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량과 사고를 낸 후 도망치는 얌체 운전자들로 인한 피해가 나날히 늘어나는 가운데,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주차된 차와 사고를 낸 뒤 연락처를 남기거나 사후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망치면 최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 등 20대 국회의원 10명은 지난 6월 15일, 교통사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의무 제공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54조에서는 사고 발생 시의 조치법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제1항에서는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이하 “교통사고”라 한다)한 경우에는 그 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이하 “운전자등”이라 한다)은 즉시 정차하여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해 운전자의 사고 후 조치 의무를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운전자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반드시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사고의 심각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락처를 전달하고, 중상을 입은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부르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만약 이런 조치를 실시하지 않는 경우 “사고 후 미조치” 혐의, 이른바 “뺑소니”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 후 조치 의무는 사람이 없는 주차된 차량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동조 제2항 단서에서 “다만, 운행 중인 차만 손괴된 것이 분명하고 도로에서의 위험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해 차량 파편이 흩어지지 않고 단순히 상대 차량과 충돌하거나 긁은 경우의 조치 의무를 면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행법의 “구멍”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는 나날히 커지고 있다. 주차된 차량과 사고를 내고 도망치는 물피도주 사건은 연 평균 40만 건 이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지급되는 보험금은 1,000억 원에 달해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령 블랙박스나 CCTV를 이용해 도망친 운전자를 찾더라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험처리 등 보상만 해 주면 돼 “잡혀도 본전”이라는 생각의 물피도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미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물피도주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하고 있다.
실제로 운전자 Y씨는 최근 주차해 둔 차량을 누군가 파손하고 도망쳤지만, 가해자를 잡을 수 없었다. Y씨는 경찰서까지 찾아갔지만 “형사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CCTV 조회 등 수사에 제한이 있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앞으로 이러한 주차 테러 사건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서는 제54조 2항의 면책조항을 삭제, 주차된 차와 사고를 낸 후 도망쳐도 뺑소니와 동일한 사고 후 미조치죄를 적용한다. 따라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차된 차와 사고를 냈을 경우 가해자가 연락처, 주소 등 인적사항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인명 피해가 없더라도 가해자의 책임을 강화해 억울한 피해를 막고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지난 국회에서도 여러 번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물피 사고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강력한 예방 효과도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