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픽업트럭, 리얼 뉴 콜로라도를 시승했다. 이미 검증된 완성도에 야성미 넘치는 디자인을 더해 호감도를 더욱 높인 게 특징이다. 이제는 픽업트럭 시장도 경쟁에 불이 붙었지만, 먼저 자리잡은 이 차의 매력은 한 번만 타 봐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내 차고에 트럭 한 대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이케아에서 책장이라도 하나 살 요량이면 당장 내 차의 비좁은 트렁크에 들어갈 지 계산기를 두들겨 봐야 한다. 꼭 가구를 사지 않더라도 트럭의 압도적인 실용성은 짐을 나를 때는 물론 레저 활동에서도 빛이 난다. 노지 캠핑이나 험지 모험을 즐기는 이라면 트럭에 한 번씩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법규 상 화물차는 개인이 렌트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필요할 때 트럭을 쓰려면 구입하는 수밖에 없다. 소형 트럭의 절대강자인 1톤 트럭들은 너무 상용차의 색채가 짙고, 데일리 카로 사용하기에는 승차감이나 편의성, 안전성이 크게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픽업트럭에 관심이 간다.
현재 국내에서 정식 딜러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 픽업트럭은 쌍용 렉스턴 스포츠, 지프 글래디에이터와 쉐보레 콜로라도, 세 종류 뿐이다. 렉스턴 스포츠는 한국 시장에 특화된 모델이고 글래디에이터는 아이코닉한 랭글러 기반의 가지치기 모델이기 때문에, 픽업트럭의 고향인 미국식 정통 픽업트럭은 콜로라도 쪽이다. 특히 지난 가을 부분변경을 통해 콜로라도의 상품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부분 변경의 핵심은 디자인 변화다. 기존의 외관이 심플하면서 다부진 모습이었다면, 새로운 디자인은 입체감을 살리면서 남성적인 인상을 더했다. 차체 색상과 상관 없이 블랙 컬러가 적용되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범퍼 하단부까지 확장돼 안개등과 연결된다. 쉐보레의 스포츠 쿠페, 카마로 SS를 빼닮은 구성이다. 덕분에 헤드라이트 형상이 기존과 동일함에도 훨씬 세련되고 젊은 분위기다.
후면부도 작은 터치로 큰 인상 변화를 줬다. 테일게이트의 보타이 엠블럼을 삭제한 대신, 음각으로 ‘쉐보레’ 레터링을 박아 넣었다. 사실 바뀐 건 테일게이트 뿐이지만, 넓은 평면으로 구성된 픽업트럭의 뒷모습 특성 상 이것 하나로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테일게이트만 바꿨을 뿐인데 단정했던 기존 모델보다 훨씬 과격하고 야성미 넘치는 인상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외관만 바뀐 건 아니다. 오프로드 성능과 편의사양을 더욱 강화한 Z71-X가 신규 최상위 트림으로 추가됐다. 각종 외관 사양이 추가될 뿐 아니라 힐 디센트 컨트롤, 트랜스퍼 케이스 실드, 각종 ADAS 기능과 무선충전 시스템까지 탑재된다. 기존 콜로라도에서 오프로드를 위한 강화 파츠나 각종 편의사양의 부족이 아쉬웠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가격은 기존의 익스트림-X 트림보다 비싸다.
실내 공간은 상술한 몇몇 편의사양이 추가되긴 했지만 기존과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기왕이면 요즘 없는 차가 없는 스마트 키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조향 보조 기능과 같은 최신 ADAS까지 탑재된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북미 기준 올해로 출시 7년차를 맞이한 픽업트럭에게는 무리한 요구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은 변함없다.
2열 공간도 기존과 같다. 5.4m에 달하는 전장을 생각하면 그다지 쾌적한 공간은 아니다. 성인남성이 타기에 부족하지는 않지만, 오래 탈 만큼 넓거나 편하지도 않다. 편의사양 역시 USB 단자와 시거잭 정도가 전부다. 부분변경인 만큼 극적인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 세대에서나 좀 더 편안한 2열을 기대할 수 있겠다.
큰 변화가 없다는 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탁월한 파워트레인 역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최고출력 312마력, 최대토크 38.0kg.m의 넘치는 출력을 발휘하는 3.6L V6 가솔린 엔진과 8속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아메리칸 픽업의 맛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판 중이거나 시판 예정인 픽업트럭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성능이다.
트럭에 300마력이 넘는 파워가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모름지기 힘은 다다익선이다. 무거운 짐을 실을 일이 많은 트럭은 더욱 그렇다. 묵직한 토크를 지닌 경쟁 모델들의 디젤 엔진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매끄러운 회전질감과 민첩한 반응속도를 지닌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대체 불가능하다.
도로에 나서면 2톤이 넘는 차체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속된다. 힘껏 쥐어짜낸 느낌이 아닌, 미국차 특유의 여유가 넘치는 가속감이다. 이미 오랫동안 검증이 끝난 엔진과 8속 자동변속기의 궁합은 이상적이다. 똑똑한 변속기는 가속은 물론 항속 상황에서의 연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실린더 휴지 시스템(AFM-S) 덕에 공인연비(8.1km/L)보다 높은 실연비를 내는 게 어렵지 않다. 2WD 모드로 주행하면서 기록한 실연비는 9km/L를 넘나들었다.
게다가 탁 트인 높은 시야 덕에 거구를 운전하는 데에 큰 불편함도 없다. 긴 적재함만 의식하면 막히는 서울의 도로에서도 운전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다만 휠베이스도 3,258mm나 되기 때문에 좁은 주차장은 고역일 수 있다. 실제 구매를 고려하는 단계라면 주차 환경을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오프로드 성능 역시 발군이다. 시승차는 오프로드 사양이 강화된 Z71-X 트림으로, 오프로드 주행 시 하부의 손상을 방지하는 트랜스퍼 케이스 실드가 장착된다. Z71-X가 아니더라도 4WD 모델에는 전자제어식 파트타임 4륜구동 시스템과 후륜 LSD 및 디퍼렌셜 락 기능이 기본 탑재된다. 험지 주파능력만 놓고 본다면 정통 오프로더인 지프 랭글러나 랜드로버 디펜더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저지상고는 208mm, 도섭심도는 762mm에 달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부드러운 흙밭에서도 콜로라도는 어렵지 않게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한쪽 바퀴가 그립을 잃으면 재빨리 디퍼렌셜 락이 작동하면서 이내 미끄러운 노면을 주파한다. 긴 휠베이스 탓에 급한 비탈을 오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배가 긁히지 않도록 비스듬히 진입하면 흙바닥을 파헤치며 손쉽게 올라갔다. 오프로드용 타이어가 아닌 걸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등판능력이다.
무엇보다 감탄한 부분은 승차감이다. 콜로라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바디 온 프레임 차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바디 온 프레임 구조는 캐빈과 래더 프레임이 분리돼 있어 하중에는 강하지만 승차감 측면에서는 취약하다. 노면의 잔진동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거나 요철을 지날 때 캐빈이 요동치며 불쾌한 승차감을 유발하는 까닭이다. 모노코크 바디 SUV와 픽업트럭을 두고 고민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콜로라도는 바디 온 프레임 특유의 이질감이 거의 없다. 노면이 좋지 않은 도로를 주파할 때도 특유의 울렁임이나 불쾌함이 전혀 없다. 과연 픽업트럭을 오랫동안 만들어 온 미국 제조사의 저력이 느껴진다.
쉐보레 콜로라도는 마초 냄새 물씬 풍기는 팔방미인이다. 픽업트럭의 본래 용도에 충실해 발군의 적재능력과 견인능력을 갖추면서도 스타일, 퍼포먼스, 승차감을 고루 섭렵하는 뛰어난 완성도까지 더했다. 실용적인 용도로 쓰기에도, 멋스러운 승용차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노지 캠핑을 즐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비록 구조 상 차박은 무리겠지만.
부분변경이 됐음에도 가격은 기존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Z71-X 트림은 기존의 풀옵션이었던 익스트림-X 트림보다 199만 원을, 거기서 좀 더 스타일 업한 Z71-X 미드나잇 트림은 349만 원을 더 줘야 한다. 물론 값어치 만큼의 가치는 있으니 추가 사양에 욕심이 난다면 선택해도 좋겠다. 조만간 미국 내 경쟁자인 포드 레인저가 국내 시장에 투입되지만, 가격 면에서는 콜로라도가 월등히 저렴할 뿐더러 출력이 여유로운 가솔린 엔진을 갖춰 수성전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3,000~4,000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콜로라도는 보다 역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이들을 위한 대형 SUV의 탁월한 대안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용도로 타기에도 충분한 상품성과 성능을 지녔다 다만 딱 한 가지 주의할 점, 콜로라도를 산다면 스마트폰은 충분히 작은 걸 고를 것. 비좁은 무선충전 패드에는 웬만한 크기의 스마트폰이 들어가지 않으니 말이다. 콜로라도를 타면서 찾은 거의 유일한 옥에 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