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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이라고 다 같은 자율주행이 아니다?

잠깐 눈을 붙였다 뜬 것만 같은데 어느덧 아침이 밝아 출근할 시간이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 후, 힘내서 집을 나섰건만 출근길 도로는 이미 주차장이 따로 없다.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 채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몸이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보챈다. 상사들이 다 갔나 안갔나 타이밍을 재다보면 퇴근시간보다 삼사십분 늦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퇴근길에 나섰더니 이게 왠걸?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한술 더 뜬다. 도로는 꽉 막혀서 후미등 불빛으로 온통 빨갛다.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문득 ‘내 차 주위로 같이 꽉 막혀있는 차 안의 저 사람도 나랑 크게 다를 것 없는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살짝 위안을 삼는다.

seoul

“OECD의 2016년 주요국 통근 시간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 국가들 중 평균 출퇴근 소요 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OECD의 2016년 주요국 통근 시간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 국가들 중 평균 출퇴근 소요 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 중에서도 수도권 지역의 경우 하루 평균 약 1시간 30분을 출퇴근에 소비하고 있었다. 코믹함을 지향하는 어떤 듀오의 노래 가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하루에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예능 프로나 드라마 한편을 보기에도 충분하다. 친구랑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정 피곤하면 한잠 자기에도 괜찮은 시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컨설팅업체 매킨지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소비자들이 다른 주요 국가 소비자들에 비해 자율주행 차량 구입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고(긍정적 반응 한국 66%, 일본 46%, 독일 44% 순),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높다. 이에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투어 자사의 자율주행 기능에 대해 홍보를 하면서 종종 ‘우리 회사의 차량에 장착된 자율주행 시스템은 현재 레벨 2.5 수준입니다.’ 혹은 ‘저희 자율주행 차량이 레벨 4 순준의 기술력을 선보였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자율주행이 자동차 업계의 커다란 화두로 떠오른 요즘, 저 자율주행 레벨에 대해서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SAE

2014년,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레벨을 운전자의 개입 정도에 따라 총 6단계로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이후 2016년에 미국 연방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이 SAE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채택하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 SAE의 기준은 가장 낮은 수준인 0단계부터 가장 진보된 수준인 5단계까지 총 6단계로 되어있으며 그 각각의 기준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레벨 0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단계를 말한다. 사실상 이전까지의 대부분 차량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단계의 차량에선 운전자가 조향부터 가속과 감속 모든 것을 계속적으로 해야한다. 가령 차선 이탈 시에 경고음이 울리거나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경고만 하는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은 이 단계에 속하는데 그 이유는 결국 모든 제어를 운전자가 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반떼_크루즈_컨트롤

레벨 1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으로 최근의 대부분 차량이 여기에 포함된다. 어뎁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조향 기능만 지원하는 파킹 어시스트 시스템, 차선 유지 지원 시스템(LKAS)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단계에서도 운전자는 여전히 차량 제어의 전권을 담당한다고 봐야된다. 최소한 조향이나 감/가속 둘 중 하나의 작업은 운전자가 계속적으로 담당한다.

ADAS

레벨 2에선 운전자의 손과 발이 동시에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생긴다. 레벨 1에서는 각자 따로 작동하는 기능들이 서로 합쳐지며 조향과 감/가속 기능을 동시에 지원하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들이 이 단계에 해당된다. 이 단계에서 차량은 여러 센서와 카메라, 레이더 등을 이용해 앞 차량과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감/가속을 자동으로 하는 동시에 차선을 유지하기 위해 조향에도 개입한다. 그렇다해도 운전자는 항상 도로를 주시하며 갑작스럽게 변하는 도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최근 ADAS가 적용되어 있는 대부분의 차량들은 자율주행 기능이 켜진 후 일정시간동안 운전자의 조향 인풋이 없으면 경고를 울려서 운전자의 주의를 요구하거나 정지 후 재출발 시에 가속패달의 조작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주행 환경의 변화가 심한 도심이나 복잡한 도로에선 시스템 사용에 제약이 많다.

레벨 3에선 운전자가 중간중간 도로에서 시선을 돌려 스마트폰 메세지를 보내거나 영상을 보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차량은 갑작스러운 도로 상황의 변화에도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 차량은 운전자의 개입을 요구할 수 있고 운전자는 이런 경우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기준이 다소 모호해서 위험할 수 있다하여 일부 자동차 제조사는 레벨 3을 건너뛰고 바로 레벨 4 개발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볼보_360c_레이더_copy

“레벨 4부터는 ‘fully-autonomous’ 즉, 완전 자율주행에 들어가는 단계이다.”

레벨 4부터는 ‘fully-autonomous’ 즉, 완전 자율주행에 들어가는 단계이다. 운전자는 차량 운행 시에 영화를 보거나 심지어 잠을 잘 수도 있고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 운전자가 응하지 못할 경우에도 차량은 알아서 안전하게 정차하거나 주변에 주차를 하게끔 작동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하게 정차가 된 후에 자율주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한동안 스스로 운전을 해야할 경우도 있다. 최근 많은 자동차 회사들에서 선보이고 있는 자율주행 컨셉들은 대부분 이 레벨 4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레벨 4 자율주행 차량은 2021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있다.

레벨 5는 그야말로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차량은 탑승자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자율적으로 갈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차의 컨트롤을 위한 스티어링 휠이 아예 없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지도 상의 도로 외에 비포장 지역에서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볼보_360c_잠

이렇게 쭉 나열하고 보니 마치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퇴근길에 자율주행 차량을 타고 가며 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을 것만 같지만 그런 영화같은 미래는 쉽게 오진 않을 것 같다. 우선 전문가들은 레벨 3에서 레벨 4로 진보하는데 굉장히 많은 기술적 장벽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된다 해도 도로 환경과 차량 변화에 따른 교통법과 수많은 관련 법규들의 제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어느날 갑자기 현재의 차들이 동시에 레벨 3이나 4의 차량으로 바뀔 순 없기때문에 레벨 0부터 4 차량들까지 도로에 뒤섞여 운행된다면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도로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장 몇년 후는 아니어도 언젠가 우리가 편히 누워서 혹은 편하게 밥을 먹으며 출퇴근 할 날이 올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 엔지니어들, 연구원들이 그런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분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난 다시 출근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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