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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 7 크로스백 시승기, 프렌치 프리미엄은 부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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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까르띠에, 모엣샹동, 생 로랑, 지방시, 셀린느, 발렌시아가… 모든 이들이 탐내는 명품의 세계에서 프랑스 브랜드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전 세계 명품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프랑스 제품에 ‘화려하고 특별하며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리라.

반면 패션, 요리 만큼이나 계층화가 뚜렷하고 럭셔리 시장이 활성화된 자동차 업계에서 프랑스 차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독일 회사인 폭스바겐 산하의 부가티 정도를 제외하면, 순수 프랑스 혈통 브랜드 푸조, 시트로엥, 르노 등은 작고 실용적인 소형차 전문 브랜드의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 고급스러운 대형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소형차 중심의 유럽 시장을 주 무대로 활약하면서 다른 나라 제조사보다 자국 내 수요도, 개발 노하우도, 인지도도 부족한 고급차 개발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떼고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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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지난 2014년, 시트로엥이 고급화 라인업인 DS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시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제조사들은 진작부터 프리미엄 브랜드를 분리해 왔지만, 프랑스 회사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보인 건 처음이었다. 다른 프랑스 명품처럼 화려하고 우아한 신차가 나올 지 내심 기대를 품었다.

그로부터 장장 5년이 지나고서야 한국 땅을 밟은 DS 7 크로스백은 DS 독립 후 처음으로 출시한 글로벌 완전 신차다. 새 브랜드의 첫 신차가 짊어지는 무게는 상당하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미래의 방향성을 한 눈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DS 7 크로스백이 이야기하는 ‘프렌치 프리미엄’이란 무엇일까? 출시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시승을 통해 다시 한 번 짚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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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의 숫자로 차급을 정하는 DS의 작명규칙을 생각하면 DS ’7′은 꽤나 큰 차일 법도 한데, 정작 차 크기는 우리나라의 준중형 급이다. 전장*전폭*전고는 4,595mm*1,895mm*1,630mm, 휠베이스는 2,740mm다. 국산 준중형 SUV인 투싼과 비교하면 전장은 35mm 짧고 전폭은 30mm 넓으며 전고는 35mm 낮다. 휠베이스는 15mm 짧은 데 그쳐, 전장 대비 휠베이스는 긴 편이다.

브랜드 출범 후 첫 신차가 준중형 SUV라니, 참 “프랑스 답다”. 으레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첫 신차로 화려한 플래그십 모델을 내놓는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여기서 DS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은 SUV를 주축으로 할 것이고, 굳이 큰 차를 내놓으려 애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브랜드 명의 유래이기도 한 오리지널 DS 19가 기함 치고는 아담한 차체를 지녔던 걸 떠올리면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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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난해했던 기존의 DS 3, DS 4, DS 5에 비하면 차분하면서 화려하다. 전면부는 ‘DS 윙’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석 세공품같은 풀 LED 헤드램프가 연결돼 있고, LED 주간주행등을 범퍼 모서리에 수놓았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흐뜨러트리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기교와 디테일이 곳곳에 녹아 있다. 자연스럽게 패션에 녹아들면서 빛을 발하는 명품 가방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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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테일게이트를 좌우로 가로지르는 후미등의 디테일도 재미있다. 실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다이아몬드 패턴을 3D로 새겨 넣어 우아하게 반짝이고, 다이내믹 턴시그널 램프까지 적용돼 화려함을 더한다. 애쓰지 않아도 멋이 스며 나오니, 프랑스인들의 미적 감각에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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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창적인 멋은 실내에서도 이어진다. 비교적 점잖은 외관에 비해 실내는 노골적으로 화려함을 지향한다. 당장 가죽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 집안의 푸조·시트로엥은 저렴한 소재로 저렴해 보이지 않도록 꾸미는 데에 도가 튼 반면에 DS 7은 소재 자체의 고급감이 도드라진다. 시승차는 상위 트림인 ‘그랜드 시크’ 모델로, 우아함을 강조한 가죽이 적용된다. 스티어링 휠과 대시보드를 감싼 가죽은 모두 장인의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이제는 흔해진 퀼팅 패턴이 아닌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패턴을 적용해 색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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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이아몬드 패턴은 인테리어 곳곳에 감춰져 있다.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의 그래픽 콘셉트는 물론, 센터페시아의 여러 버튼과 다이얼에도 꼼꼼히 새겨진다. 압권은 변속 레버 주변을 감싼 끌루 드 파리(Clous de Paris) 패턴 트림. ‘파리의 손톱’이라는 뜻의 이 패턴은 18세기 시계 제작자 브레게가 개발한 다이아몬드꼴 기요셰 패턴의 일종이다. 명품 시계처럼 손으로 깎은 물건은 아니겠지만, 빛의 방향에 따라 입체적으로 반짝이는 트림은 눈을 즐겁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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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 윗쪽에 위치한 시동 버튼을 누르자마자 즐거움이 시작된다. 180도 회전하며 등장하는 상단의 아날로그 시계는 프랑스제 B.R.M의 것. 차량 외부에서는 헤드라이트의 광원이 반짝이며 돌아간다. 국내에는 177마력을 내는 2.0 디젤 단일 모델만 판매되는데, 같은 엔진이 탑재된 형제 브랜드의 다른 모델들에 비하자면 내부에서 느껴지는 소음과 진동은 잘 억제된 편이다.

전반적인 주행 질감은 같은 엔진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푸조 3008,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와 다르지 않지만, 승차감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동급에서 찾아보기 힘든 프리뷰 서스펜션 덕이다. 전방에 숨겨진 4개의 센서와 3개의 가속도계로 노면을 분석, 예측하고 네 바퀴의 댐핑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매직 바디 컨트롤’과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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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 독립 이전부터 시트로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액티브 서스펜션 기술력을 갖췄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54년 트락숑 아방을 시작으로 반세기 넘게 지상고 조절과 최적의 승차감 구현을 위해 유압 서스펜션 기술력을 발전시켜 온 회사다. 2005년 출시된 시트로엥의 옛 기함, C6 세단에서는 프리뷰 서스펜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C6의 하이드랙티브 3+ 서스펜션은 앞바퀴가 통과하며 인식한 노면 상태를 뒷바퀴에 전달, 뒷바퀴의 댐핑을 조절해 최적의 후열 승차감을 구현하는 기능을 갖췄다. DS 7의 것은 비록유압 방식은 아니지만, 시트로엥-DS로 이어지는 이들의 플래그십 계보에서 승차감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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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승차감에서 세 형제 브랜드의 성격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푸조는 스포티함, 시트로엥은 편안함, DS는 우아함을 추구한다. 의자로 비유하자면 푸조는 안락하지만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는 사무용 의자, 시트로엥은 지친 몸을 푹 감싸주는 패브릭 소파, DS는 호텔 로비에 마련된 고급 가죽 소파같다고 할까? 각자의 색을 승차감 하나로 표현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가속 페달의 반응은 여유있지만 굼뜨지는 않다. 신경질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역시 제법 가볍게 세팅돼 있어 이 차의 전반적인 성격이 공격적인 주행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달리는 차는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지만 굳이 우아한 거동을 포기하면서까지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쪽이 맞겠다. 굳이 확인해야겠다면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꿔 보자. 달릴 때는 제대로 달릴 수 있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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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 보조와 차간거리 유지를 포함한 ADAS 시스템은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데, 탁월하게 작동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종종 차선이 흐리거나 굴곡이 클 때는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끼어드는 차에도 아주 빠르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물론 장거리 주행이나 적당히 막히는 출퇴근길에 도움을 받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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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프랑스의 DS와 한국의 제네시스는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프리미엄 후발주자들이다. 기존 브랜드의 프리미엄 모델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라인업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두 회사의 지향점은 많이 다르다. 제네시스가 기존의 성공 공식을 따라 빠르게 모델 레인지를 넓혀 나가는 반면, DS는 더디지만 강단 있게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낸 재미있는 차를 만들고 있다.

그 첫 결과물인 DS 7 크로스백은 참 흥미롭다. 절도 있는 독일차, 풍요로운 미국차, 귀족적인 풍미의 영국차와도 전혀 다르다. 호화롭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부담스럽게 튀지 않으면서도 도로 위에서 반짝인다. 마치 명품 주얼리가 착용자의 패션을 완성시켜주듯, 내리는 이의 남다른 미적 감각과 심미안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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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국내에서는 그 가치를 발견하고 이 차를 선택하는 이도, 그것을 알아봐 주는 이도 많지 않다는 게 유일한 걸림돌이다. 오랫동안 시트로엥-DS의 기술력과 스타일링을 경험해 온 유럽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에게 DS는 여전히 낯선 브랜드다. 게다가 국내에서 인기가 떨어지는 디젤 파워트레인 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DS의 브랜드 슬로건은 ‘Spirit of Avant-garde’, 즉 아방가르드(전위주의) 정신 그 자체다. 스타일과 구성 등 여러 면에서 전위적인 혁신을 추구했고, 그 결과물도 설득력 있다. 언제나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왔던 프렌치 프리미엄의 재림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속 편히 누군가 알아주기만 기다려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설득에 실패한 아방가르드에는 난해함만 남기 때문이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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