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191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독일, 러시아, 영국이 얽힌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에 빠진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축이 맞붙었다. 이후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했고 이듬해 1차대전은 끝났다. 1919년 파리평화협상과 베르사이유협정 조약으로 다시 세계는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불붙었던 자동차 개발의 열기가 전쟁으로 인해 군수물자에 집중됐다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본문: 최초의자동차가 등장한 지 불과 20년 만에 자동차는 어수룩한 모습을 모두 떨쳐냈다. 전쟁으로 인한 공백은 오히려 공장과 공업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자동차 개발 열기가 불타올랐다. 1920년대 자동차는 보다 확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급차는 고급스럽게 대중차는 실용적으로 변모하고 세계적으로 자리 잡은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기술개발의 원천이 된다.
전쟁 이후 세계는 대공황에 빠졌지만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들은 오히려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 역시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호화 자동차는 마차를 생산하던 장인들의 공방 이른바 ‘코치빌더’를 통해 만들어졌다. 엔진과 차체, 변속기 등을 갖춘 자동차 뼈대 위에 코치빌더가 만든 화려한 차체를 얹었다. 지금은 아우디로 합병한 호르히, 고급차를 생산하던 부가티, 여전히 최고급차로 유명한 롤스로이스와 미국의 고급 브랜드 링컨 등이 화려한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1927년 부가티에서 선보인 타입 41 루와얄은 1만2760cc의 초대형 엔진을 얹고 304마력의 엄청난 출력을 자랑했다. 전 세계의 왕족을 겨냥한 차로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거대하고 화려해 단 6대만 팔렸다.
반면, 대중차의 인기도 늘어났다. 포드의 대량생산으로 자동차의 가격이 내려갔고 유럽과 미국에서 중산층의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실용적이고 저렴한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1ℓ 미만의 소형 엔진을 장착하고 4개의 바퀴, 4개의 브레이크를 장착한 기본적인 자동차가 등장했다. 이보다 조금 더 큰 차로는 유럽에선 1.5ℓ 언저리의 중형 엔진에 튼튼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한 차가 인기를 끌었고 미국에서는 중산층의 자동차도 4ℓ를 넘나드는 대형 엔진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도 포드의 자동차가 일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신문 광고에는 포드와 쉐보레의 자동차 판매점이 서울 태평로에 자리 잡았다고 전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자 기술도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1921년 듀젠버그는 최초로 4륜 유압브레이크를 적용했고 1925년 베를린의 엔지니어 휀팅거는 자동변속기를 개발해 벤츠에서 테스트했지만 양산하진 못했다. 1926년 캐딜락은 최초로 안전유리를 장착했고 1927년 독일 오펠에서는 최고속도 238㎞/h에 이르는 로켓 프로펠러 자동차 ‘RAK’을 제작해 발표했다. 또한, 최초의 자동 와이퍼가 포드 링컨에 의해 1929년 등장하는데 압축 공기를 사용하는 진공 모터로 작동했다.
▲ 오스틴 세븐, 1922년
영국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든 자동차다. 오스틴은 18세의 스탠리 엣지와 함께 집에서 이 차를 완성했다. 자동차의 기본적인 형태를 모두 가져왔고 작고 실용적이었다. 앞에는 4기통 696cc의 소형 엔진이 장착됐고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이었다. 또,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4바퀴에 모두 브레이크를 장착한 안전한 자동차였다. 출시 이후 약 17년 동안 29만924대가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뒀다.
▲ 포드 모델 A, 1927년
20세기 초반 창업 이후 위기의 포드를 구해낸 ‘모델 A’가 1920년대 다시 등장한다. ‘모델 T’로 큰 성공을 거둔 포드는 미국 중산층을 위해 ‘모델 A’를 대량생산한다. 포드의 본사가 있는 미국 미시간 디어본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독일, 덴마크, 아일렌드, 영국, 오스트리아에서도 생산한 이 차는 1932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484만9340대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택시로 도입되기도 했고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갱들의 자동차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 란치아 람다, 1922년
세계최초로 프레임과 차체가 하나로 된 모노코크 형태의 섀시를 갖춘 자동차로 당시에는 최신형 기술을 자랑하며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원조로 불린다.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2120cc 4기통 엔진을 얹었고 최고속도는 113㎞/h, 최대출력은 49마력이었다. 독립적인 서스펜션과 쇽업쇼버를 장착해 승차감을 개선했고 4바퀴 모두에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란치아 람다는 특히 당대의 최고 스타였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차를 몰며 달리는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 부가티 타입 41 루와얄, 1927년
루와얄(Royale)이라는 이름처럼 왕족 등 최상류층을 위해 만든 자동차다. 당시에 가장 비싼 자동차로 통하던 롤스로이스 팬텀보다 가격이 3배 이상 비쌌다. 따라서, 생산기간도 길었고 가격도 비싸 애초 25대 생산을 목표로 했지만 6대만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3대는 스페인국왕, 루마니아국왕, 벨기에국왕에게 인도될 정도로 왕족을 위한 자동차였다. 1920년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이 차는 무게 2.5톤에 길이가 2.7m에 이른다. 1만2760cc이 초대형 엔진으로 300마력 출력을 냈으며 3단 변속기를 장착하고 2단에서 최고속도 145㎞/h를 냈다. 현재는 자동차 수집가들이 가장 탐내는 차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도 모 대기업 회장이 섀시넘버 41.150 ‘Berline de Voyage’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각각 6대의 섀시가 모두 다른 코치빌더에 의해 제작돼 모양과 색깔이 다른것이 특징이다.
▲ 호르히 타입 350, 1928년
지금은 사라진 독일 브랜드 호르히가 화려한 자동차로 타입 350을 내놨다. 1926년 선보인 303의 개선모델로 직렬 8기통 3950cc 엔진을 얹었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와 경쟁하던 호르히는 고급차를 내놓기로 하고 12기통 자동차 670을 생산하기도 했다. 호르히는 1899년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세운 회사로 1928년에는 DKW에 인수되고 아후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유니온으로 합병된다.
▲ 벤틀리 스피드 식스, 1928년
유럽에서 보기 힘든 6597cc의 대형 엔진을 장착한 럭셔리 스포츠카다. 1920년대 인기를 끌었던 르망 레이스에서 1929년과 1930년 두 차례나 우승을 하며 가장 성공한 스포츠카로 자리 잡는다. 1924년 등장한 스탠더스 식스의 개량형으로 건식 클러치를 사용하고 4단 기어를 장착했다. 휠베이스는 초창기 모델이 3505.2㎜였으나 점차 늘어나 3568.7㎜까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