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8월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한다. 그러나 33일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바티칸에서는 마피아에 의해 교황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바티칸은 충격에 빠졌고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다시 열린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됐다. 어수선하던 바티칸도 새로운 교황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뜬금없이 교황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이 차,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가 교황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의 자동차 업계는 교황의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포드가 ‘프레지덴셜 리무진’을 만들어 교황청에 제공했고 1964년에는 레만 피터슨에서 특별 제작한 차가 교황 바오로 6세에 전달됐다. 그는 뉴욕, 보고타를 방문할 때도 이 차를 사용했다. 이후 교황은 메르세데스-벤츠의 ‘600’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포프모빌(pope mobile)’이라고 부르는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1978년 교황에 오른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고향 폴란드를 시작으로 가톨릭 국가를 방문하기 시작한다. 폴란드에서는 현지 자동차 메이커가 만든 트럭을 개조해 전용차로 사용했고 1979년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포드의 D시리즈 트럭을 사용했다. 그러다 1980년 독일을 방문하면서 교황은 메르세데스-벤츠의 G클래스 230G 모델을 탄다. 벤츠가 만든 SUV를 개조해 투명한 보호창을 붙이고 서서 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후 이 차는 ‘포프 모빌’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차를 오프로드에서도 안락하게 달릴 수 있도록 개발했다. 디자인과 연구는 벤츠의 본고장인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생산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담당한다. 지금까지도 이 생산구조는 유지된다. 연구는 사하라 사막과 독일의 험로를 이어가며 계속됐다. 수작업으로 1975년 처음 G클래스를 만들었고 1979년 생산을 시작한다. 이때 만든 차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황을 위해 개조된다.
이후 G클래스는 다양한 목적으로 개발된다.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세계 35개 국가에서 이 차를 군용으로 도입한다. 오프로드를 달리기 좋다는 장점과 함께 프레임 위에 보디를 얹은 구조로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어느 나라에서는 뒷좌석 대신 기관총을 얹었고 어느 나라에서는 방탄 차체를 이용해 전장을 누볐다. 북한에서도 제 65회 노동절 퍼레이드에 G클래스가 등장했다.
한편, 일반 시장에서는 이 차에 각종 편의장비를 추가해 상품성을 강화했다. 에어컨을 장착하고 자동변속기를 추가했으며 케이블 윈치를 장착했다. 차의 취지에 맞게 본격적인 오프로드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든다. 1982년에는 이탈리아 튜린에서도 230 GE 모델을 선보이며 광폭 타이어를 장착하고 휀더에 방향지시등을 장착했다. 지금도 이어지는 G클래스의 특징이 하나씩 완성됐다.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된 코드명 460의 오리지널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장수 모델로 기록됐다. 네모난 박스형태의 디자인과 투박하기 짝이 없는 문짝과 부품들은 세월이 지나며 오히려 유지보수가 편리하고 고장 날 우려가 적은 실용성과 빈티지 스타일로 탈바꿈한다. 2도어 컨버터블, SUV와 밴 그리고 4도어 밴과 SUV로 등장한 차는 5만대이상 팔리며 인기를 끈다. 특히, 미국에서는 정식 수입이 되지 않았지만 소위 병행수입 시장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 중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특히, 이때 생산한 G클래스 가운데 군대, 경찰, 소방용 등 특수용도로 만든 차는 코드명 461로 분류한다.
1990년에 들어서야 메르세데스-벤츠는 G클래스의 신형을 선보인다. 코드명 463의 이 차는 ABS와 풀타임 사륜구동, 3개의 디퍼런셜 록 시스템을 갖춰 오프로드 주행성능을 크게 강화했다. 1993년에는 8기통 엔진의 500GE 모델을 선보였고 2년간 한정판매한다. 1994년에는 벤츠의 모델명 변경 정책에 따라 ‘G클래스’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1997년에는 2.9ℓ 터보디젤 엔진과 8기통 엔진 등 새로운 심장을 얹으며 개선된다. 이후 현재까지 G클래스에는 5.0ℓ, 5.4ℓ, 5.5ℓ, 6.0ℓ 등 초대형 엔진을 장착했고 가장 작은 엔진이 2.9ℓ 6기통 디젤이며 4.0ℓ 8기통 디젤 엔진이 추가된다.
이후에도 G클래스의 디자인은 큰 변화가 없다. 차축을 늘린 롱휠베이스 버전 그랜드 에디션이 추가됐고 493마력(hp)에 이르는 고성능 엔진을 탑재한 G55 AMG도 등장한다. 2006년 파리오토쇼에서는 2007년식 신모델을 선보이며 메르세데스-벤츠의 다른 차종과 동일한 6.5인치 디스플레이와 타이어 압력감지장치 등 편의장비를 추가하며 변화를 맞이한다. G클래스는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개선된다. 2009년에는 롱 스테이션 왜건에 방탄 개조를 한 ‘G 가드’가 출시됐고 G클래스의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판도 제작된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2012년에 있었다. 네모난 디자인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LED 라이트를 추가하고 주간주행등도 붙었다. 벤츠의 친환경 기술인 블루텍도 적용됐고 카브리올레, 롱휠베이스 스테이션 왜건 등이 추가됐으며 크루즈컨트롤, 블라인드 스폿 시스템을 비롯한 전장부품이 대폭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