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의 첫 전기차, DS 3 크로스백 E-텐스는 준수한 주행 성능과 풍부한 편의사양을 갖춘 도심형 전기차다-여기까지는 다른 비교 대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DS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과 고급진 인테리어가 더해져 가장 아름다운 전기차로 거듭났다.
전기차의 상품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주행거리다. 충전소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유소만큼 접근성이 좋지는 않고, 급속 충전기를 사용하더라도 급유만큼 빨리 충전을 마칠 수는 없다. 때문에 1회 충전으로 어느 정도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전기차의 절대적인 평가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차 역시 ‘전기’ 이전에 ‘차’다. 자동차가 만족감을 주는 요소는 실로 다양하다. 승차감이나 퍼포먼스 같은 주행 요소 외에도 디자인, 유니크함, 인테리어 품질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차에 대한 만족감을 형성한다. 때문에 전기차 역시도 주행거리 외에 여러 요소들을 두루 살펴보며 평가해야 한다.
DS 3 크로스백 E-텐스는 그런 의미에서 큰 만족감을 주는 차다. 공인 주행거리는 현재 국내 시판 중인 고속전기차 중 가장 짧은 237km에 그치지만, 다른 요소들의 완성도가 상당하다. 한 번에 먼 거리를 운행할 일이 없는 도심 운전자라면 이 차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는 디젤 엔진이 탑재된 내연기관 버전과 동일하다. 같은 모델로 취향에 따라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한다는 PSA 그룹의 ‘파워 오브 초이스’정책에 따른 것이다. 오직 테일게이트에 붙은 ‘E-텐스’ 레터링만이 이 차가 전기차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조금 더 차별화된 외관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전기차라는 걸 과시하지 않는 점잖음은 마음에 든다.
외관 디자인이야 두 말이 필요 없다. 이 차는 그 자체로서 ‘아방가르드’다. 앞서 출시된 DS 7 크로스백에 비하면 훨씬 전위적이다. “아방가르드를 이해하는 순간 아방가르드가 아니게 된다”던가? 요즘 신차들이 갈 수록 과감한 스타일을 선보여도, 그들을 비웃듯 훨씬 과감한 라인을 사용했다. 가령 상어 지느러미처럼 솟은 B-필러가 그렇다. 1세대 DS 3에서 계승한 요소인데, 작은 차체에서도 강렬한 포인트가 된다.
전장*전폭*전고는 4,120mm*1,770mm*1,550mm다.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푸조 2008과 비교하면 전폭과 전고는 같지만 전장은 180mm나 짧다. 동급 소형 SUV 중에서는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 사이즈만 봐도 이 차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다. 2008은 소형차면서도 공간과 실용성을 최대한 강조한 반면, DS 3 크로스백은 2열과 트렁크 공간을 과감히 포기하고 퍼스널 카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선택과 집중 덕에 더 고급스럽고 아름다워 졌지만, 크로스오버임에도 공간 활용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외관만 보고 놀라기는 이르다. 실내 공간은 더 과감하게 꾸며져 있다. 대시보드 전체와 도어트림까지, 손이 닿는 부위는 모두 화려한 나파 가죽을 둘렀다. 소형차가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 있다니! 어느 회사의 동급 모델과 비교해도 가장 근사하다. 시승차는 밝은 베이지 톤 인테리어가 적용돼 한결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굳이 흠을 잡자면 청바지를 입고 타기 부담스럽다는 정도겠다.
기요셰 세공법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아몬드 패턴이 실내에도 다수 적용됐는데, 가죽 위의 퀼팅 스티치는 물론 송풍구와 각종 버튼류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줄지어 센터페시아를 수놓은 모습도 퍽 매력적이다. 일견 단조로운 대칭 패턴처럼 보이지만, 디스플레이와 송풍구 및 버튼을 살짝 어긋나게 배치해 변주를 준 모습조차도 지극히 프랑스 차 답다. 다만 7인치에 불과한 디지털 클러스터와 메인 디스플레이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작은 차라고 굳이 화면도 작을 필요는 없으니까.
전위적인 안팎의 디자인은 확실히 내연기관보다 전기차에 더 잘 어울린다. 파워트레인은 같은 CMP 플랫폼을 공유하는 PSA 그룹의 소형 전기차들과 같다. 최고출력은 136마력, 최대토크는 26.5kg.m을 낸다. 1.5 디젤 버전과 비교하면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각각 5마력 높고 4.1kg.m 낮다. 크게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므로 퍼포먼스 면에서는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푸조의 e-208이나 e-2008과는 혈연 관계지만, 주행감각은 브랜드 성격에 맞게 제법 많이 손봤다. 당장 가속 페달을 밟아 발진하는 순간의 가속감만 하더라도 푸조의 형제차들보다 훨씬 부드럽다. 쓰로틀의 반응이나 브레이크 답력 전개도 섬세한 편이다. 브레이크는 별도의 회생제동 버튼 따위를 달지 않고 페달만으로 회생제동까지 제어하는 방식으로, 초반에는 다소 이질감이 있지만 이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전체적인 주행 질감은 앞서 시승했던 DS 7과 마찬가지로 나긋나긋하다. 승차감은 탄탄함보다는 부드러움에 포커스를 맞췄고, 작은 차체임에도 우아한 거동이다. 보통 소형차라면 고급스러운 승차감보다는 경쾌한 움직임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DS 3 크로스백은 그런 예상을 벗어난다. 그렇다고 결코 둔한 것은 아니라 마치 사뿐사뿐 뛰어 오르는 발레리나의 몸짓에 가깝다.
전기차답게 초반 가속력은 제법 경쾌한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출력이 아니기에 고속 주행에서는 다소 힘이 부친다. 일상적인 고속도로 주행이나 추월 가속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속으로 장시간 항속주행을 한다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 차가 기본적으로 도심에 더 적합한 이유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환경부 기준 237km로, 현재 국내 시판 중인 고속 전기차 중에는 푸조 e-2008과 함께 가장 짧다. WLTP 기준 주행거리는 320km로, 인증 당시 기대보다 크게 못 미친 국내 인증 결과에 관계자들도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실주행거리는 이 보다는 잘 나오는 편이다.
시승 간에 총 2회 충전을 했는데, 첫 충전 후에는 도심과 고속 구간을 7:3 정도의 비율로 달렸다. 이 때는 주행거리가 280km에 달했다. 반면 두 번째 충전 후에는 90% 가량을 고속도로에서만 달렸는데, 이 때는 약 230km 정도를 주행했다. 특별히 효율을 신경쓰지 않고 주행한 점을 감안하면 실주행거리는 복합 250~260km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주행거리가 400km를 넘어 500km까지 넘보는 전기차들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그 절반 수준인 DS 3 크로스백 E-텐스의 주행거리는 성에 안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중장거리를 단숨에 달릴 수 있는 차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한국 운전자의 일 평균 주행거리는 38km에 불과하고, 이런 통계값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는 기껏해야 하루 수십 km 정도만 차를 모는 운전자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237km의 범위 안에서 도심을 누비는 대다수의 도시 운전자에게는 DS 3 크로스백 E-텐스의 주행거리면 여유를 누리기 충분하다.
더군다나 이 차는 컴팩트하고 개성 넘치는 데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화려한 소형 전기차를 본 적 있는가? DS 3 크로스백 E-텐스는 전기차 세계에서조차 DS만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 주행거리나 가속력보다는 전기차를 탈 때조차 자신의 심미안을 뽐내고 싶다면, DS 3 크로스백 E-텐스는 아직까지 경쟁상대 없는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