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안전장비, 사고 나면 ‘수리비 폭탄’ 된다?

교통 안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최근에 출시되는 차들에는 첨단 안전사양이 대거 탑재된다. 이미 전자식 자세제어장치나 주간주행등같은 사양들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기본사양화 됐고, 그 밖에도 전방충돌경보나 사각지대경보 시스템도 빠르게 표준회돠는 추세다. 심지어 이런 장비들이 탑재된 차들은 사고확률이 감소한다는 이유로 자동차보험료를 할인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비들이 언제나 환영받는 건 아니다. 특히 이런 안전장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사고에서는 더 그렇다. 시스템의 작동을 위해 탑재되는 센서와 카메라들이 자동차 사고 시 수리비를 치솟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자동차 협회(AAA)의 연구에 따르면 첨단 안전장비가 늘어나면서 작은 사고에도 비싼 수리비를 부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안전장비가 없는 동일 차종과 비교했을 때, 평균 두 배 가량 비싼 수리비다.

AAA는 미국 내 세그먼트 별 베스트셀러 모델들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을 토요타 캠리, 닛산 로그, 포드 F-150 등 3종이다. 조사에 따르면 센서와 카메라 등 추가되는 부품들의 가격 자체도 비싸지만, 이를 조립하는 수리 공임 역시 훨씬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까다로운 조립 및 조정 공정으로 인해 수리 시간도 더 길게 소요되고,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

가령 특정 카메라나 센서를 조립할 경우, 센서와 카메라의 여러 배선들을 맞게 연결한 뒤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캘리브레이션을 실시해야 한다. 게다가 부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센서 및 카메라의 가격은 적어도 500달러에서 최대 2,050달러(한화 약 57만~234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건 특정 센서 하나를 기준으로 이야기했을 때다. 문제는 이런 안전 기능 여러가지가 특정 부위에 집중돼있다는 것이다. 가령 차의 보닛이나 루프에는 이렇다 할 센서가 탑재되지 않지만, 휀더나 범퍼 등의 부위에는 여러 개의 센서가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가령 전면부나 휀더 충돌로 여러 개의 센서가 망가진다면, 수리비는 수백만 원에 달할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안전 보조 기능을 하는 센서와 카메라 외의 부품도 안전장비의 증가로 수리비 부담이 커진다. 대표적인 게 윈드실드(전면유리)다. 윈드실드 안쪽에 부착되는 카메라와 레이더 등 센서가 늘어나면서 윈드실드 유리의 투과성과 내구성 기준은 과거의 차들보다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윈드실드 교체 시에도 캘리브레이션 작업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신 차량들의 앞 유리 교체 시 수리비용은 미국 기준 1,600달러(한화 약 183만 원)에 달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기존 보험사들의 통념을 깨는 내용이다. 그간 자동차 보험사들이 사고 가능성을 줄여 준다는 이유로 안전장비 탑재 차량에 대해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왔던 것과 상반되기 때문. 사고 확률이 줄더라도 대 당 수리비가 훨씬 비싸다면 결국 보험사의 손해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여러 연구에 따르면 첨단 안전장비들은 ‘제 값어치’를 한다. 가령 대표적 안전장비인 차선이탈방지보조 시스템은 카메라와 스티어링 휠 제어 등 고가의 장비가 추가되지만, 차선이탈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86%나 낮춰준다. 이 밖의 여러 시스템들도 탑재로 인한 수리비 부담 증가보다는 사고 예방 효과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망가졌을 땐 큰 각오가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