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현대차는 새로운 TV 광고를 시작했다.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의 새로운 광고였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게 된 데에 불과 13년이 걸렸다고 운을 떼며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로 구동하는 차가 미래 모빌리티를 이끌 것이라는 것이 그 골자였다.
세계적으로 탄소 저감이 중대한 이슈가 되고, 디젤 게이트로 말미암아 클린 디젤에 대한 회의감이 대두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도 수입차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출시된 지 꼭 6개월을 맞이한 아이오닉의 성적표는 신통치 않았다. 올해 내수 판매목표는 1만 5,000대지만 올 상반기 누적 판매량은 5,204대로 목표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형제차인 니로가 출시된 4월부터는 판매가 월 750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기대보다 부진한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오닉이 과연 거창한 광고처럼 “미래의 자동차”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여전히 드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시승해 봤다.
우선 아이오닉이라는 차가 지니는 상징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친환경 전용 모델을 갖춘 브랜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범주를 하이브리드로 좁힌다면 토요타의 프리우스 일가와 렉서스 CT200h, 혼다 CR-Z 정도다. 며칠 전 CR-Z의 단종이 발표되면서 이제 아이오닉이 경쟁해야 할 하이브리드 경쟁자는 프리우스 정도가 유일하겠다.
앞서 혼다에서는 인사이트라는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을 만든 적이 있지만, 프리우스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단종됐다. 토요타 프리우스가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썬 “지존”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황에서 친환경 후발주자인 현대차가 아이오닉을 내놓은 것은 상당히 당돌한 도전이라 할 수 있겠다.
구조적으로는 아반떼 AD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되 리어 서스펜션은 멀티링크 타입을 채택했다. 멀티링크 리어 서스펜션은 아반떼 스포츠와 공유한다. 토요타 역시 과거에는 프리우스를 완전한 독자 설계로 만들어 왔지만, 4세대부터는 TNGA라는 글로벌 아키텍처를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아반떼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되지 않나 싶지만, 안팎의 차이가 아이오닉의 아이덴티티를 완성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퍼 모서리를 각지게 접고, 패스트백 스타일의 유선형 바디 라인으로 와류 발생을 억제한다.
자꾸만 프리우스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전위적인 모습이 돼버린 프리우스에 비하자면 아이오닉 쪽이 훨씬 안정감있는 비례일 뿐 아니라 세련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갖춰 더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전장*전폭*전고는 4,470*1,820*1,450mm로 프리우스에 비해 길이는 70mm 짧지만 폭은 60mm나 넓다. 전고는 20mm 낮고 휠베이스는 2,700mm로 동일하다. 공차중량 역시 1,380~1,410kg 정도로 프리우스와 10~20kg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경쟁자를 의식했다는 점이 새삼 느껴진다.
알로이 휠은 공기저항을 최소화 하는 디자인이 채택됐고 에어커튼과 리어 스포일러, 하부 언더커버, 라디에이터 그릴의 액티브 에어플랩 등 공기역학 설계가 곳곳에 도입됐다. 그 결과 공기저항계수(Cd)는 0.24로 신형 프리우스와 동일한 수준이다.
실내는 지나치게 하이브리드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기성 라인업과는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한 모습이 돋보인다.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센터페시아와 양 쪽 통풍구에는 푸른색 띠를 둘러 친환경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시트에도 파란색 스티치와 파이핑을 넣었다. 1열 시트는 3단 열선과 통풍 기능을 갖췄다.
센터페시아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차곡차곡 정돈한 토글 형태의 스위치다. 실제 토글 스위치처럼 아래에서 위로 밀어올려도 작동되지는 않지만, 조작감이 독특하고 시인성도 좋은 편이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선택사양으로 무선충전기도 탑재돼 편의사양도 풍부하다.
직경이 작은 D-컷 스티어링 휠 너머에는 상위 트림의 경우 7인치 LCD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탑재된다. 준중형에서는 꽤 호화로운 사양인데, 연료계보다 배터리 게이지가 더 크게 자리잡은게 인상적이다. 변속 레버를 수동 모드로 당겨 스포츠 모드가 활성화되면 속도계가 타코미터로 바뀌는 등 제법 멋을 부렸다.
패스트백 형태로 뒷유리까지 트렁크와 함께 열리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은 기본 750L에 달한다. 시트까지 폴딩한다면 거의 SUV나 왜건 급의 적재용량을 자랑한다.
다만 포물선을 그리는 루프라인과 2열 시트 하단에 위치한 배터리 때문에 2열 헤드룸이 좁다는 점이 지적받아 왔다. 설제로 성인 남성이 탑승하기에는 다소 좁게 느껴진다. 아이오닉이 니로에 비해 지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4세대 프리우스의 경우 시트 포지션을 최대한 낮춰 2열 헤드룸도 넉넉하게 확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추후 2열 거주성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오닉의 핵심은 역시 파워트레인이다. 앞서 현대가 여러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쌓아 온 하이브리드 기술의 총체와도 같은 파워트레인인 셈이다. 프리우스로 하이브리드 첫 단추를 꿴 뒤 여러 라인업으로 하이브리드를 확대한 토요타와는 정 반대다.
최고출력 105마력, 최대토크 15.0kg.m을 내는 1.6L 직렬 4기통 카파 GDi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최고출력 43.5마력, 최대토크 17.3kg.m을 내는 신형 전기모터를 조합해 시스템 출력은 141마력, 시스템 토크는 27.0kg.m에 달한다. 특히나 높은 시스템 토크가 인상적이다. 아반떼 스포츠의 1.6L 가솔린 터보 엔진과 맞먹는 수치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느리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초기 발진 시에 높은 토크의 전기모터가 작동하는 하이브리드의 응답성은 뛰어난 편이다. 특히 고속 영역보다는 시내 주행에서 빠르게 발산되는 토크가 힘을 발휘한다.
인상적인 점은 6단 DCT 자동변속기가 탑재됐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이브리드는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CVT와 조합돼 왔지만, 아이오닉은 효율과 운전감각을 동시에 잡기 위해 DCT가 탑재됐다는 설명이다. 하이브리드에 DCT가 조합된 차는 아이오닉 이전에 혼다 피트 하이브리드가 유일했다.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DCT는 아이오닉의 “신의 한 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하이브리드 차가 프리우스를 쫓아 효율에만 치중할 때, 아이오닉은 친환경 전용 모델에서조차 운전재미를 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더군다나 수동변속과 스포츠 모드라니! 기존의 선입견을 타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평상 시에는 전기모터가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속도가 조금 붙은 뒤에야 엔진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가속 상황에서는 30km/h 내외, 서서히 가속하는 상황이라면 50km/h 이상까지 엔진 시동이 미뤄진다. 배터리 잔량이 많을 때는 더 오랫동안 전기모터가 힘을 보탠다.
속도를 내다가도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재빨리 시동을 끄고 전기모터로만 구동한다. 약 80km/h 정도의 속도에서도 전기모터 만으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더 빠른 속도에서는 시동은 꺼지되 속도 유지는 어렵다.
배터리 관리에 있어서는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 이전 하이브리드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모습이다. 현대차 병렬식 하이브리드의 한계로 기존 모델들은 배터리 잔량을 50% 이상 충전하기 쉽지 않았다. 반면 아이오닉은 항상 1/3 이상의 배터리 잔량을 유지했고, 어렵지 않게 2/3 이상 충전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배터리 잔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모터 주행거리도 늘어나 연비에 유리하다.
내비게이션 정보를 바탕으로 관성주행을 안내하고 오르막에서는 모터 사용량을 늘리고 내리막에서는 충전량을 늘리는 등, 실제 주행에서의 체감은 적지만 소소하게 효율을 끌어모으는 ECO-DAS 기능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이브리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이 운전해도 차가 알아서 연료를 아껴준다는 점이다. ECO-DAS는 일반인들이 하이브리드에 기대하는 그러한 장점에 가장 잘 부합하는 기능이다. 다만 향후 수출이 본격화됐을 때 맵데이터 현지화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을 지 궁금하다.
운전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별도의 드라이브 모드 버튼 없이 변속 레버를 왼쪽으로 당겨주기만 하면 된다. 곧장 스포츠 모드가 활성화된다. 스포츠 모드라고 해서 항상 시동이 걸려있는 것은 아니고, 가속 시에 빨리 시동을 걸어서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내는 쪽으로 구동한다.
가속력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경쾌하다. 제원 상 성능에 대한 기대에 부합하는 정도. DCT 변속기는 아반떼 스포츠처럼 번개같지는 않지만 변속충격을 최소화해 준다. 특히 다운시프트 시의 회전수 보상 기능은 완성도가 높다. 프리우스도 4세대에서는 제법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6속 DCT에 스포츠 모드와 수동 모드까지 갖춘 아이오닉에 비할 바는 아니다.
무게배분에 불리한 전륜구동이지만 뒷쪽 하단에 배터리가 실려 뒷바퀴가 붕 뜨는 불안감을 느낄 수 없고,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 덕에 코너링에서도 불안감을 느낄 수 없다. 서스펜션 세팅은 기본적으로 제법 스포티하고 탄탄한 편이다. 평소에 아껴 둔 연료를 태우며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기에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역시 연비겠다. 공인연비는 17인치 타이어 기준으로 복합 20.2km/L, 도심 20.4km/L, 고속 19.9km/L이다. 앞서 현대 하이브리드를 시승할 때 매번 연비에 실망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시승 간 평균 연비는 공인연비를 훌쩍 뛰어넘었다.
3일 간의 시승에서 연비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주행에도 불구하고 복합연비는 23km/L을 기록했고, 연비에 집중하면 25km/L까지도 기록이 가능했다. 고속연비는 다소 낮은 21~22km/L을 오갔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양재동에서 신촌까지 2시간이나 걸린 극심한 퇴근길 정체에서도 평균연비 23km/L을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넉넉한 배터리 잔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평소에도 도심 주행의 연비가 상당히 높아 시내 출퇴근이 잦다면 디젤보다 유리할 수 있겠다.
출시 6개월을 맞이한 시점에서 시승한 아이오닉은 여전히 훌륭한 차다. 그 사이 4세대 프리우스, 니로 등 다양한 경쟁모델을 타 봤지만 2열 거주성 외에 확연한 단점을 찾기 어렵다. 특히나 디자인은 동급 친환경차 중 가장 호감형이고, 가장 저렴하면서 동시에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 가장 풍부한 편의사양을 갖춘 점에서 상품성도 뛰어나다.
물론 평균연비 25km/L를 가뿐히 넘나드는 프리우스에 비하자면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특히 올 초 아이오닉 출시 직후의 시승회에 비해 평균연비가 대폭 높아진 점에서 볼 수 있듯, 겨울철 효율 관리 부분에서는 겨울철에도 일관되게 우수한 연비를 기록하는 토요타 하이브리드에 비해 부족하다. 이 점은 2열 공간과 더불어 앞으로 아이오닉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다른 장점들이 충분히 약점을 커버한다. 상술한 상품성과 디자인 외에도 어떤 경쟁자보다 뛰어난 역동성은 스포티한 데일리카를 원하는 이의 눈높이까지 맞춰줄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하이브리드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다소간의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운전 재미와의 밸런스를 고려한 아이오닉의 세팅은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필자는 세계적인 친환경 추세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취향을 지녔다. 여전히 터보보다는 자연흡기가, 다운사이징보다는 대배기량 다기통 엔진이 좋다. 그래서 미래 자동차에 대한 동경은 거의 없는 편이다.
찌그러진 상자처럼 못 생긴 공기역학적 차체에 모터를 달고 가전제품같은 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동차를, 그것도 매일 충전해 가며 타야 한다면 차라리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언젠가 분명 미래의 차를 선택하는 순간은 올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주저없이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것이다. 아이오닉은 충분히 세련되고 멋지며, 재미있고, 효율도 좋다. 합리적인 가격과 하이브리드 보조금 및 혜택은 덤이다. TV 광고처럼 짧은 시간에 온 세상의 차가 다 바뀔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미래라면 대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