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럭셔리카로 자리매김했던 롤스로이스 7세대 팬텀이 마침내 생산 종료된다. 2003년 데뷔하고 만 13년 만의 단종이지만 마지막까지 그 품격을 잃지 않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팬텀은 롤스로이스의 기함이다. 세계 최고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며 반세기 넘게 세대를 이어오다가 경영난으로 생산이 중지됐지만, BMW에 인수된 뒤 7세대 팬텀이 등장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팬텀의 활약으로 롤스로이스는 빠르게 성장일로를 걸었고, 그 결과 고스트와 레이스, 던 등 라인업을 대폭 확장할 자금력 마련에 성공했다. 뒤이어 롤스로이스 사상 첫 SUV까지 만들어지니 팬텀이 지난 13년 간 롤스로이스의 대들보같은 존재였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랬던 팬텀의 단종에 아쉬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경영난이나 판매 악화로 단종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롤스로이스는 7세대가 떠나며 팬텀이 잠시 휴식기를 갖지만, 내년 중으로 8세대 팬텀을 출시할 예정이다. 때문에 마지막 한 대도 아쉬움보다는 지극히 영국적인 품격을 두르고 공장을 나섰다.
롤스로이스에 따르면 마지막 팬텀 VII을 구입한 사람은 ‘익명의 롤스로이스 수집가’라고만 알려졌다. 그는 팬텀에 아주 특별한 비스포크 디자인을 주문했다. 바로 1930년대 여객선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입힌 것.
그 결과 우드트림에는 바다를 가르는 정기선과 세계지도가 새겨졌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모티브로 한 자수가 자국 위에 놓였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 차체와 어울리게 최고급 실내 가죽 역시 하늘색으로 마감됐다.
이에 더해 24개 타임존을 표시할 수 있는 전용 디자인의 아날로그 시계가 센터페시아는 물론 뒷좌석 격벽에도 부착돼 우아함을 더한다. 롤스로이스는 이러한 마지막 팬텀의 디자인이 “위대한 시대의 아이콘을 형상화한 것”으로, 롤스로이스의 황금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외관도 은은한 특별함을 과시한다. 익스텐디드 휠베이스의 웅장함에 더해 솔리드 실버 컬러로 칠해진 환희의 여신상, 바디를 가로지르는 롤스로이스 특유의 코치라인이 인상적이며, 맞춤 주문에 따라 타이어에도 흰색 스트라이프를 삽입해 클래식함을 더했다.
이별은 항상 아쉬움을 남기지만 팬텀과의 이별은 아쉬움보다 기대가 더 크다. 롤스로이스가 내년 선보일 차기 팬텀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신형 팬텀은 더 강력한 엔진과 기존보다 가벼운 차세대 아키텍처를 통해 역대 가장 가볍고, 강력하며, 동시에 가장 호화스러운 팬텀이 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롤스로이스는 내년 첫 SUV인 컬리넌을 시장에 선보인다. 슈퍼 럭셔리 브랜드가 한 해에 두 대의 신차를 선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컬리넌은 “팬텀의 SUV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대하고 우아한 SUV다. 벤틀리 벤테이가나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차기 SUV를 견제하면서도 독보적인 어퍼 럭셔리 세그먼트를 개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