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륜구동으로 전환한 대형 럭셔리 세단 에쿠스의 등장은 세계 5위인 현대 자동차 그룹의 위상을 감안할 때 꼭 필요하고도 아주 적절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그 상품성 또한 기대 이상의 수준이어서 에쿠스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첫 등장이 충분히 잘된 것이었지만 4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만난 에쿠스는 4년 반 동안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아쉬움이 많이 발견되고, 또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앞으로 3년여 후에 3세대 에쿠스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높여서 등장해 줄지 벌써부터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승이었다.
앞바퀴 굴림이었던 1세대 에쿠스는 1995년 미쓰비시와의 공동개발로 태어났다. 2세대 에쿠스는 2009년 독자개발한 후륜구동 대형 세단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지난 2012년 12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페이스리프트된 에쿠스는 외관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인테리어는 센터페시아 부분에 꽤 큰 변화를 더했다. 그리고 기아가 K9에서 먼저 선보인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추가됐다. 페이스리프트임에도 변화의 폭이 이 정도로 그친 것은 그 전해인 2011년에 2012년형 모델을 선보이면서 파워트레인을 대폭 개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세대 에쿠스 데뷔 당시 시승한 후 오랜만에 에쿠스를 다시 시승했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VS380 모델로 최상급 프레스티지 트림이 아닌 그 아래급 익스클루시브 트림이다. 외관에서 두드러지는 어댑티브 LED 헤드램프는 초기에는 리무진 모델에만 적용되었다가 2012년형 모델부터 세단에도 적용된 것이므로 페이스리프트에서의 변화는 아니다. 라디에이터 그릴 안쪽 핀들은 초기에 VS380은 가로형, VS460은 세로형이었던 것이 지금은 VS380도 세로형이고, 반광 타입에 핀의 숫자도 9개로 늘어났다. 페이스리프트 모델과 이전 모델을 좀 더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헤드램프 아래 범퍼 좌우에 크롬 장식이 있으면 이전 모델, 없으면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보면 된다. 물론 휠의 디자인도 새롭게 바뀌었다.
인테리어는 변화의 폭이 더 크다. 4년 전에 타 봤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냥 살펴봐선 어디가 바뀌었는지 잘 몰랐는데, 예전 모델의 사진과 비교해 보니 안 바뀐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대표적으로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예전에는 세로로 알루미늄 장식이 좌우에 기둥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가로형으로 대폭 바뀌었다. 그리고 스티어링 휠, 센터페시아 각 부분의 디테일, 센터터널과 기어 레버 형상, DIS II 주변부 등도 모두 조금씩 바뀐 모습이다.
기능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풀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자동 8단 변속기의 전자식 레버 적용이다. 이 두 가지는 대형 럭셔리 세단 경쟁 모델에 대한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장비들이다. 2세대 에쿠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 경쟁 모델에는 장착되는데 에쿠스에는 없는 장비로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나이트 비전 정도를 꼽았는데, 이제 장비의 격차는 더 줄어 든 셈이다.
하지만 데뷔 당시, 세계적인 경쟁모델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첨단 편의, 안전 장비를 대거 장착하면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한 것과는 달리, 4년 반이 지난 지금에는 일부 장비에서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경쟁자들이 앞다투어 적용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에쿠스에는 적용되지 않은 것들이 크게 두드러져 보였다.
대표적으로 계기판이 그렇다. 시승차에는 프레스티지 트림에 적용되는 12.3인치 풀 사이즈 TFT LCD 클러스터가 아닌 기존 기계식 미터와 그 가운데 모니터로 구성된 계기판이 적용되어 있는데, 가운데 모니터는 비교적 크고 다양한 정보를 잘 전달하지만 정작 속도계와 회전계는 정상의 기함에 어울리지 않게 수수하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정보 중에서 주행가능거리와 순간연비, 평균연비를 한 화면에 보여주도록 변경한 방식은 무척 마음에 든다.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전 후방 영상과 어라운드 뷰 영상은 에쿠스의 급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해상도가 떨어진다. 고화질 카메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에는 개인이 구입하는 블랙박스 조차도 풀 HD급 고화질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런 장비 정도는 바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게 좋겠다.
기어레버 아래 DIS II 버튼은 여전히 입체감이 없고 밋밋하다. 오히려 제네시스의 DIS가 패널과 다이얼이 더 멋지고 작동감도 좋다.
지금의 에쿠스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연비 관련 기술이다. 최근 유럽 모델들은 앞 다투어 연비 개선 기술들을 적용하고 있다. 오토 스타트 스톱은 물론이고, 정속 주행할 때는 전체 실린더의 절반을 쉬게 하는 가변 실린더 시스템, 엑셀에서 발을 떼고 탄력 주행을 할 때는 회전수를 아이들링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코스팅 기능, 하이브리드카가 아님에도 전기를 재생 사용함으로써 연비를 개선하는 회생 제동 시스템 등을 장착하고, 공기 저항을 줄이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등 단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절약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엔진도 대형 최고급 세단에 디젤 엔진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가솔린 엔진에도 과급기의 적용으로 출력을 유지하거나 높이면서 배기량은 줄여 연비를 개선하는 다운 사이징 엔진 적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에쿠스는 그 동안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변속기를 8단으로 업그레이드 하긴 했지만, 위에 열거한 기술들은 아직 어떤 것도 적용되어 있지 않다. 엔진도 터보 직분사까지 개선된 것은 아니고 직분사 기술만 적용했다. 지난 4년 간의 어느 시점, 특히 파워트레인을 개선한 시점에 즈음해서 최소한 오토 스타트 스톱 정도라도 적용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오늘날 자동차의 경쟁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연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지금의 에쿠스에서 첨단 편의 장비로는 부족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K9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면서 에쿠스에도 함께 적용되었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아직까지도 첨단 사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도어를 살짝 닫아주면 끌어 당겨서 밀착시켜 주는 고스트 클로징 도어나 뒷좌석 냉난방이 적용되는 시트 등 여전히 풍부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이미 개발된 시스템을 돈을 주고 사 오기만 하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엔진이나 변속기 시스템과 연계가 되거나 주행성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 기술의 도입은 쉽게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튜닝하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현대와 에쿠스의 약점이 바로 그 부분이며, 그래서 지금의 에쿠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흡족하지 못하다.
물론 3세대 모델이 나올 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첨단 연비 기술들이 대거 적용되길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가 이런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면 최근 등장하는 다양한 신모델들에 차급에 따라 조금씩 이런 기술이 적용되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전혀 그런 시도가 없다. 유럽형 시드에 ISG(Idling Stop & Go)를 적용한 것이 전부다.
안전에 대한 부분도 지속적으로 보강할 뿐만 아니라 선도하는 기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도 9개의 에어백을 적용하고, 자세 제어 장치와 차선이탈 경보, 후측방 경보 시스템 등을 도입했지만,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등이 연구하고, 새롭게 적용해가고 있는 기능들에 비하면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들 독일 3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고, 이제는 에쿠스도 당연히 그래야 할 때가 되었다. 결국 같이 따라가지 않으면 한 템포씩 계속 늦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2세대 에쿠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자도 칭찬 일색의 시승기를 썼다. 그 때만 해도 현대가 이 정도의 차를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주행 감각 같은 것은 한국인이 기대하는 대형 세단에서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는 더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으며 최근 연구 개발 부서 내에서도 ‘진정성 있는 차 만들기’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에쿠스 시승기도 S클래스, 7시리즈와 비교해서 쓸 수 밖에 없다.
최근에 불거진 누수, 배기가스 문제를 비롯한 각종 결함 등은 물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방심하거나 철저하지 못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빈도를 줄여야 하고, 발생 규모도 줄여야 하고,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빠르고 정직하게 대처해야 한다.
파워트레인은 2011년에 현재의 엔진과 변속기로 업그레이드 됐다. 엔진은 예전과 배기량이 같지만 직분사 기술을 적용한 V6 3.8 GDI 람다 엔진으로 최고출력 334마력, 최대토크 40.3kg•m의 성능을 발휘하며, 자동 8단 변속기와 어울려 연비는 8.9km/ℓ를 기록한다.
독일 3사의 경쟁모델들은 스탠다드 휠베이스와 롱 휠베이스 모델로 구성되는 반면, 에쿠스는 롱 휠베이스 모델 대신 리무진을 갖추고 기본 세단형의 길이가 독일차들의 스탠다드와 롱 휠베이스 모델의 중간 정도인 5,160mm에 이른다. 이런 구성은 한국 대형 세단 시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5미터가 훌쩍 넘고, 중량이 2톤에 육박하는 거두임에도 334마력의 출력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엔진 회전도 매끄럽고, 가속 시 토크감도 넉넉하다.
에쿠스를 시승해 보면 당연히 무척 편안하고 지극히 편리하다. 그저 안락하게 주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특히 100km/h나 150km/h 이내에서의 주행에 한해서만 생각해 보면 더 이상 뭘 바랄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주행 안정성도 예전에 비해 좀 더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움직이는 거실 소파가 아닌 자동차로서 에쿠스의 매력은 찾아 보기 힘들다. 주행 중 자동차와 도로와 운전자가 서로 교감하면서 주행을 즐길 수 있는 감각적인 달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자동차로서의 에쿠스가 그 이상이기를 바란다면 달리기에 대한 철학이 꼭 필요하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그들이 자동차에 대해 가지는 철학과 가치, 자동차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철학 말이다.
첨단이라 할 수 있는 전자식 기어 레버가 장착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디자인도 멋지고 좀 커 보이는 BMW의 것에 비해 사이즈도 적당하다. 그런데 레버 조작감이 좋지 않다. 너무 빡빡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작동 방식이 BMW나 아우디의 것과 조금 다르다. BMW의 것을 예로 들면 R에서 N을 거쳐 D로 가는 경우나, D에서 N으로, 혹은 N에서 R로 가는 경우 등 언제나 레버는 작동 후 센터로 탄력 있게 복귀하는데, 에쿠스의 것은 N과 D 사이에 복귀하지 않는 단이 존재한다. BMW나 아우디의 전자식 레버에 높은 점수를 줬던 기자로서 에쿠스의 전자식 레버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스티어링 휠은 생각보다 무겁다. 예전부터 이렇게 무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가벼운 스티어링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 무겁게 세팅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속에서 가벼운 것이 문제지 저속에서는 이렇게 무거울 필요는 전혀 없는데, 역시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 세팅 기술이 아직 부족해 보인다. 아울러 스티어링이 무거워졌다고 하더라도 스티어링의 유격은 여전해 급차선 변경 등에서 응답성과 정확성이 높다고도 볼 수 없다.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되는 모델에는 서스펜션 감쇠력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데, 시승차에는 그 기능은 없고, 기어 레버 아래 쪽에 드라이브 모드 선택 버튼이 마련됐다. 드라이브 모드는 노멀, 스노우, 스포츠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모드를 전환하면 엔진과 변속기를 제어해 가속 응답성을 조절 할 수 있지만 서스펜션까지 제어하지는 않는다.
에쿠스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답게 세계 최정상의 경쟁모델들과 견줄 만한 기본적인 베이스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국내는 물론 일부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첨단 편의 장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동차로서의 기본적인 달리기 실력과 매력적인 주행감각, 그리고 철학이 필요하다.
최근 투싼 ix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시승하면서 스티어링의 응답성과 정밀도, 고속 안정성, 가속력 등이 크게 향상된 것을 확인하고 내심 놀랐었던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 나올 에쿠스를 비롯한 현대차들이 그 동안 많이 지적 받았던 주행 성능에 대한 하드웨어적인 발전도 조금씩 이루어 나갈 것이란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번 에쿠스에는 아직 우려가 반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