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푸조 돌풍”을 불러 일으켰던 2008에 이어 시트로엥 C4 칵투스가 지난 달 한국 땅을 밟았다. 사실 조금 늦은 감도 있다. 지난 해 서울모터쇼에서 처음 한국에 소개된 뒤로 오매불망 출시를 기다리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
개성 강한 소형 크로스오버로는 이례적으로 유럽 시장에서 15만 대 이상 팔려나가는 “대박”을 친 탓에, 물량 확보가 어려워 한국에 들어오는 데에 1년이 걸렸다. 날고 기는 패션카들도 울고 갈 디자인과 일상의 불편함을 반영한 참신한 설계가 실용주의적인 유럽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다.
시트로엥의 입장에서 C4 칵투스는 반가운 신차다. 한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판매량을 끌어올릴 볼륨모델의 역할도 맡았다. 과연 C4 칵투스는 한국에서 시트로엥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시트로엥의 작명 방식을 되짚어보자. 숫자는 차급을 의미하고, 그 뒤에 특정 명사를 붙여서 가지치기 모델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원래는 대중차 라인업을 C로, 프리미엄 라인업을 DS로 구분했지만 DS 브랜드가 분리독립한 지금은 C 라인업만 남았다.
가장 작은 C1부터 시작해 기함인 C6까지 있는데, C4는 C-세그먼트, 한국으로 치자면 준중형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그리고 뒤에 “피카소”가 붙으면 실용성을 강화한 MPV나 미니밴이 된다. 한국에 소개된 C4 피카소를 예로 들자면 준중형 플랫폼으로 만든 MPV가 되겠다.
반면 C4 칵투스는 이러한 룰을 벗어나는 이단아적 존재다. C4 칵투스는 C4가 아닌 B-세그먼트의 C3와 PF1 플랫폼을 공유한다. 푸조의 208, 2008과 DS3도 형제차다. 그럼에도 C4라는 이름을 쓴 것은 컴팩트 SUV에 걸맞게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칵투스라는 이름은 200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C-칵투스라는 컨셉트카에서 처음 쓰이고, 한참이 지난 2013년에서야 양산차와 비슷한 컨셉트카로 재탄생했다. 소형 크로스오버라는 컨셉을 이어받은 칵투스 컨셉트카는 파격적인 설계와 디자인을 곳곳에 도입했고, 놀랍게도 거의 변화 없이 양산 모델에 도입됐다.
그렇기 때문에 C4 칵투스가 도로 위의 컨셉트카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위적인 프랑스 차의 디자인은 쉬 적응되지 않지만, 이전에는 부담스러웠다면 C4 칵투스는 “호감형” 개성이다. 마치 동글동글한 외관이 곰인형 젤리를 연상시킨다. 컬러도 어찌나 톡톡 튀는지, 시승차에 적용된 “젤리 레드” 외에도 파스텔톤 하늘색이나 쨍한 노란색의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외관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에어 범프(Air Bump)”다. 양 옆 도어에 세계 최초로 장착된 에어 범프는 쉽게 생각해서 택배 포장에 쓰는 에어캡과 같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폴리우레탄 재질로 변색이나 오염에 강하면서 내부의 에어 캡슐이 충격을 흡수하고 스크래치가 생겨도 도장면에 비해 부담이 없다.
비좁은 주차장과 싸워야 하는 한국의 도로환경에서, “문콕 테러”를 원천적으로 방지해 주는 에어 범프는 매우 실용도가 높다. 도어 뿐 아니라 앞뒤 범퍼 모서리와 테일게이트 하단도 플라스틱 소재를 폭넓게 도입해 개성있는 외관을 완성함과 동시에 생활 스크래치나 불의의 파손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에어 범프는 차치하고라도 개성 넘치는 외관은 앞서 대표적인 패션카로 손꼽혀 온 미니나 피아트 500, 폭스바겐 비틀같은 차들을 모두 평범해보이게 만든다. 서핑보드를 닮은 루프랙 디자인이나 테이핑을 이용해 플로팅 루프를 구현한 측면 디자인, C4 피카소와 비슷한 눈썹모양 LED DRL 등이 그렇다.
실내 디자인도 기성 자동차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당장 가죽 손잡이 모양의 도어 핸들부터 참신하다. 이 디자인은 위로 열리는 독특한 글러브 박스 상단 장식에도 사용된다. 글러브 박스를 위로 열기 위해 동승석 에어백은 루프로 옮겨갔다. 에어백을 옮겨 대쉬보드 부피를 줄인 점도 특이하다.
소파 형태의 시트는 센터 암레스트를 올리면 하나의 벤치 시트처럼 보인다. 1열에 몸집이 큰 사람이 앉으면 요긴하다. 푹신한 시트가 편하기는 하지만 스티어링 휠이 텔레스코픽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시트포지션이 나오지 않는 점은 흠이다.
디지털 계기판과 메인 디스플레이는 마치 태블릿 PC처럼 네모난 형태로 대쉬보드 위에 올려두고, 꼭 필요한 버튼 외에는 터치 메뉴로 집어넣었다. 터치 감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풀 옵션 모델을 구입해도 순정 내비게이션이 없는 점은 조금 의아하다. 주 수요층인 젊은 소비자들이 순정 내비게이션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인데, 정작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쓰자니 거치대를 쓰기가 마땅치 않다. CD 데크도 없고, 독특한 통풍구 형상때문에 통풍구 클립 타입을 쓰기도 불편하다. 순정 내비게이션은 원한다면 출고 옵션으로 장착이 가능하다고는 한다.
센터페시아에는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변속기 레버를 아예 없애고 버튼식 변속기를 채택하는 한편, 곳곳에 자그마한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다만 컵홀더는 여전히 부족하다.
전장이 4,160mm로 트랙스(4,255mm), 티볼리(4,195mm)보다 훨씬 짧지만 휠베이스는 2,590mm에 달해 경쟁자들보다 길거나 비슷하다. 즉 작은 차체에 비해 실내공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확보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2열 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넓어 근거리라면 성인이 타기에도 부담없다.
장점만 나열한 것 같은데,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명확하다. 우선은 파워 윈도우가 아닌 틸팅식 2열 윈도우. 스타렉스같은 상용차에서나 많이 볼 법한 2열 윈도우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유럽에서는 소형차에 많이 쓰이는 구조지만 한국에서는 영 낯설다. 가죽 시트를 아예 선택할 수 없는 점도 한국에서는 거부감이 든다.
최상위트림에 적용되는 글래스 루프도 그렇다. 뛰어난 개방감은 만족스럽지만 루프 스크린이 없기 때문에 하늘을 보기 싫을 때도 강제로 봐야 한다. 4중 자외선 차단 유리를 적용해 그렇게 덥지는 않다고 주장하지만, 올해같은 폭염에서도 별 문제 없을 지는 미지수다.
파워트레인은 1.6L BlueHDi 디젤 엔진만 도입됐다. 최고출력은 99마력, 최대토크는 25.9kg.m으로 출력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넉넉한 토크가 있어 일상주행에는 부담이 없다.
변속기는 ETG6 반자동 변속기가 기본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미움받는 변속기지만, 수동에 기반해 직결감이 뛰어나고 수동보다도 연비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 변속되는 순간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살짝 떼 주면 특유의 울컥이는 변속충격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기존 ETG6나 푸조 MCP와의 차이점은 변속 버튼 채택으로 완전한 수동모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패들 시프트는 탑재됐지만 완전 수동모드로 단수를 고정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내리막에서 엔진브레이크 활용이 조금 어렵다.
아무래도 소형 크로스오버기 때문에 절대적인 주행성능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시트로엥 특유의 쫀득한 감각은 온전하다. 기대 이상으로 경쾌한 가속력과 더불어 작은 차체와 탄탄한 서스펜션은 제법 노련한 움직임을 실현한다. 다만 기본적으로 지상고가 높기 때문에 롤링이나 피칭은 감수해야 한다.
크로스오버라고 하지만 오프로드 주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상고도 도심에서의 운전 편의성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유럽 사양에 탑재된 그립 컨트롤이 추가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인연비는 복합 17.5km/L이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연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포츠 주행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이 섞인 주행에도 공인연비를 쉽게 상회했고 조금만 연비주행을 하면 20km/L 이상도 어렵지 않게 기록한다. 연비가 너무 잘 나와 “뻥연비”라는 우스갯소리는 여전하다.
소형 SUV의 유행이 한 풀 꺾였다지만 여전히 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 시장이다. 또 젊은 층의 생애 첫 차로 많이 선택되는 세그먼트인 만큼 소형 SUV를 통한 인지도 상승은 장기적인 브랜드 성장 견인력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C4 칵투스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기성 자동차의 개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설계와 디자인으로 출시 초기 많은 이슈몰이에 성공했고, 시승 중에도 여러 번 지나가던 이들로부터 차에 대해 질문을 받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 시트로엥의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DS를 포함해 월 50여 대 남짓 판매되는 시트로엥으로서는 고무적인 200대의 사전계약은 물론 그 뒤에도 꾸준히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특히 국산 경쟁모델과 견줘도 손색 없는 2,490~2,890만 원의 공격적인 가격 책정은 첫 수입차에 대한 망설임을 없애준다.
물론 이런 달콤한 매력 이면에는 한국인에게 낯선 쌉싸름한 정서 차이도 느껴진다. 직물 시트나 글래스 루프, 리어 윈도우 말이다. 그런 이질감을 기꺼이 감수할 수만 있다면 어떤 라이벌보다도 운전자를 돋보이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실용적인 패셔니스타임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