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수퍼카 제조사이자 포뮬러원(F1) 레이싱 팀으로 유명한 맥라렌이 소장 중인 클래식카 콜렉션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영난 때문인데, 자동차 업계에서도 특히나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수퍼카·모터스포츠 업계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다.
영국 BBC는 맥라렌이 자사의 공장과 수십 대에 달하는 소장 클래식카를 담보로 3억 파운드(한화 약 4,475억 원) 상당의 대출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퍼카 신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맥라렌의 주 수입원인 F1 대회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유동성이 악화된 까닭이다.
특히 이번에 맥라렌이 담보로 제시한 자산 중에는 수퍼카 맥라렌 F1과 그 프로토타입인 XP5 등 일반 차량은 물론, 그간 F1 대회,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 등에서 활약했던 레이스카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전설적인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가 탔던 MP4/4와 같은 머신들은 대 당 수십~수백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맥라렌 대변인은 구체적인 대출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여느 영국 제조업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로 큰 영향을 받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를 통해 단기적인 경영 상의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신차 판매량이 회복되고 모터스포츠 행사가 재개돼 자금이 확보되면 즉시 대출을 상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이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맥라렌과 같은 모터스포츠 혈통의 제조사가 자사의 뿌리와도 같은 소장 차량을 담보로 내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중소 제조사들에 미치는 여파가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게 BBC의 평가다.
맥라렌은 1963년 F1 드라이버 출신인 브루스 맥라렌이 설립한 레이싱 팀이 그 모태다. 모터스포츠 황금기에 F1을 비롯한 유수의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모터스포츠 기술을 바탕으로 수퍼카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현재는 모터스포츠와 수퍼카 생산, 외주 설계 및 개발 등 크게 3개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며 연간 14억 파운드(한화 약 2조 9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을 시작으로 유럽, 북미 등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수퍼카 소비가 급감하고 모터스포츠 대회들이 일제히 연기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신차 생산량의 90% 이상을 수출하는 맥라렌으로선 생산이 중단되고 수출길이 막히면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F1 레이싱 팀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스폰서 비용도 대회가 중단되면서 지급되지 않고 있다.
맥라렌 대변인은 이러한 상황들이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경영 상의 어려움”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자동차 회사들의 어려움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연내 모터스포츠 대회 등의 정상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맥라렌과 같이 모터스포츠 의존도가 높은 회사들에게는 가혹한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