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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핫!해치, i30 N라인 시승기

2002년은 대한민국에 굉장히 의미있는 해였다. 그 누가 한국 축구가 유럽의 강호들을 꺾고 월드컵 4강에 오르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이 경기에서 이기고 난 뒤면 광장이란 광장에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너 나 할거없이 쏟아져 나와 온 거리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엑센트_wrc

현대자동차의 역사에도 2002년은 나름 의미가 있는 해였는데, 현대는 당시에 영국 MotorSportsDevelopment(MSD)와의 파트너쉽을 통해 엑센트(베르나) 랠리머신으로 WRC에 출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2002년에 현대는 야심차게 드라이버 유하 칸쿠넨을 영입하고 그 해에 뉴질랜드 랠리에서 4위라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후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동안 현대의 모터스포츠는 리스 밀렌 레이싱과의 파트너쉽으로 출전하는 몇몇 경기들 외에는 특별히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못했다.

i30_N_TCR

그리고 그로부터 딱 10년 뒤인 2012년,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뉴스가 들려오는데 바로 현대 모터스포츠의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 이 뉴스가 유독 솔깃했던 이유는, 이 회사는 이전처럼 겉만 현대차고 안의 기술은 다른 회사가 주도하는 형태의 차량개발이 아닌, 현대자동차의 자회사로서 직접 머신을 개발하고 레이스에 출전할 것이라는 계획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전과는 달리 앞으로 참가할 모터스포츠에서 얻는 데이터들과 기술이 직접 현대의 차량에 녹아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괜찮은 성적을 내오던 현대 모터스포츠가 올해에는 WRC 준우승, WTCR 종합우승이라는 놀란만한 기록을 달성했다. 특히나 WTCR에 출전하고 있는 i30 N TCR 머신은 올 시즌 30번의 대회에서 13번의 우승을 거머쥐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줬다. 이에 힘입어 유럽에선 i30 N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고 여러 매체에서 i30 N에 대한 좋은 평가들이 이어졌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핫해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현대가 만든 차가 골프 R, 시빅 타입R, 매간RS 같은 무시무시한 터줏대감들과 대등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현대에서 만든 핫해치가 이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n_n라인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i30 N을 접할 수가 없다. 대신 벨로스터 N으로 어느정도 비슷한 맛을 볼 순 있다지만 왠지 유투브로 찾아봤던 WTCR 영상에 나오는 야무지면서도 악랄해보이는 바로 그 녀석처럼 생기지 않은게 못내 아쉽다. 그런 와중에 현대에서 조금 의아한 모델을 내놓았다. 그게 바로 i30 N’라인’.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 ‘라인’이라는 말에 의심이 먼저 드는게 사실이다. 보통 무슨무슨 라인이라고 하면 기본 모델에 어떤 느낌만 살짝 나도록 파츠 몇개만 바꾸는게 자동차 업계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나 또한 처음 i30 N라인을 만나러 갈 때 큰 기대 없는 마음으로 갔던 것 같다.

i30_N라인_정면

일단 겉모습에서 풍기는 첫 인상은 괜찮았다. 기존의 i30 1.4 터보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파츠들과 강렬한 파이어리 레드 색상이 잘 어우러져 내가 원했던 그 귀여우면서도 악랄해 보이는 바로 그 i30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에 속아줄 생각은 없다. 문을 열어보니 바로 보이는 빨간색 안전밸트는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하는 부분이라 살짝 마음이 약해졌으나 그 밖에 빨간 스티치, 에어벤트 테두리의 빨간 포인트들은 소위 스포츠’라인’들에서 자주 봐왔던 것들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시동을 걸어보니 N라인 전용 배기에서 들려오는 배기음이 크지는 않아도 나름 경쾌했다.

하지만 이젠 겉모습 말고 실체를 드러내야 할 시간. i30 N라인을 몰고 인천에 가보기로 했다. 제법 긴 여정이라 도심 주행, 과속방지턱, 와인딩 로드, 고속도로 등 다양한 노면에서 i30 N라인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긴 여정동안 솔직히 정말, 정말로 놀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녀석은 그저 그런 스포츠라인이 절대로 아니었다. 1.4 기본 모델과는 전혀 다른 동물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 핫해치의 향기가 이 차에서 진짜로 났다. 이제 ‘그저 그런 스포츠라인이겠거니…’하며 넘어가선 안되는 i30 N라인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i30_N라인_배경_앞부분

겉모습은 기본적으로 i30 N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파츠들을 공유한다. N에 적용되었던 냉각효율이 향상된 스포티한 디자인의 프론트범퍼가 N라인에도 적용되었다. 강한 인상을 만들어주는 블랙베젤 헤드램프 또한 같다. 다만 둘 다 글로시 블랙으로 처리된 프론트 그릴이 N보다 N라인에선 좀더 촘촘한 패턴의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뒷모습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디퓨저 디자인이 적용된 N 리어범퍼가 N라인에도 적용되었고 배기 시스템은 다르지만 N라인 또한 듀얼 싱글팁 디자인의 머플러를 사용한다. N에 사용되었던 사이드 스커트와 리어 스포일러는 N라인에선 사용되지 않고 기본 i30와 동일하다.

N의 19인치 휠과 유사한 디자인의 18인치 N라인 휠에는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4 타이어가 매칭되어 달릴 준비를 마쳤다. 파이어리 레드 색상은 N라인 전용 색상은 아니지만 N라인에 적용되는 외장 파츠들에 많이 사용된 블랙 플라스틱 제질과 특히 강한 대비를 이루어 전반적으로 기본형 i30보다 훨씬 강하고 스포티한 외관 분위기를 완성한다.

i30_N라인_인테리어

차 안으로 들어가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기저기 빨간 포인트들이 보인다.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빨간색 안전밸트. 차의 퍼포먼스와 1도 상관이 없는 이 작은 터치가 괜히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아이템은 바로 기어노브다. 현대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갈수록 좋아지는 추세였는데 유독 기어노브의 디자인만큼은 항상 그게 그거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DCT가 적용되었다고 열심히 홍보를 하는 모델에도 유독 기어노브의 디자인에는 무관심한 듯 보였는데 이번 N라인에서는 드디어 그 부분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다소 네모진 디자인이 호불호가 나뉠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이전처럼 평범하고 뭉툭한 모양의 디자인에 빨간 줄 하나만 그어놓고 끝내진 않았다.

DCT의 퍼포먼스 자체는 뒤에서 좀더 이야기해야 할 문제이지만 일단 그 성능을 눈으로 나타내주는 기어노브의 겉모습은 합격이다. 스티어링 휠 또한 기존의 것이 아닌 N 스티어링 휠이 들어가는데 질감과 두께가 손에 잘 감기며 즐거운 운전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계기판은 밋밋한 기본형이라 여기에도 뭔가 차별화가 있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i30_N라인_시트

N라인에 적용된 버킷시트는 기본형 i30의 시트와 i30 N에 들어가는 버킷 시트 둘 다와 다른 고유의 스포츠 시트인데, 빨간 스티치와 파이핑, 등이 닿는 부분에 찍혀있는 N로고가 눈에 띄고 옆에 격자무늬 텍스처가 적용된 사이드 볼스터는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서 잘 잡아준다.

사실상 뒷자리는 기본 i30와 다를 것 없는데 앞자리 시트를 평균 성인 남성에게 편한 정도로 맞춘 상태에선 무릎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좁은 느낌의 공간이다. 경쟁회사들의 모델과 비슷한 패키징 조건이라면 실내 공간을 유독 잘 뽑아내는 현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뒷자리 공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었다면 큰 경쟁력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는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도 휠베이스가 50mm 긴 기아의 K3 GT 5도어 모델과 비교해도 아쉬운 부분이다.

트렁크 공간은 작지 않은 편이지만 뒷시트를 접었을 때 완전히 평평해지지 않고 턱이 한칸 생겨 짐을 넣을 때 걸리거나 긴 짐이 트렁크 안에서 흔들거리기 쉬울 것 같다.

i30_N라인_엔진

엔진룸 안에는 6000rpm에서 204마력, 27.0kg.m의 토크를 내는 1.6 T-GDI엔진이 들어가 있다. 경쟁 모델들에 비해 수치 자체는 인상적이지 않지만 막상 운전을 해보면 비교적 가벼운 차체를 재밌고 경쾌하게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개인적인 핫해치 취향으론 오히려 작은 엔진을 더 선호하는데 그런 엔진의 힘을 쥐어짜 듯 끝까지 이끌어 내며 운전하는게 핫해치를 운전하는 진정한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N라인에 들어가있는 1.6 터보 엔진은 터보렉때문에 저rpm에서 풀이 죽어있다거나 끝심이 부족해 레드라인 근처에서 맥이 빠져버리는 느낌 없이 제법 리니어하게 세팅이 되어있어 마음껏 쥐어짜내가며 운전하기에 좋다.

드라이브 모드를 sports로 바꾸면 가속패달의 반응성이 좀더 빨라지는게 느껴지는데, 그 외에 eco와 comfort 모드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아서 eco 모드가 확실히 효율적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rpm이 올라갈 수록 들려오는 엔진의 회전음과 배기음이 크진 않아도 나름 스포티해서 계속 고rpm을 유지하며 운전하고 싶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10km/l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연비는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다.

i30_N라인_N라인_엠블럼

반면에 이렇게 내 뜻대로 rpm을 써가며 엔진을 쓰기 위해선 수동 트랜스미션이 유리하거나 빠릿빠릿한 자동 트랜스미션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서 N라인에 매칭되어 있는 DCT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동 모드에서의 변속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매끈하며 효율좋게 작동하지만 엔진의 경쾌한 성능을 손실없이 전달하기에는 체결감이 살짝 모호하다. 드라이브 모드를 sports로 바꾸면 좀 더 적극적이게 기어를 찾아들어가는 듯 하지만 내가 원하는 그 정도의 빠릿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어를 메뉴얼 모드로 바꿔 조작을 해보면 명확해지는데, 업 시프트 시에는 기대한 만큼의 속도로 변속이 되는 반면 다운 시프트 시에는 살짝 머뭇거리며 빠르게 저단 기어로 찾아들어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현재 건식 DCT의 구조적 한계일 수 있는데 골프 GTI의 DSG같은 습식 더블 클러치 트랜스미션의 칼같은 변속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조만간 현대에서 개발한 8단 습식 DCT가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이 부분은 멀지 않은 시기에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i30_N라인_배경_앞_쿼터

현대는 N라인을 위해 하체를 새롭게 튠업했다고 하는데 i30 N라인을 타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이 차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승차감이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노면에서 i30 N라인을 몰아봤는데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을 표방하기에 부족함 없을 정도로 단단하면서도 충격을 아주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가지고 있다. 이전까지 현대에서 했던 스포티한 하체 세팅은 충분히 하드하지 못해서 공격적인 드라이빙에 부족하거나 혹은 하드하긴 하지만 뒤가 통통 튀는 듯한 뭔가 아쉬운 세팅이었다면 이 차의 승차감은 유럽 브랜드의 상위 모델들만큼이나 성숙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운전석 뿐 아니라 뒷좌석에서도 노면충격이 잘 걸러져 전달되는 느낌이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현대차의 항상 아쉬운 하체 세팅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급격한 코너링이나 전후 하중 이동 시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쫀득쫀득하게 미쉐린 PS4 타이어를 땅바닥과 붙어있게 유지해준다. 심지어 고속 안정성 또한 수준급.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서스펜션의 변화는 없지만 애초에 일상적인 주행부터 공격적인 주행까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접점을 잘 찾아놓았다. 기아 K3 GT 5도어와 비교했을 때는 확실한 우위에 있고 심지어 다른 유럽 경쟁차량들과 비교해도 젼혀 아쉬울게 없을만한 실력이다.

i30_N라인_휠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도 잘 조여진 느낌이다. eco나 comfort 모드에서 이미 살짝 무거운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과할 정도는 아니며 무겁기만 한게 아니라 실제 전달되는 조향감이 굉장히 타이트하다. 차안에서 차의 바퀴가 코너의 어느 부분을 파고들고 있는지 확실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sports 모드에서는 스티어링의 반응이 조금 더 날카로워 지는데 훌륭한 하체 세팅과 더불어지면서 와인딩 로드는 물론 서킷에서도 내가 원하는 레코드라인을 칼같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i30_N라인_빨간_스티치

처음에 말했듯이, i30 N라인을 직접 몰아보기 전까진 그저 또다른 스포츠’라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본형보다 적지 않게 비싼 2850만원(풀옵션 기준)이라는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나 차로 이탈방지 보조, 스마트 크루즈같은 여러 안전 및 편의장비들이 포함되어 있는 가격이라고는 해도 왠지 좀더 싸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체험을 해보고 나니 현대가 N이라는 글자에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i30 N의 명성을 이용해 N라인이라는 엠블럼만 살짝 달아 팔아보겠다는 얕은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i30 N라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핫한 해치백이다. 핫해치라고 불러주기가 절대 아깝지 않다. 그것도 한국에서만 통할 핫해치가 아니라 유러피언 핫해치들과 정면으로 붙어볼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제대로된 핫해치이다.

이 작은 빨간색 차를 보면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팀이 생각난다. 그 누가 한국에서 나온 차가 핫해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강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차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 정도라면 난 앞으로 저 빨간 차를 그 때의 우리 응원단처럼 열심히 응원 해볼 생각이다. 앞으로 나올 더 흥미진진한 결과물들을 기대해본다.

 

글 / 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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