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부산 남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 연료펌프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해당 차량은 현대 싼타페 2002년형 디젤 모델로, 고압펌프 결함으로 무상수리 대상에 해당하는 차량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고 차량은 교차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가속한 뒤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해 노변에 불법주차된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이 사고로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두 아이와 두 아이의 엄마 한모(33)씨, 외할머니 박모(60)씨 등 4명이 숨지고 운전자인 외할아버지 한모(64)씨는 중상을 입었다.
운전자 한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증언해 제동장치 고장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동시에 이상 가속현상이 있었던 만큼 급발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해당 차량이 고압펌프 결함으로 무상수리가 이뤄졌던 것이 취재결과 확인됐다. 한국 소비자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07년 4월 5일 부로 현대자동차 싼타페 디젤 차량에 대해 고압펌프 무상수리가 실시됐다. 해당 차량은 2000년 11월 15일부터 2004년 12월 30일까지 생산된 19만 8,512대의 싼타페 디젤이다. 무상수리기간은 해당일로부터 1년 간이었지만, 이후에도 동일 증상으로 입고된 차량에 대해서는 무상수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함은 보쉬 사에서 생산된 고압 연료펌프에서 발생했다. 모비스 부품체계 상의 품번은 33100-27000이다. 고압펌프의 실링 불량으로 연료 누유가 발생하는데, 엔진 구조 상 새어나온 연료가 엔진오일 라인에 혼합되는 것.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엔진오일에 경유가 섞이면서 점차 오일량이 늘어나고, 늘어난 오일이 엔진 연소실로 역류하면서 인젝터에서 분사된 연료와 섞인다. 그럼으로써 정상치보다 많은 연료가 유입되고, 결과적으로 비정상적인 엔진 회전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순간적으로 급가속이 이뤄지고 역류한 엔진오일이 연소하면서 흰 연기를 내뿜는다. 엔진 회전수가 정상치를 뛰어넘은 5,000rpm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고열로 엔진과 인젝터, 터보차저 및 냉각계통 등 여러 부위가 파손되고 나서야 엔진이 멈추게 된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등에서 “싼타페 고압펌프”를 검색하면 1세대 싼타페의 고압펌프 결함으로 인한 비정상적 출력상승 현상이 기록된 블랙박스 영상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엔진 회전수가 급상승하면서 흰 연기를 뿜어내는 현상이 확인된다. 동호회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차주들의 경험담이 올라와 있는데, 비정상적인 급발진현상이 발생해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키를 뽑아도 한동안 엔진이 터질 듯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같은 결함 증상은 싼타페 뿐 아니라 동시대에 같은 D 엔진 파워트레인을 공유했던 현대 트라제, 현대 1세대 투싼, 기아 2세대 스포티지, 기아 X-트렉 등에서도 발견돼 실제로는 싼타페 뿐 아니라 훨씬 많은 차량들이 결함을 겪고 무상수리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해당 결함에 대한 현대차의 정책이 공개적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였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제작 결함 또는 구조적 결함으로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때 발효되는 자동차 리콜(제작결함시정) 이 이뤄질 경우, 국토교통부를 통해 주요 언론에 보도자료가 송부되고 차량 소유주에게도 우편을 통해 결함 사실 및 리콜 안내가 송부된다.
반면 무상수리는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결함을 인정하고 수리하는 것으로, 법적 강제성이 없다. 즉, 실제로 결함을 인지하고 정비소를 방문한 차량만 수리가 이뤄지고 언론 노출이나 소유주에 대한 수리 통지는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주로 무상수리 정보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동호회 등을 통해 공유되기 때문에 일반 차주들은 자비로 수리를 하거나 아예 결함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해당 결함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잠재적 고장의 위험을 안고 차를 운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싼타페의 고압펌프 결함은 주행 중 발생하면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또 2004년 이후에 생산된 차량의 경우 동일한 고압펌프 결함이 발생했음에도 “수리 권고나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상수리를 거부해 많게는 수백 만 원에 이르는 수리비를 소유주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부산에서 발생한 사고가 실제로 이러한 결함과 직결돼 발생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국토부는 해당 사고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초기 조사는 교통사고가 난 차량에 한정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해당 기종의 일반적인 제작결함이라고 판단될 경우 추가 조사와 함게 리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러 사고에서 “급발진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온 현대차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급발진을 유발할 수 있는 결함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일가족의 비극을 야기한 이번 사고에 대해서는 급발진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더욱이 사고 연관성과 무관하게 잠재적 사고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차량에 대해서 현대차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제조사로서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도록 리콜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제조 결함 불만에 대해 현대차의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