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740Li xDrive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기함 7 시리즈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다. 7 시리즈의 허리라 할 수 있을 만큼 효율과 퍼포먼스의 밸런스가 뛰어나고, 미래의 플래그십 세단에게 요구되는 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마치 컨셉트카에 타고 있는 것처럼 오감이 즐겁지만, 보수적인 중장년층 오너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여러 이슈로 한국 수입차 시장이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인 BMW 코리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7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의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2위인 메르세데스-벤츠가 턱밑까지 추격해 온 까닭이다. 게다가 고급 모델 위주로 판매되는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해 엔트리 모델 판매가 주력을 이루는 BMW는 이미 수익성 면에서 추월당했다.
BMW가 7 시리즈에 공을 들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 해 메르세데스-벤츠는 플래그십 세단 S 클래스를 한국에서만 1만 대 넘게 팔아 치웠다(AMG, 마이바흐 포함). 수입 플래그십 세단의 수요가 엔트리 모델 못지 않게 크다는 뜻이다. 7 시리즈의 성공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BMW의 목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올 상반기 2만 2,667대가 팔린 플래그십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는 제네시스 EQ900(1만 7,114대)였고,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가 4,000대 가량 판매돼 여전히 수입 플래그십 1위 자리를 유지했다. 7 시리즈는 지난 해보다는 반등했지만 1,159대에 그쳤다. 추격자인 아우디 A8 역시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고, 최근에는 캐딜락의 차세대 기함 CT6까지 공격적인 가격을 앞세워 국내 출시되면서 7 시리즈에게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740Li xDrive는 7 시리즈의 허리와도 같은 모델이다. 똑같은 “40″이라도 모델에 따라 와 닿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3·4 시리즈에게 40은 M 바로 아래의 최상위 모델이고 5·6 시리즈에서는 경쾌한 고성능 모델이 된다. 그리고 기함인 7 시리즈에서는 효율과 성능이 조화를 이룬 주력 모델로 자리잡는다.
실제로 BMW 코리아에 따르면 2010~2015년에 한국에서 판매된 7 시리즈 1만 2,598대 중 36%인 4,444대가 740 가솔린(740i, 740Li) 모델이라고 한다. 7 시리즈 3대 중 1대는 740 가솔린인 셈이다. 신형 모델(코드명 G11·G12)은 출력과 정숙성이 아쉬운 730d, 730Ld와 V8 엔진이 다소 부담스러운 750Li만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충분한 성능과 정숙성, 효율을 고루 갖춘 740의 출시는 환영할 일이다.
이번에 시승한 740Li xDrive는 그 중에서도 휠베이스를 140mm 늘리고 xDrive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한 모델. 4륜구동 선호도가 높은 국내 시장에 최적화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상당히 도전적인 첨단 장비를 골고루 갖춰 얼리 어댑터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소 검소한 휠을 끼운 것 외에는 앞서 만났던 750Li와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최신 BMW 디자인 언어가 앞뒤에 골고루 녹아있어 향후 BMW 모델들의 디자인 방향을 예측해보는 것이 재미라면 재미다.
거대한 키드니 그릴 양 옆에는 이제 BMW의 상징이 된 앞트임 헤드라이트가 위치하고 있다. 플래그십 세단 최초의 레이저 헤드라이트다. 최대 600m 전방까지 비추는 레이저 상향등은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고, 대항차나 전방 차량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작동한다. 국내 시판 차량 중에서는 최초로 적용된 사양이다.
전장은 5,238mm, 휠베이스는 3,210mm에 이른다. 휠베이스만 놓고 봤을 때 국내 시판 중인 플래그십 세단(리무진 제외) 중 가장 길다. 긴 바디를 따라 뒷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유독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 눈에 띈다. 크롬 장식이 테일램프 상단을 가로지르고, 리어 디퓨저 부분도 크롬으로 치장됐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노린 듯한 화려함이다.
BMW의 전통적인 사다리꼴 레이아웃은 740Li의 센터페시아에도 그대로 유지됐지만, 보다 고급진 소재와 참신한 배열이 눈에 띈다. 특히 대쉬보드를 가로지르는 우드 트림을 이용해 실내 폭을 넓어보이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스티어링 휠과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 등이 최신 디자인으로 업데이트돼 조금은 낯설다.
신형 740Li에는 실로 다양한 최신사양들이 탑재됐다. 우선 앞좌석에서는 iDrive 시스템에 업데이트가 있었다. 오랫동안 많은 오너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주행 중 안전을 고려해 디스플레이 터치 기능을 배제해 왔지만, 마침내 터치로 디스플레이 조작이 가능해졌다. 센터페시아 하단의 공조장치 조작에 물리버튼처럼 보이는 터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것도 특징.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제스처 컨트롤. 디스플레이 앞에서 특정 손짓을 할 경우 터치하거나 iDrive 컨트롤러를 만지지 않아도 메뉴 조작이 가능하다. 물론 터치만큼 인식도가 높지는 않지만 세세한 입력장치에서도 신기술을 양산차에 도입하는 것이 과연 BMW답다.
대부분의 경우 차의 주인이 타게 되는 2열 시트는 그야말로 달리는 응접실이다. 740Li xDrive의 경우 센터 파티션은 없어 가운데 좌석에도 사람이 앉을 수 있지만 대개 암레스트를 내리고 탑승한다.
마사지 시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전통적인 편의사양들이 탑재되는데 조작장치는 퍽 파격적이다. 삼성제 태블릿 PC가 센터 암레스트에 탑재되고, 이 태블릿을 통해 차 내의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암레스트에 고정된 상태에서도 조작이 가능하지만, 떼어내서도 사용이 가능해 조작이 미숙하더라도 암레스트 버튼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태블릿 메뉴 자체는 직관적이지만 2열 디스플레이는 원격터치 식으로 작동해 사용이 까다롭다. 무엇보다 플래그십 세단의 주 수요층인 장년층 이상 세대에게는 너무 “젊은” 태블릿 PC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B-필러의 앰비언트 라이트, 도어 개방 시 작동하는 라이트 카펫, 파노라마 썬루프에 광원을 심은 스카이 라운지 글라스 루프 등 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S 클래스의 실내가 앤티크 가구 같다면 7 시리즈는 젊고 감각적인 모던 디자인 가구를 연상시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명차를 만드는 것은 실내의 옵션이 아니다. 명차라는 이름에 걸맞는 차량 자체의 기게적 완성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7 시리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기술혁신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
우선은 경량화. BMW는 앞서 i3와 i8 등을 선보이면서 쌓은 카본 양산 노하우를 토대로 7 시리즈 차체의 많은 부분을 카본 코어로 대체했다. 줄어든 중량은 130kg에 달하는데, 공차중량이 2톤을 조금 넘으니 약 6% 가량의 체중감량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차체 강성은 오히려 이전보다 높아졌다.
파워트레인은 3.0L 직렬6기통 트윈파워 터보 엔진과 8속 스텝트로닉 자동변속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은 329마력, 최대토크는 45.9kg.m을 마크한다. 2톤이 넘는 거구가 5.2초 만에 100km/h까지 가속되고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제한된다. 역대 740 가솔린 중 가장 배기량이 컸던 3세대(E38)의 4.4L V8 엔진이 286마력, 44.0kg.m의 토크를 발휘하고 0-100km/h 가속을 7.0초에 돌파한 것이 15년 전이니 기술의 발전이 새삼 와 닿는다.
더불어 조합된 xDrive 4륜구동 시스템은 평시 전후 40:60 비율로 구동력을 배분하다가 상황에 따라 최대 100:0~0:100까지 구동력을 자유자재로 배분한다. 또 이번 세대에는 후륜 조향을 통해 주행 안정성과 민첩성을 높이는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기능과도 연동해 작동한다.
실제 주행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8기통 엔진 특유의 무게감은 없지만 넉넉한 힘으로 일상영역에서도 경쾌하게 차체를 밀어낸다. 회전수를 높이기 전까지는 6기통 엔진이라는 것을 의심할 정도로 고요하다.
시승 코스를 따라 고속화도로에 올랐다. 740Li에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트래픽 잼 어시스턴트, 핸들링 및 차선 컨트롤 어시스턴트가 탑재돼 반자율주행을 체험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LKAS가 차선 이탈을 막아주지만 스티어링 휠의 버튼을 눌러 핸들링 어시스턴트를 켜면 능동적으로 차선을 따라 주행한다. 이 기능은 고속도로에서는 거의 오류없이 작동하지만 조금만 차선이 지워지거나 굴곡이 있는 도로에서는 여지없이 차선을 놓쳐 아직까지 그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주행 모드는 에코 프로, 컴포트 및 컴포트 플러스, 스포츠 등 4가지를 선택할 수 있고 각각의 모드에 따라 3가지 형태로 계기판과 HUD 디자인이 바뀐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서스펜션부터 엔진 반응속도와 변속 타이밍까지 모든 부분이 시종일관 품격있는 여유를 뽐내지만, 스포츠 모드로 바뀌는 순간 BMW의 질주본능이 고동친다. 순식간에 모든 부분들이 바싹 조여지고 내달릴 준비를 마친다.
이전에 시승했던 750Li의 경우 편평비 높은 윈터타이어 탓에 스포츠 주행성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순정 타이어로 740Li의 주행 잠재력을 확인하기 위해 길지 않은 와인딩 구간에서 속도를 내 봤다. 차체가 노면에 착 달라붙으며 매서운 가속을 시작한다. 플래그십 세단의 태생적 한계는 있지만 운전자의 명령에 1:1로 반응하는 응답성은 여지없는 BMW다. 예리하지 않아도 체격이 무색하게 기민하다. 다만 다운시프트 반응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후륜조향이 포함된 xDrive 때문에 아찔한 후륜구동의 맛은 느끼기 어렵다. 매 순간 네 바퀴 중 어느 하나도 노면을 놓치지 않는 까닭이다. 굉장히 중립적이다 못해 다소 언더스티어 성향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750Li와 달리 컴팩트한 6기통 엔진 덕에 회두성은 훨씬 좋다. 어쨌거나 플래그십 세단으로 극한의 드라이빙을 즐기는 이는 없다. 이 정도라도 BMW의 달리는 즐거움(Freude am Fahren)을 간직한 것이 기특할 따름이다.
시승은 2인 1조로 진행돼 뒷좌석에서 쇼퍼 드리븐을 만끽할 기회도 주어졌다. 동승석 시트를 끝까지 밀어내고 풋레스트를 펼치면 문자 그대로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접혀진 앞 시트가 운전자의 측면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 운전기사가 아니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다.
7 시리즈의 뒷좌석에 앉으면 마치 자동차를 원격 조종하는 007 제임스 본드가 된 기분이다. 다른 경쟁자들도 뒷좌석에서 차량의 대부분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지만, 7 시리즈의 태블릿은 가장 직관적이고 진보적이다. 마치 자동차 시뮬레이터 게임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도 모자라 BMW는 자동차에서 내려 좁은 공간에 전·후진 주차를 가능케 하는 리모트 컨트롤 파킹(RCP) 기능까지 선사했다. 차를 주차 위치 앞에 세우고 하차해 디스플레이 키를 조작하면 비좁은 공간에 무사히 주차가 완료된다. 단순히 전·후진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차공간에 맞춰 조향이 이뤄짐은 물론(5~10도 이내) 사방의 센서를 총동원해 만일의 충돌이나 인명사고를 예방한다. 국내에는 전파인증이 완료된 뒤 올 11월 경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740Li xDrive 새롭게 탑재된 기술만 일일히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다양한 도전이 이뤄진 플래그십 세단이다. 7 시리즈의 풀체인지는 늘 BMW 세대교체의 이정표였던 만큼 앞으로 출시될 BMW모델들의 방향성과 기술 혁신을 엿볼 수 있는 예고편이기도 하다. 상위 모델과 거의 차이 없는 풍요로운 사양 덕에 매우 높은 상품 경쟁력까지 갖췄다.
물론 모든 기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전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진보를 이끌고자 하는 과감함은 모든 완성차 업체들에게 귀감이 된다. BMW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플래그십의 현재가 아닌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트렌드 리더로서 BMW의 담대한 자세가 돋보인다.
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라이벌이자 목표인 메르세데스-벤츠의 S 클래스에 비해 우위를 차지한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상술했듯 너무 기술 자랑에 치중한 나머지 보수적인 오너들이 적응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한국 시장에서 플래그십은 오너 드리븐보다 쇼퍼 드리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더군다나 장년층 이상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브랜드 선호도는 절대적이다. 젊고 역동적인 플래그십 오너에게는 어필할 매력이 충분하지만 S 클래스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허리가 비었던 7 시리즈는 740Li xDrive의 합류로 약진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이번에 시승한 740Li xDrive의 가격은 1억 4,920만 원이다(부가세 포함, 7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