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부 자동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논란을 일으킨 내용이 있었다. 바로 자동차 도색과 랩핑이 범죄와 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 규제하는 법률이 제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랩핑 소비자와 사업자 등은 정부의 규제만능주의적 발상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랩핑은 차량을 도색하지 않고 겉에 특정 색상의 시트지를 씌워 간편하게 외부 색상을 변경할 수 있는 튜닝의 일종이다. 작업이 까다롭고 원상복구나 변경이 어려운 도색에 비해 간편하고 색상이 다양할 뿐 아니라 원하는 도안을 인쇄하는 것도 가능해 많은 소비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논란이 된 것은 12월 22일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4569)이다. 만약 법률이 개정되면 아무나 랩핑을 할 수 없게 되는 걸까? 개정안과 관련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차량 색상, 관리 필요한가?
개정법률안의 취지는 범죄예방과 교통방해 등 부작용 개선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자동차등록원부에는 차량의 색상이 기재된다. 하지만 등록원부에 기재된 색상은 관련 대통령령에 따라 ‘경미한 등록 사항’으로 분류돼 별도의 변경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개정법률안에서는 이처럼 차량의 색상이 관리되지 않음으로 인해 색상이 변경된 차량이 대포차나 각종 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며, 도색 외에 차량 색상을 쉽게 변경할 수 있는 랩핑으로 광고 등을 부착할 경우 교통을 방해하고 운전자나 다른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량 색상을 쉽게 바꾸는 것이 정말 위험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코믹 액션영화 ‘택시’를 봤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극중에서 악당의 메르세데스-벤츠 차량들은 범죄 직후 차량을 도색하고 번호판을 바꿔 경찰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도망친다. 물론 현실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도색이나 랩핑을 끝마칠 수는 없겠지만, 색상 관리의 필요성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실제로 경찰이 범죄 용의차량을 추적할 때는 번호판 뿐 아니라 차량 색상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약 번호판을 식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용의차량을 특정 색상으로 한정했는데 색상을 변경한다면 수사에 혼선을 가져올 수도 있다. 때문에 치안 유지와 안전 차원에서도 차량 색상 관리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바뀌나: 허가제 아닌 신고제 돼야
문제는 어떤 식으로 규제하느냐다. 색상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가 적용된다면 관련 업계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정부 차원의 튜닝 활성화 정책으로 자동차 랩핑 분야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만큼 이러한 규제가 치명적일 수 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현행 자동차관리법 제11조 1항에서 변경등록의 대상으로 삼는 등록원부의 기재사항에 ‘자동차의 색상[도색 및 래핑(수리·미관·광고의 목적으로 비닐 등 으로 차량의 표면에 보호막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으로 인한 색상 변경을 포함한다]‘이 추가된다. 즉 랩핑이나 도색을 통한 색상변경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닌, 등록원부 상에 변경등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관건은 변경등록의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다. 현행법에서 자동차 변경등록은 차대번호나 원동기형식이 바뀌었을 때, 소유자나 소유자의 주민등록번호가 바뀌었을 때, 차량의 소유본거지(주로 차주의 주거지)가 바뀌거나 용도변경이 있었을 때 등에만 이뤄진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은 승용차를 상용차로 용도변경하거나 법인 상호나 주소 등이 바뀌었을 때 법인차를 변경등록하는 경우, 이사 후 주소지를 변경등록하는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 절차는 생각처럼 복잡하지 않다. 자동차등록증과 소유자의 신분증을 필참하고 사안 별로 필요한 증명서류와 변경등록신청서만 구비하면 간단한 서류검토 후 즉시 변경등록이 이뤄진다.
가령 도색의 경우는 1급공업사에서만 도색 작업이 가능한 만큼 작업확인서가, 랩핑의 경우는 랩핑사업자의 작업확인서가 구비서류로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개조 시 구조변경신청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는 것과 달리, 차량의 색상 변경은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이 아니므로 이처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허가제의 형태가 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가령 담당공무원이 차량을 직접 확인하고 특정 색상이나 광고랩핑 등을 반려할 경우 사실 상의 허가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유주는 고액을 지불하고 작업한 랩핑이나 도색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중복투자를 하게 된다. 또 담당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허용 여부가 작위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도 면치 못한다.
질서와 자유가 상생하는 튜닝 문화 만들어가야
이러한 개정안이 발표되자 업계와 소비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랩핑과 도색을 규제하는 것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규제만능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랩핑에 대해 규제할 경우 법을 확대해석하면 스티커 부착까지도 금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개정법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극단적 규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순 신고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변경등록절차를 지나치게 까다롭게 만들거나 불필요한 허가 절차를 만드는 것은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극단적으로는 관련 업계를 사장시킬 수도 있다.
특히 특정 색상이나 광고 랩핑이 그 자체만으로 교통흐름을 방해한다는 등 지나친 비약을 삼가고 교통질서와 치안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해당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입법될 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최종적으로 입법이 완료된다면 유관기관에서는 최대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등록절차만을 시행해 관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질서와 자유는 상생하는 것이지, 상호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