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지난 달 디젤차 24만 대의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쿨러 재점검을 위한 리콜을 발표한 가운데, 2018년 BMW 화재 사태가 재현될까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BMW 코리아는 이번 리콜이 어디까지나 ‘선제적 점검’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올 여름 폭염이 예고된 가운데 화재에 대한 우려는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22일, BMW 79개 차종 24만 1,921대를 리콜한다고 밝혔다. 이번 리콜은 지난 2018년 BMW 화재 사태 이후 개선된 EGR 쿨러 중 일부에서 다시 균열이 발생하는 사례가 확인돼 이를 점검하고 필요 시 교체하기 위함이다.
EGR 쿨러는 2018년 BMW 화재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부품이다.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를 냉각시키는 쿨러에 과열로 균열이 발생하고, 냉각수가 누수되면서 냉각수 잔여물 등이 섞인 퇴적물이 흡기다기관에 달라붙어 있다가 불이 붙어 화재로 이어졌다. 당시 짧은 기간동안 수십 대의 BMW 디젤 차량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10만 대 이상의 차량이 리콜된 바 있다.
BMW 관계자는 “변경된 EGR 쿨러에서 제작 상 오차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불량으로 인해 균열이 발생하는 사례가 보고됐다”며 “이번 리콜은 2018년 12월 31일 이전에 생산된 EGR 쿨러가 장착된 차량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개선된 EGR 쿨러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일부 불량 가능성을 인지해 예방 점검을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리콜 조치에 관해서 BMW 측은 “확률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극소수의 사례를 바탕으로 모든 대상 차량을 사전 점검하는, 고객만족과 편익을 위한 이례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리콜 대상 차량이 많은 만큼, 대상 차량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리콜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리콜 대상 차량의 차주들은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수입차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리콜이 시행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20만 대 넘는 차량을 리콜하면서 화재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 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리콜을 통해 개선된 EGR 쿨러를 장착하거나, 기존에는 아예 리콜 대상이 아니었던 신형 차량 오너들까지도 리콜 대상에 포함되면서 화재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BMW 코리아는 2018년 리콜 당시 “몇 년 뒤 같은 문제로 리콜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으나, 불과 2년 만에 다시 대규모 리콜을 실시하게 됐다.
한 BMW 차주는 “예방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또 다시 화재 우려가 있으니까 리콜이라는 강수를 두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제작 상 오차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불량이라 하더라도 운이 나쁘면 또 다시 차주의 잘못 없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이 차주는 “신형 차량들은 화재 우려가 없다고 해서 샀는데, 또 EGR 쿨러 균열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 매년 여름마다 이렇게 리콜을 받아야 하느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리콜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차량마다 운행 환경이 다른데 1회 점검만으로 불량품을 완전히 걸러낼 수 있냐는 것. BMW 동호회의 한 회원은 “만약 점검 때까지 문제가 없다가 점검 직후 균열이 발생하면 운전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 운행하게 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BMW 코리아가 리콜 참여 고객에게 보증연장상품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리콜 이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증기간이 만료되면 자비로 교체해야 하니, 보증연장상품에 가입하라는 의미 같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올 여름은 이른바 ‘역대급 폭염’이 찾아올 것으로 예보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 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은 폭염특보가 평년 대비 2배 이상 많이 발령될 만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BMW 화재 사태가 불거졌던 2018년 여름은 폭염특보가 평년 대비 3.3배 많이 발령돼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의 여름 더위가 동시다발적인 BMW 차량 화재를 부채질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올 여름에도 또 다시 연쇄 화재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난 2018년 12월 24일 국토부와 민관합동조사단의 ‘BMW 화재 원인 조사발표’ 당시, 민·관 관계자들은 “(개선된 EGR 쿨러가) 설계 변경한 것이 약간의 보강 수준으로, 쿨러의 용량은 변함이 없다”며 “과다 사용으로 부품에 피로가 누적돼 균열이 가고 누수가 생길 시점을 조금 늦춘 것뿐이다. 그러면 또 화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무더위 속에서 부하가 많이 걸리는 악조건에서는 개선품이 장착된 차량이라도 언제든 다시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BMW 차주는 “이미 재작년 화재 사태로 중고차 가격에서도 큰 손해를 봤고 이미지도 실추됐지만, BMW는 리콜 조치 이후 구매자들의 금전적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이번에도 리콜 소식이 알려지자 가족들부터 “또 불이 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하는데, 언제까지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가”며 분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무더위가 찾아오는 이번 여름이 BMW에겐 중대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방적 리콜을 통해 문제가 사라진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또 다시 2018년과 같은 연쇄 화재가 발생한다면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BMW가 이야기하는 고객만족과 편익을 위한 것이라면 반복되는 리콜로 불안감을 키우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과 보상방안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