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상반기는 국산차 대전(大戰)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국산 신차들이 출격해 각축전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 차는 혜성처럼 나타나 중형 세단 시장을 뒤집어 놓은 르노삼성의 SM6였다. 차별화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내사양을 앞세워 절대지존인 쏘나타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SM6가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신차 그 이상이다. 가장 무난하고 몰개성적인 세그먼트로 대변돼 온 중형 세단에 젊은 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디자인과 상품성을 두르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뒤이어 출시된 말리부까지 고무적인 판매를 기록한 것도 이러한 SM6의 시장 재편의 덕이 컸다.
그리고 SM6 출시 6개월을 맞이한 지금, 르노삼성은 하반기와 내년을 위한 또 하나의 전략모델 QM6를 선보였다. QM6는 부산에서 생산돼 전 세계로 수출하는, 르노삼성 입장에서도 중요한 수출상품이다. 수출명은 QM5와 마찬가지로 콜레오스지만, 체급을 한껏 키워 이제는 중형 SUV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달 사전계약이 시작되고 하루 만에 계약이 2,000대를 돌파해 르노삼성에 대한 높아진 기대를 증명했다. SM6의 첫날 계약대수가 1,300대였고, 올해 신차 중 사전계약 첫 날 2,000대를 돌파한 차는 기아 K7과 쉐보레 말리부 뿐이었다. 반면 제원 상 경쟁모델보다 작은 차체 때문에 “작고 비싼 차”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QM6의 무게추는 과연 성공과 실패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2007년 출시된 르노삼성의 첫 SUV, QM5는 9년동안 르노삼성의 허리를 담당했다. 그러니 “사골”이라는 비아냥과 불만이 터져나온 것도 당연했다.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판매된 콜레오스를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두 대의 차로 분리했다. 준중형 SUV에 해당하는 카자르(Kadjar)를 선보이고, 콜레오스는 전장을 150mm나 늘려 명실상부한 중형 SUV로 재탄생시킨 것.
SM5가 대중모델을, SM6가 프리미엄 중형을 담당하는 세단 라인업과 달리 QM5가 완전히 단종되고 QM6가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이처럼 QM6는 가족관계를 들여다보더라도 명백히 QM5의 후속인 까닭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윗급으로 올라섰으니 숫자를 하나 높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다.
당연히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것은 크기다. 전장은 QM5 대비 150mm 늘어난 4,675mm에 전폭과 전고는 조금씩 줄어 각각 1,845mm와 1,680mm다. 대표적인 경쟁모델 싼타페와 비교하자면 전장은 25mm 짧고 전폭은 35mm, 전고는 10mm씩 빠진다. 싼타페보다 훨씬 큰 쏘렌토에 비하면 차이는 더 커진다. 반면 휠베이스는 2,705mm로 싼타페보다 5mm 길기 때문에, 전장 대비 실내공간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QM6는 개발 단계부터 SM6와 함께 디자인됐기 때문에, 매우 긴밀한 패밀리 룩을 유지하고 있다. 전 모델에 기본 적용된 C형 LED 주간주행등이나 헤드라이트와 이어진 웅장한 라디에이터 그릴, 측면의 시선을 사로잡는 가니쉬 등이 그렇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인 RE 시그니처 모델로, LED 헤드라이트까지 탑재됐다.
상당히 볼륨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범퍼 하단부까지 투톤이 아닌 바디 컬러로 꾸며져 SUV보다는 도시적인 세단 감성이 강하게 와 닿는다. 그렇다고 샌님같은 모양새는 아니다. 프론트 휀더와 리어 휀더에 두툼하게 자리잡은 근육질 바디라인은 SM6보다는 훨씬 남성적인 색채가 짙다.
개인적으로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인상적인데, 대부분의 SUV들이 볼륨감 있는 뒷모습을 선호하는 반면 QM6는 트렁크를 가로지르는 테일램프 배치로 확실하게 포인트를 줬다. 또 테일램프 모서리에서 범퍼로 이어지는 곡선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뒷태에 변조를 가한다. 테일게이트 라인은 일견 아우디의 Q7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QM6가 거친 모습보다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점은 실내에서도 잘 드러난다. 8.7인치 S-링크 디스플레이가 명료한 세로형 센터페시아를 꾸미고, 물리버튼은 최소한으로 절제됐다. 볼륨 조절이나 공조기 조작은 물리버튼을 살려뒀어도 좋았겠다. 디스플레이의 기능은 SM6와 대동소이한데, 몇몇 퀵메뉴 버튼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썩 직관적이지는 못하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운전석과 동승석 모두 손잡이가 장착된 점은 그 와중에 SUV의 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디테일이다. 그 밑으로는 적당한 크기의 수납함이 마련됐고-무선충전패드가 들어가면 딱 좋을 크기다-, 컵홀더는 특이하게 두 개의 큰 컵홀더와 애매하게 작은 수납공간이 사선으로 교차하는 형태다. 수납공간이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실내의 수납공간은 35L 가량 마련됐다.
실내 품질은 기대 이상이다. 어딘가 프랑스 스타일의 허술함도 숨어있지만, 보드라운 가죽의 재질감이나 마감 품질에 많이 공을 들인 느낌이고, 앰비언트 라이트도 그럴싸하다. 손 닿는 부위는 대부분 고급스럽게 꾸며졌다. 반면 버튼의 재질과 조작감, 시트의 작동 등은 상대적으로 덜 고급스럽다.
1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도 2열 레그룸은 다리를 펼 수 있을 정도다. 긴 휠베이스 덕분이다. 2열 시트포지션 자체가 높은 편인데, 등받이 리클라이닝이 없어 다소 꼿꼿이 선 자세로 앉아야 한다. 2열 통풍구와 2개의 USB 충전 잭, 시거잭, 2단 열선 시트 등이 마련됐다.
공간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지만, 트렁크만큼은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제원 상 트렁크 용량은 620L에 달하지만(콜레오스 기준), 실제로는 웬만한 중형 세단 트렁크보다도 작아 보인다. 트렁크 하단 공구함에 약간의 추가 수납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형 SUV에 기대하는 넉넉한 트렁크에는 한참 못 미친다. 많은 짐을 실어야 한다면 진지하게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솔린 2종, 디젤 2종 등 4종의 파워트레인이 시판되지만, 한국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2.0 디젤 한 종류가 소개됐다. 르노가 개발한 2.0 dCi 엔진은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38.7kg.m을 발휘해 일반적인 2리터급 디젤 엔진의 성능을 낸다. 디젤엔진으로선 특이하게 자트코제 엑스트로닉(X-tronic) CVT가 조합된 점도 인상적이다.
앞서 SM5 등에도 엑스트로닉 CVT가 탑재됐었지만 영 실망스러운 성능을 냈다. 반면 QM6에 탑재된 것은 최신 세대 CVT로, 자트코가 자랑하는 D-스텝 기능을 추가한 점이 특징.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CVT처럼 무단변속을 실시하지만, 순간 가속력이 필요할 때는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임의로 기어비를 설정해 회전수를 높이며 가속한다. 가속력과 효율을 동시에 잡는 세팅이다. 수동 모드로 전환하면 7단의 임의 기어비가 배분돼 보다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거나 내리막에서의 엔진브레이크 활용이 가능하다.
이 조합이 선뜻 와닿지는 않지만, 저회전 영역에서 높은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디젤 엔진과 CVT의 궁합은 예상 외로 좋다. 초기 가속에서 다소 심한 터보랙이 느껴지지만 일단 속도가 붙으면 실용 영역 회전수를 쭉 유지해주는 변속기 덕에 터보랙은 사라지고 넉넉한 토크가 꾸준히 전달된다. 0-100km/h 가속은 2WD가 9.4초, 4WD가 9.6초를 기록한다.
경쟁모델인 싼타페와 쏘렌토의 2.0L R엔진이 186마력의 최고출력과 41.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기 때문에 QM6의 출력을 열세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 간과한 것은 QM6가 경쟁 모델 대비 100kg 이상 가볍다는 점이다. QM6의 공차중량은 1,645~1,760kg로 싼타페 2.0(1,790~1,870kg)나 쏘렌토(1,840~1,946kg)보다 훨씬 가볍다. 4륜구동을 포함한 2.0 풀옵션 기준으로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하면 QM6가 가장 뛰어나다.
서스펜션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QM6는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 타입을 채택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QM5의 하체 세팅은 평가가 어려울 정도로 구식이었다. 부드럽다 못해 휘청이는 서스펜션은 좀처럼 속도를 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QM3와 SM6를 거치면서 르노삼성의 하체는 빠르게 개선됐고, QM6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경쟁차들보다 단단한 느낌이다.
SUV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약간의 롤링과 피칭은 존재하지만 초고속 주행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고 와인딩 로드에서도 허둥대지 않는 노련한 세팅이 놀랍다. 독일차의 묵직함보다는 프랑스차의 쫀득함에 가까운 느낌이다. 불과 한 세대만에 이렇게 진보하는 것은 어떤 회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자제어식 4륜구동은 평상시 전륜에 100% 구동력을 전달하다가 상황에 따라 후륜으로 50%까지 배분한다. 50:50으로 구동력을 고정하는 락 기능 외에 전륜구동 2WD로 고정하는 기능이 있는 점은 특이하다. 구동력은 디지털 클러스터에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그 밖에 전방추돌경보(FCW)와 능동긴급제동(AEB), 차선이탈경보(LDW), 하이빔 어시스트, 사각지대경보(BSW), 운전자 피로경보 등 주행안전사양이 탑재됐다. 기왕이면 차선유지보조(LKAS)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같은 반자율주행 기능도 탑재됐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소형 SUV인 티볼리에도 LKAS가 탑재됐는데 QM6인들 못할 이유가 없다. 안전사양은 다다익선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QM6에 대한 기대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SM6의 경우 중형 세단 시장을 주름잡던 쏘나타와 K5가 세대교체 후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뛰어난 상품성으로 승부를 걸었지만, 중형 SUV 시장의 강호인 싼타페와 쏘렌토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 현대기아차의 판매 순위 상위권에 포진해 월 5,000~6,000대 이상 꾸준히 판매되고 있어 QM6가 비집고 들어 올 자리가 있을 지, 회의적이었다.
물론 2% 아쉬운 점들은 있다. 비좁은 트렁크나 실내 마감의 아쉬움 등이 그렇다. 하지만 QM5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QM6의 상품성은 눈부시게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르노와 닛산의 기술력이 결합된 파워트레인이나 깜짝 놀랄 정도로 세련되게 진화한 서스펜션, 고급스러운 재질과 부족함 없는 공간 활용도 등 몇몇 단점을 충분히 상쇄할 만한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이다. 웅장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은 SUV에 기대하는 남성성과 고급차에 걸맞는 섬세함을 고루 갖췄다. 디자인 하나만 보더라도 경쟁차와 충분히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2,740~3,470만 원에 포진한 가격대도 납득 가능하다.
감히 말하건대 QM6는 SM6와 마찬가지로 동급 시장의 판을 흔들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동급 시장의 라이벌들, 특히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 온 싼타페와 쏘렌토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이미 춘추전국시대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