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까지 막 때리네요!” 기아자동차의 THE K9에 장착된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을 들으며 튀어나온 말이었다. 특히, 공간감과 타격감이 인상적이었다. 보이스는 두말할 것도 없고, 저음과 고음까지 깔끔하게 살려냈다. 더 K9을 시승하던 나와 동승 기자는 국산차에 장착된 오디오 중 가장 좋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제네시스 EQ900의 그것보다 좋았다.
그 확신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THE K9 플래그십 스페이스 ‘살롱 드 K9′에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렉시콘 오디오 체험관을 꾸몄다. 그곳에서 K9에 얹힌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을 다시 만났다.
더 K9에 올라타자마자 스테인리스 스틸 그릴로 덮힌 스피커들이 시선을 끈다. 고음을 내는 트위터, 중음을 내는 미드레인지, 저음을 담당하는 우퍼 스피커 순으로 시선이 아래로 내려온다. 그 ‘위치’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트위터는 A필러와 측면 창문 사이 모서리에 있다. 쿼드런트 커버라 부르는 것인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 BMW M760Li에 장착된 트위터도 쿼드런트 커버에 있다. 반면 제네시스 EQ900의 경우 트위터가 문고리 옆에 있다. 렉시콘 오디오 담당자는“트위터의 높이는 탑승객의 귀와 가까울수록 좋고, 각도는 귀를 향할수록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위터의 이상적인 위치는 쿼드런트 커버보다 A필러라고 볼 수 있겠죠.”라고 설명했다. 고음은 짧게 퍼진다. 지향성이 강한 음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러한 고음의 특성 때문에 트위터가 탑승자의 귀에 가까울수록 고음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반짝이는 트위터 그릴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이다. 고주파는 회절이 잘 되기 때문에 그릴의 소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흔히 쓰이는 트위터 그릴 소재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그릴과 스테인리스 스틸 그릴의 두께와 소리가 나오는 면적(개구율)이 같은 조건이라면, 스테인리스 그릴이 플라스틱 그릴보다 투과율이 더 좋다. 스테인리스 트위터 그릴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미드레인지가 문고리 아래 동그란 모양으로 박혀있다. 그 밑에는 커다란 저음 스피커인 우퍼가 있다. 미드레인지와 우퍼가 제대로 분리돼 있는 것이다. 저음은 강하고 곳곳으로 멀리 퍼진다. 지향성이 없는 음이기 때문에 우퍼는 트위터에 비해 위치가 갖는 의미가 적다. 중음은 저음에 비해 지향성이 있고, 고음에 비해 지향성이 약하다. 그래서 미드레인지가 우퍼와 분리돼 높은 위치에 장착돼 있는 것은 지향성을 염두에 둔 위치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스피커 위치만 봐도 국산차 타 모델들과 다르긴 다르다. 흔히, 트위터는 문고리 옆에 있기도 하고, 미드레인지는 우퍼와 나란히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 와중에 아쉬운 점은 개성 없는 스테인리스 그릴 형상이다. 하이엔드 카오디오일수록 스피커 그릴 디자인으로 오디오 브랜드의 개성을 한껏 뽐내곤 한다. 렉서스 LS에 들어간 ’마크 래빈슨 프리미엄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의 ’라우드 스피커 그릴’은 잎맥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볼보자동차 상위트림에 들어가는 바워스앤윌킨스(B&W) 음향 시스템 스피커는 알루미늄 하우징에 비치는 노란색 케블라(Kevlar) 진동판으로 브랜드를 상징한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상위트림은 부메스터 3D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간다. 동그란 모양의 스피커 형태, 전동식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트위터가 부메스터 카오디오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더 K9에 적용된 렉시콘 오디오 스피커 그릴은 메르세데스-벤츠에 쓰인 부메스터 스피커 그릴의 동그란 형태, 그릴 개구율의 패턴과 너무 닮았다. ‘렉시콘’ 브랜드의 역사는 40년을 넘는다. 그들만의 스피커 그릴이 왜 없겠느냐만, K9에서는 그들의 헤리티지가 담긴 스피커 그릴을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렉시콘 관계자는 “렉시콘 브랜드 이미지나 DNA를 고려해 스피커 그릴 디자인을 기아측에 제안 했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를 타며 벤츠가 떠올랐다면 기아차에겐 성공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 성공에는 렉시콘 브랜드의 희생이 따랐다.
스피커에만 머물던 시선이 센터 모니터로 옮겨간다. 이제 직접 음악을 들어볼 시간이다. 좋은 소리를 내는 데는 스피커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오디오 자체 성능도 중요하겠다. 더 K9의 렉시콘 오디오는 17개 스피커와 최대 출력 900W의 12채널용 Class D 앰프가 적용됐다.
렉시콘 브랜드는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분야(DSP)에서 약 40년 동안 인정받아왔다. DSP는 디지털 신호를 기계장치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집적회로를 말한다. 즉 오디오의 ‘뇌’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렉시콘은 스피커 만드는 회사보다는 DSP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 렉시콘 DSP의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은 퀀텀로직 서라운드와 클래리-파이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데, 그중 퀀텀로직 서라운드 기술은 세계적인 음악 시상식인 ’2014 테크니컬 그래미상(Technical GRAMMY Award)’ 수상으로 입증된 기술력이다. 그 핵심 기술이 더 K9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두 기술은 렉시콘 오디오가 들어가는 차종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지만 세부 설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퀀텀로직 서라운드 기술은 악기 소리와 목소리를 각 스피커에 재배치한다. 단순히 각 스피커 음량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음원 소스에서 악기별 주파수를 하나하나 추출하고 스피커에 자유자재로 재배치하는 기술이다.
퀀텀로직은 관객모드, 무대모드 총 2가지를 제공한다. 관객모드는 악기 소리와 목소리가 앞쪽 스피커 중심으로 나와 탑승자는 마치 공연장 관객석에 앉아있는 듯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다. 무대모드는 악기 소리와 보이스가 앞뒤 스피커에서 골고루 나와 울려 퍼진다. 탑승객을 무대 한가운데 올려놓는 것이다. 관객모드와 무대모드를 다 끄면 스테레오 상태가 된다. 스테레오 상태만으로도 꽤 훌륭하지만, 선명하고 풍성한 퀀텀로직 모드와는 차이가 있다. 렉시콘 오디오라면 퀀텀로직 서라운드 시스템이 기본으로 들어가지만, 이렇게 관객모드와 무대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호사는 기아 K9과 스팅어에서만 누릴 수 있다.
‘클래리-파이’ 기술은 압축 과정에서 손실된 음원을 복구시킨다. 무손실 음원의 정보는 50MB(메가 바이트) 정도다. 그런데 이 음원이 MP3 음원으로 압축되면 5MB로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악기 소리의 저음과 고음이 많이 손실되는데, 클래리-파이 기술이 바로 이 부분을 되찾아주는 기술이다. 압축률이 큰 음원일수록 클래리-파이 기술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클래리-파이 모드는 센터페시아 모니터에서 선택하고 해제할 수 있다. 모드를 해제했다가 다시 선택하면 어디 숨겨져 있던 소리들이 다 달려 나오는 듯하다.
덧붙여 K9 렉시콘 오디오에서만 즐길 수 있는 청각 호사는 ‘12채널 웰컴 굿바이 사운드’다. 시동을 걸고 끌 때마다 “오~” 감탄을 낼 정도로 귀가 즐겁다. 이 소리마저 감동적인 이유는 차량 내부에 있는 스피커 모두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EQ900에 경우 클러스터에 있는 작은 스피커만으로 웰컴 굿바이 사운드를 낸다.
하만카돈 인터내셔널코리아 관계자는 “자동차는 이제 감성밖에 안 남았다. 기술은 상향 평준화가 돼 가고 있다. 그에 따라 감성적인 측면을 다루는 오디오 역할이 커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국산차 중 가장 좋은 오디오!” 하면 더 K9의 렉시콘 오디오를 떠올리면 되겠다.
글: 김송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