 넘어 준중형 세단까지 넘보는 기대 이상의 상품성을 지녔다. 이제 남은 건 품질을 끌어올려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뿐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형 SUV의 인기가 시들해 지는 추세다. 2020년 1분기 국산 소형 SUV 판매량은 4만 7,432대에 달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21.5% 감소한 3만 7,274대에 그쳤다. 올해 신차가 뜸한 이유도 있겠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대형차 선호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소형 SUV 수요가 줄어든 탓도 크다.
특히 작년 3월 출시 직후 큰 인기를 끌었던 XM3는 출시 1년차를 맞이하면서 초반의 추진력을 많이 잃었다. 첫 달부터 4개월 간 매달 5,000대 넘게 팔리며 동급 1위인 기아 셀토스를 위협했지만, 7월부터 급격히 판매량이 줄어들어 지난달에는 풀체인지를 앞둔 기아 니로를 간신히 넘는 수준에 그쳤다.
물론 QM6 이후 오랫동안 히트작 부재에 시달렸던 르노삼성으로선 이 정도의 판매고도 가뭄에 단비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군다나 경쟁 모델인 셀토스나 트레일블레이저의 판매량이 큰 변화가 없다는 건 XM3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잘 하는 건 이어 나가고, 문제점은 빨리 해결해서 다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승에서는 XM3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했다.
우선 외관에 대해서는 흠 잡을 구석이 없다. 소형 SUV의 작은 차체에서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쿠페형 바디 라인을 성공적으로 뽑아 냈다. QM6보다도 긴 2,720mm의 휠베이스 덕에 전체적인 비례감도 흐뜨러지지 않았다. 여기에 전면부나 후면부 모두 르노삼성의 최신 패밀리 룩이 잘 반영된 모양새다. 동급 경쟁자들이 짧고 껑충한 모습이거나 해치백인지 SUV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스타일인 데 비하자면 외관 만큼은 독보적이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면서 전장도 동급 중에서는 제법 긴 4,570mm다. 출시 당시 “동급 최대”를 강조했던 기아 셀토스와 비교하면 무려 195mm나 길다. 오히려 한 급 위인 현대차 투싼(4,630mm)에 가깝다. 몸집이 커 지니 디자인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넓은 공간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무조건 큰 차가 좋은 건 아니지만 체급에 얽메이지 않고 과감한 선택을 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실제로 차에 타 보면 공간 활용도가 썩 괜찮다는 걸 알 수 있다. 비록 전폭은 소형~준중형 급의 한계가 있는 만큼 좌우로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키 180cm의 기자가 운전석 시트 포지션을 맞춘 뒤 2열에 앉아도 제법 넉넉했다. 소형 SUV, 더군다나 지붕이 낮은 쿠페 스타일임에도 레그룸은 물론 헤드룸까지 충분하다. 오히려 날렵한 스타일을 강조하느라 뒷좌석 헤드룸이 답답한 아반떼보다 낫다. 긴 차체와 패스트백 스타일이 맞물려 트렁크 용량도 동급 최고 수준인 513L로 넉넉한 편.
센터페시아 구성은 최신 르노 모델의 화법을 그대로 따른다.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중앙에 위치하고 토글 타입의 버튼과 3개의 다이얼을 배치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제법 화려하지만, 실물의 재질감이 썩 고급스럽지 않은 건 아쉽다. 물론 차급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메인 디스플레이의 이지링크 시스템은 SM6, QM6에 탑재됐던 S-링크보다는 훨씬 직관적이고 반응속도도 빠른 편이지만, 여전히 그리 편리하지는 않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주행모드를 바꾸거나 열선/통풍 시트를 조작한 뒤 원래의 기본 화면이나 내비게이션으로 알아서 돌아가지 않는 점이다. 잠시만 확인하면 되는 화면인데, 일일히 직접 화면 전환을 해 줘야 한다. UI 구성에 있어서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흔적이다.
파워트레인 라인업은 1.6L 자연흡기 가솔린과 1.3L 직분사 터보 가솔린 등 두 가지다. 시승차는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3L 터보 모델로, 게트락 제 7속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조합된다. 최고출력은 152마력, 최대토크는 26.0kg.m으로 그간 필요충분한 최소한의 성능만 확보했던 르노삼성 치고는 제법 넉넉한 퍼포먼스다.
주행감각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경쾌한 출력과 컴팩트한 차체의 조합으로 제법 운전이 즐겁다. 지나치게 흐느적 거리지도, 너무 신경질적이지도 않고 기분좋게 탄탄하다. 프랑스 차에 으레 기대하는 승차감이다. 특히 고속 주행에서 만족도가 높다. 힘이 넉넉해 언제든 추월가속을 할 수 있고, 고속 안정감도 우수하다. 차선 유지 기능이 빈약한 건 아쉽지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변속기도 이전의 다른 모델들에 비해 반응 속도가 월등히 좋아졌다.
반면 도심 주행의 피로도는 높은 편이다. 1.3L 터보 엔진은 저회전 영역에서 터보 래그가 심해 발진 반응이 굼뜨다. 여기에 반응 속도가 느린 오토 홀드와 스톱 앤 스타트 기능까지 더해져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는 제때 출발하지 못 하거나 울컥이는 거동이 매우 불쾌하다. 소형 SUV 구매자 대다수가 도심 주행을 염두에 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용도에 맞지 않는 세팅이다. 차라리 터보 래그라도 없는 1.6 가솔린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XM3의 전반적인 기계적 완성도나 구성 면에서는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지만, 세세한 세팅의 마무리가 부족하다. 원가와 치열하게 씨름해야 하는 소형차인 만큼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세심함이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원래 작은 부분까지 신경써서 배려하는 것이 르노삼성의 장기가 아니었던가? 향후 연식 변경을 통해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몇몇 흠결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XM3의 경쟁력이 여전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동급 유일의 독보적인 쿠페형 바디,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디자인, 준중형 세단과 견줘도 손색없는 공간 활용도와 갖출 건 다 갖춘 편의사양이 매우 만족스럽다.
소형 SUV에 으레 기대하는 개성과 멋은 물론, 소형 SUV에서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실용성까지 챙겼으니 동급 라이벌들과 싸울 ‘무기’는 충분하다. 생김새만 봐선 틈새 시장용 모델같지만, 실제로는 주류 시장에서 경쟁해도 부족함이 없다. ‘쿠페형’ 딱지를 붙였다고 해서 더 비싼 가격표가 붙지 않은 점도 칭찬할 만하다.
관건은 소비자의 신뢰다. 르노삼성은 XM3 출시 1년 만에 리콜 1회, 무상수리는 5회 실시했다. 신차 효과가 빨리 사라진 데에도 이런 초기 품질 이슈가 주효했다. 앞서 SM6, QM6도 초기 품질 관리에 실패해 판매량이 주저앉은 경험이 있었는데,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XM3는 향후 르노삼성의 핵심 수출 차종이기도 한데, 품질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회사의 장기적인 전망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무리 ‘멀쩡한 차’의 상품성이 좋아도 소비자가 ‘멀쩡한 차’를 받지 못하면 한낱 불량품으로 전락한다. XM3 판매량이 줄어든 원인은 LPG나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어서가 아닌, 믿음이 사라져서다. XM3의 첫 해 성적표를 받아 든 르노삼성에게 남겨진 숙제는 품질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