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인터넷에는 부품을 모두 분해해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폭스바겐의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오너들은 도어나 범퍼같은 외부 부품부터 시트와 오디오까지 닥치는대로 폭스바겐을 분해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사진을 올리며 자랑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해프닝은 얼마 전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피해자들로부터 TDI 차량을 역매입(buyback)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폭스바겐은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역매입을 시작했다. 대상은 북미에서 판매된 48만 5,000대의 차량이며, 최대 147억 달러(한화 약 17조 7,800억 원)에 달하는 금전배상이 이뤄진다.
문제는 판결문에 쓰여진 한 줄의 문장에서 비롯됐다. 미국 법원은 폭스바겐 딜러가 역매입하는 차량이 작동 가능한(operable) 상태여야 함을 명시했는데, ‘작동 가능’의 의미를 “엔진의 힘으로 자력 주행이 가능한” 상태라고 해석한 것. 특히나 법 해석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에서 내려진 이런 모호한 판결은 안 그래도 성난 폭스바겐 운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몇몇 오너들은 이 판결문을 “주행만 가능한 상태라면 상관없다”고 유추해석했고, 이에 따라 차에서 쓸 만한 부품들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가령 헤드라이트나 범퍼, 외부 패널이나 내장재 등은 자가정비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매우 인기있는 중고거래 상품이다. 이처럼 일부 부품들을 떼어내고 차량을 반납해도 딜러 역시 “주행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차량을 매입한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많은 오너들이 너도나도 때 아닌 애마 분해에 나섰다. 신시네티에 거주 중인 조 메이어(Joe Mayer)는 자신의 6세대 골프를 거의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분해했다. 심지어 휀더와 보닛까지 떼어내며 반납을 준비했고, 이러한 오너들이 늘어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큰 이슈가 됐다.
사태가 확산되자 미국 법원은 선을 그었다. 미 연방 법원의 브레이어 판사는 “폭스바겐이 역매입하는 차량은 도로 위를 달리던 컨디션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며 “오너들은 차를 분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만약 필요하다면 차량을 악의적으로 분해해 역매각하는 오너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연방 통상 위원회 관계자는 폭스바겐 오너들이 부품을 분해한 뒤 역매각하는 행위가 “거래의 신의에 반하는 행위”라며 “단순한 손상이나 흠집은 역매입 거부 사유가 되지 않지만 신의에 반해 악의적으로 부품을 분해하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업계 관계자들 역시 일부 오너들의 욕심으로 더 까다로운 역매입 조건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중고 거래로 부수입을 얻어보려 했던 오너들의 부품 분해 행위는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위 자체가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태로 말미암아 느낀 배신감을 갚아주고자 하는 일종의 보복심리라며 오너들의 성난 행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직 리콜 및 보상 절차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미국의 상황이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