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의 준중형 해치백, 308 GT 팩을 시승했다. 머지않아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끝물’ 모델이지만, 그만큼 가격대비 충실한 사양을 갖춰 지금이야말로 ‘꿀물’같은 상품성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프랑스 차 특유의 풍부한 감성까지 더해져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된다.
308은 푸조에서도 허리에 해당하는 모델로, 유럽에서는 C-세그먼트의 절대 강자, 폭스바겐 골프와 맞대결하는 차다. 2013년 9월 현재의 2세대 모델이 출시된 이래로 누적 판매량은 무려 글로벌 150만 대 수준. 우리나라에서도 소형 해치백 208, 중형 세단 508 사이에 위치해 승용 라인업의 볼륨을 맡고 있다.
모델 체인지 주기가 빠른 준중형급에서 7년 넘게 수명을 이어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미 완성도와 상품성이 제법 뛰어난 까닭이다. 현재 PSA 그룹 제품 포트폴리오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모듈형 EMP2 플랫폼을 가장 먼저 사용한 차이자, 현행 푸조 내·외관 디자인의 근간을 세운 “개국공신”같은 모델이다. 덕분에 안팎의 스타일은 큰 터치 없이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국내에서도 2014년부터 판매가 이뤄졌는데, 현재는 1.5 디젤 GT 팩 단일 트림만 판매 중이다. 그간 다양한 트림과 사양의 모델이 들어왔지만, GT 팩이야말로 풀체인지를 앞두고 308에 탑재되는 다양한 사양을 아낌없이 투입한 ‘파이널 에디션’이라 할 수 있겠다.
당장 외관부터도 매우 스포티한 모양새다. ‘GT 팩’이라는 이름처럼, 고성능 버전인 308 GT와 흡사한 바디킷을 적용했다. 형상은 완전히 동일하고 몇몇 포인트의 컬러만 다른 정도다. 헤드램프는 물론 안개등까지도 풀 LED 타입이 적용돼 매우 화려하게 꾸며졌다.
휠 또한 GT와 동일한 디자인의 18인치가 적용됐다.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3. 엔진의 성능에 비하면 꽤 스포티한 기종이다. 높은 출력이 아니더라도 GT 모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운전 재미를 똑같이 느끼라는 의도일까? 보기에는 근사한 조합이다. 리어 범퍼에도 듀얼 머플러 팁이 적용돼 ‘GT 분위기’는 제대로 살렸다.
인테리어 구성은 2세대 308이 첫 출시된 이래로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련돼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2013년에 이미 시대를 크게 앞서 나간 디자인이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낯설기 그지 없었던 인테리어지만, 2021년에 돌아보면 제법 직관적으로 구성된 부분들이 돋보인다.
2세대 308은 1세대 208과 더불어 푸조의 아이콕핏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적용된 차 중 하나다. 아이콕핏의 핵심은 직경이 작은 스티어링 휠과 그 너머로 보이는 계기판, 그리고 운전자 중심의 센터페시아 구성이다. 컴팩트한 스티어링 휠은 여전히 기분 좋게 손에 감기고, 아날로그 타입의 계기판 대신 10인치 디지털 계기판이 적용된 점이 특징이다. 원래 연료계와 수온계가 있었던 클러스터 양 모서리가 비어 보이는 게 흠이지만, 연식 변경에서 이런 사양이 최신 모델과 동일하게 적용됐다는 점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센터페시아는 오토디포그와 환기 버튼, 비상등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운전석 쪽으로 기울어진 메인 디스플레이에 터치 방식으로 탑재된다. 오디오 볼륨 다이얼도 물리 버튼으로 배치되는데, 그 옆의 크롬 가니쉬는 과거 CD 삽입구의 흔적이다. 깔끔한 디자인과 직관적인 조작성은 칭찬할 만하지만, 장점이 그대로라는 건 단점도 그대로라는 뜻이다. 여전히 수납공간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세대 교체 이후에는 이런 부분도 개선되리라.
GT 팩이 적용되면서 실내에도 스포티한 디테일이 더해졌다. 레드 스티치와 타공 가죽 스티어링 휠, 알칸타라 시트 등이 폭넓게 적용되면서 한껏 고성능 분위기를 낸다. 전반적인 공간은 준중형 급에서 기대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뛰어난 개방감을 지닌 푸조 차 답게 차내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은 그 이상이다.
파워트레인은 1.5L 직렬4기통 블루 HDi 디젤 엔진과 아이신 제 EAT8 8속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은 131마력, 최대토크는 30.6kg.m을 발휘한다. ‘오리지널’ GT에 탑재된 180마력을 내는 2.0L 디젤 엔진과 비교하면 아쉬운 출력이지만, 준중형급 해치백에게는 결코 부족하지 않은 성능이기도 하다. 더욱이 디젤 엔진의 특성 상 뛰어난 저속 토크를 발휘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주행감각은 경쾌한 편이다.
특히 이 엔진은 초반 터보 래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지 주행에서도 스트레스가 없다. 더욱이 명민한 자동변속기는 가속 페달의 전개량에 따라 똘똘하게 변속을 해 낸다. 효율 면에서도, 운전 재미 면에서도 흡족한 세팅이다.
다만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건 서스펜션의 세팅이다. 본디 푸조의 하체는 부드럽게 요철을 읽어 내면서도 탄탄하게 차체를 받쳐주는 감각이 일품이었다. 랠리에서 다듬어진 프랑스차 특유의 쫀득한 맛이다. 그런데 308 GT 팩은 얇고 단단한 타이어에 비해 서스펜션이 지나치게 무르다.
잔 요철을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고 때때로 불규칙한 노면을 통과할 때는 허둥대기까지 했다. 도통 불안함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GT와 동일한 휠·타이어를 장착했지만 일반 308의 댐퍼와 스프링을 그대로 사용한 까닭일까? 핸들링과 운전 재미를 기대할 만한 구성임에도 어딘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하체 탓에 그다지 운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다.
물론 이 단점이 308 GT 팩의 나머지 장점들을 모두 상쇄할 만큼 큰 결격사유는 아니다. 대신 근사한 외관과 효율 좋은 파워트레인, 풍부한 편의사양까지 두루 갖췄으니 말이다. 최근 전기차와 친환경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경제성을 앞세운 디젤 컴팩트 카의 수요는 존재한다. 308은 그런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돼 준다.
308 GT 팩의 가격은 3,520만 원이다. 여기에 으레 이뤄지는 약간의 프로모션을 더하면 3,000만 원대 초반에 구입 가능하다. 수입 준중형 해치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이라 ‘가성비’라는 말을 꺼내긴 민망하다. 하지만 동급의 어떤 차도 대체할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을 지녔으니 ‘가심비’ 하나는 최고라 하겠다.
308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인지도’다. 동급 시장의 절대강자인 폭스바겐 골프가 오랫동안 국내 시장을 떠나 있음에도, 대중에게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골프의 수요를 흡수하지 못 했다. 매년 수십 종 신차가 쏟아지는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자기 어필이 필요하다. 물론, 남들이 타지 않는 매력적인 차를 독차지하고 싶은 소비자라면 이런 단점이 ‘숨은 맛집’으로 승화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