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 감시 단체인 워싱턴 자동차 안전 센터(Center for Auto Safety, CAS)가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현대기아차에서 발생하는 원인미상 화재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화재의 원인이 제조결함으로 드러날 경우 수백만 대가 리콜 대상이 돼 ‘제2의 토요타 사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CAS는 그간 현대기아차에서 원인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제보를 120건 접수받았다고 밝혔다. 또 엔진룸 내에서 배선이 녹아내린 흔적을 발견하거나, 연기 또는 타는 냄새 등이 발견된 경우도 229건에 달했다. 이처럼 특정 연식/특정 차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결함 제보가 잇따르자 이에 대한 정식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진정의 사유다.
이번 사안의 특징은 충돌이나 다른 사고 없이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통상 차량이 충돌 사고를 겪을 경우 합선이나 연료, 오일 유출 등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주행 중 아무런 징후 없이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차종이 특정된다는 점도 품목 결함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CAS에 따르면 제보를 받은 차량은 2011~2014년 생산된 현대 쏘나타와 싼타페, 기아 옵티마(한국명 K5)와 쏘렌토 등 4개 차종이다. 엔진은 특정되지 않았으나 네 대의 차량은 설계와 부품을 공유한다.
특정 공정에서 조립 불량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아 옵티마와 쏘렌토, 현대 싼타페는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면 현대 쏘나타는 앨러배마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 서로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같은 문제를 겪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특정 부품에 결함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제이슨 레바인 CAS 총괄 디렉터는 “생산 과정에서의 불량으로 사고 없이도 화재가 발생하는 자동차가 가끔 만들어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동급 타사 차량과 비교해볼 때, 현대기아차는 통계적으로 분명 구분될 만큼의 화재 빈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NHTSA가 이 문제를 서둘러 조사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안에 대해 제보한 2012년형 쏘나타 차주는 심지어 차량이 주행 중인 상황도 아닌, 1시간여 주차돼있던 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재 당시 소방 당국은 와이어링 하네스에서 발생한 합선으로 불꽃이 일었고, 이것이 차 아래에 있던 낙엽에 옮겨붙으면서 차량이 전소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CAS에 따르면 NHTSA는 이러한 종류의 진정에 대해 접수일로부터 120일 이내에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즉, 4개월 내로 NHTSA가 이 사안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결과를 발표한다는 뜻이다. 만약 배선류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파문이 크게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에서 판매된 해당 연식/해당 차량은 무려 220만 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