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슈로 업계의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는 작금의 수입차 업계에서 유독 돋보이는 차들이 있다. 바로 일본산 중형 세단들이다. 디젤 게이트, 미세먼지 이슈 등으로 독일 디젤 군단이 주춤했고, 동시에 상반기 르노삼성 SM6, 쉐보레 말리부 등 다양한 국산 중형 세단들이 출시되면서 덩달아 중형 세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이다.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빅 3″가 사이좋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혼다 어코드다. 어코드는 명실상부한 혼다 코리아 성장의 기수다. 지난 5월에는 한 달 동안 500대 넘게 팔아 치우며 수입 가솔린 모델 1위로 반짝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 해 11월 부분변경이 이뤄진 이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첫 출시 때 3.5 모델을 시승해 보고, 이번이 두 번째 시승이다. 3.5의 경우 역동성이 돋보였지만 의미있는 판매 실적은 거두지 못했다. 반면 주력인 2.4 모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 지 궁금해 왔던 터다. 2박 3일의 시간동안 어코드와 함께 했다.
어코드는 으레 보수적인 중형 세단으로 여겨졌지만, 새 모델은 그런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젊은 모습이다. 지난 해의 부분변경 덕이 크다. 그 이전까지 무난함이 강조됐지만 “익사이팅-H”라는 컨셉 하에 제법 역동적인 모습으로 꾸몄다. 크롬 장식이 늘어나 화려한 분위기가 된 것도 특징.
특히나 전면부의 분위기가 크게 일신했는데, 풀 LED 헤드라이트와 LED 안개등을 탑재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헤드라이트 상단까지 파고든 솔리드 윙 라디에이터 그릴과 입체감을 살린 범퍼가 역동성을 더한다. 2.4를 비롯해 전 모델에 풀 LED 헤드라이트와 LED 안개등이 기본사양인 차는 동급 중 어코드가 유일하다.
레전드에서 먼저 선보인 주얼 아이 LED 헤드라이트는 곤충의 눈 같았던 레전드보다는 트랜스포머 로봇을 연상시키는 미래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좌우 각 6개의 LED 코어가 탑재되는데, 3개씩 나누어 상향등과 하향등을 담당한다. 헤드라이트 외에 테일램프도 이전보다 붉은 톤을 많이 추가하고 면발광 LED를 더해 무게감을 늘렸다.
전장*전폭*전고는 4,890*1,850*1,465(mm), 휠베이스는 2,775mm다. 전장만 놓고 보자면 쏘나타와 그랜저의 중간 정도지만 휠베이스는 쏘나타보다 조금 짧다. 앞뒤 분위기를 쇄신했음에도 사이드 라인은 보수적인 세단의 비례다. 동급 중 긴 편에 속하는 전장 덕에 쭉 뻗은 날렵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기존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새로움을 더한 디자인은 실내에서도 이어진다. 전반적인 레이아웃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 소재의 고급감을 높여 마감품질의 만족도가 상당하다. 푹신하고 보드라운 가죽 질감이나 세련된 우드트림의 느낌은 동급 중 손에 꼽을 만 하다. 또 컴포트 세단을 추구하는 어코드 구매자들의 취향도 잘 반영됐다.
센터페시아 부분에서는 듀얼 모니터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되 하단의 터치 디스플레이로 많은 버튼이 들어갔다. 버튼이 줄어들어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주행 중 조작하기는 번거롭기도 하다. 그나마 안드로이드 기반의 운영체제의 반응 속도가 좋고 터치 감도도 뛰어난 편이다.
상단 모니터는 하단 모니터가 내비게이션 등 운전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때 음악 정보, 트립컴퓨터 등을 띄워주는 보조 디스플레이 역할을 한다. 3.5의 경우 측후방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레인 워치(Lane Watch) 기능을 꽤 편리하게 이용했는데, 2.4에서는 삭제돼 아쉽다.
단일 트림으로 운영되는 어코드 2.4는 기본형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의사양 면의 진일보가 눈에 띈다. 차세대 클라우드 내비게이션과 음성인식 기능을 포함한 애플 카플레이, 무선충전패드도 탑재됐다. 혼다 코리아 스스로 어코드를 “Futurist”라고 칭할 정도로 첨단사양에 공을 들인 모습이다.
반면 계기판 클러스터는 새로운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식 느낌이다. 너무 많은 바늘식 아날로그 게이지들이 위치해 마치 90년대 초 자동차의 계기판을 보는 것 같다. 듀얼 모니터가 있기 때문에 계기판 가운데의 디스플레이는 순간연비 등 최소한의 주행정보만 표시해 주지만, 기왕이면 컬러 디스플레이가 적용됐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양과는 별개로 실내공간에는 여유가 넘친다. 시트 포지션이 상당히 낮은 위치까지 조정되기 때문에 더욱 넓게 느껴질 뿐더러, 휠베이스는 짧지만 2열 공간도 상당하다. 동급에서는 국산차의 공간이 더 넉넉하다는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2열의 경우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해도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여유가 있었다.
파워트레인은 기존과 동일한 2.4L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CVT의 조합이다. 2.4 모델의 경우 변속기 로직을 개선해 초반 응답성과 가속력을 보다 고르게 분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혼다의 설명이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88마력, 최대토크는 25.0kg.m이다. 최대회전수를 7,000rpm까지 사용하는 고회전형 엔진임에도 최대토크는 3,900rpm의 비교적 낮은 영역에서 뿜어져 나온다. 혼다만의 어스드림 테크놀러지와 i-VTEC 기술이 탑재돼 효율과 성능을 모두 높이는 데에 집중했다.
공교롭게도 거의 4기통 엔진과 CVT의 조합인 닛산 알티마 2.5와 비슷한 시기에 시승이 진행됐기 때문에 두 차가 같은 레이아웃의 파워트레인을 어떻게 해석했는 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알티마의 경우 엑스트로닉 CVT에 D-스텝 기능을 추가해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가상변속이 이뤄지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어코드는 깜짝 놀랄만큼 매끄러우면서도 힘있는 가속을 선사한다. CVT는 사실 조율이 어려운 변속기다. 직결감을 높이려다보면 CVT의 장점인 부드러움을 놓치고, 너무 부드럽게 만드려고 하다가는 직결감이 떨어져 회전수만 오르고 가속은 되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요컨대 정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CVT 하면 닛산의 엑스트로닉을 떠올리지만, 혼다 역시 다양한 차종에 CVT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판 모델 6종 중 3종(HR-V, CR-V, 어코드)이 CVT를 채택하고 있다. 그 만큼 기술적 성숙도가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어코드의 변속기는 직결감과 부드러움의 절묘한 경계를 지킨다.
평상시에는 어떤 변속충격도 없이 매끄럽게 차를 밀고 나가다가도 힘껏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이내 번개같은 가속이 이어진다. 혼다의 설명대로 일상 영역에서의 반응성과 가속감이 개선됐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일상에서는 ECON 버튼을 눌러 에코모드를 켜면 더 부드럽고 효율적인 주행이 이뤄진다. 더불어 탄탄하면서도 신경질적이지 않은 서스펜션 세팅도 만족스럽다.
다만 변속기 탓에 차의 한계를 시험하기는 어렵다. S와 L 모드가 있기는 하지만 원하는 회전수를 설정할 수 있는 수동모드는 없다. 특히나 제동 시에 엔진브레이크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 탓에 스포츠성의 한계가 명확하다. 잠재된 높은 기본기를 미처 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공인연비는 복합 12.6km/L이며, 연비를 고려하지 않은 시승 간의 복합 실연비는 12.0km/L을 기록해 공인연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혼다 어코드의 선전은 매달 수천 대를 판매하는 독일차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도로 위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나 신형 어코드가 출시된 뒤 도로에서 어렵지 않게 어코드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입소문을 타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트렌드의 조류를 잘 탔다거나, 엄청난 기능과 성능으로 대박을 치는 것이 아닌, 꾸준한 온고지신에 숨어있다. 기존에 어코드만이 지니는 안락함과 뛰어난 주행감각은 잘 살려내면서 심심함을 벗겨내고 세련되게 단장한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풍요로운 사양은 동급, 동가격대의 다양한 경쟁모델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특히나 구형 모델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고 신형의 장점만 나열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면서 새롭게 가꿔나가는 모습은 경쟁자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올해는 어코드가 탄생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에 이른 것이다.평범한 중형 세단이면서도 불혹의 역사를 지닌 모델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세월이 무색하게 완숙한 어코드의 노련미는 여전히 건재하다. 혼다 어코드 2.4의 가격은 3,540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