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기자직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차를 타 보지만, 어떤 차는 방금 타고 와도 좀처럼 인상이 남지 않는 경우도 있는 반면 어떤 차는 오래 전에 타 봐도 강렬하게 뇌리에 새겨진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더 강력한 퍼포먼스와 카리스마 넘치는 외관을 지니고 있다면 자연히 그 여운도 길기 마련이다.
아우디 RS7을 만난 것도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아직 서늘한 바람이 불 때였고 결코 길지 않은 시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같은 퍼포먼스와 시선을 강탈하는 카리스마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한국 수입차 업계에서 고성능 모델의 존재감은 갈 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해 BMW M은 전년대비 110%, 메르세데스-AMG는 전년대비 220%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아우디 역시 RS 라인업과 슈퍼카 R8 등 고성능 모델의 판매가 최근 3년 새 3배나 늘었다. 수입차가 보다 보편화되면서 개성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주말 트랙 주행 등 아마추어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고성능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우디 퍼포먼스의 정점에는 르망 레이스카에서 영감을 받은 슈퍼카 R8이 있지만, RS7은 수치 상의 성능으로 봤을 때 그 R8보다도 강력한 심장을 얹었다. 섹시한 바디라인은 가히 치명적이라 할 만하다. 시승차는 1,000만 원 상당의 옵션인 무광 그레이 도색까지 적용돼 엄청난 존재감을 발산한다.
짝수 숫자로 차급을 분류해 온 아우디에 홀수 라인업인 쿠페가 추가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A4, A6, A8이 전통적인 세단과 왜건 위주로 구성된 보수적인 라인업인 반면 홀수 라인업은 쿠페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라인업의 간극을 메우는 다양한 모델들을 아우르고 있다. 엔트리 모델인 A1과 A3는 3도어 해치백이 기본이고, A5는 A4를 기반으로 한 쿠페다. 여기에 아우디만의 “스포트백” 모델이 각각 존재하는데, A1과 A3의 5도어 버전 또는 A5의 패스트백 4도어 쿠페 버전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A7은 홀수 아우디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차다. 홀수 아우디는 쿠페 라인업이지만, A7은 대형 4도어 쿠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도어 모델이 없고 스포트백이 기본이다. 이와 더불어 아우디의 독특한 고성능 정책에 따라 RS6는 아반트(왜건)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4도어 바디에 RS 뱃지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RS7은 RS의 명실상부한 기함으로 자리잡았다. 경쟁자인 BMW가 M5와 M6 그란쿠페를, 메르세데스-AMG가 E63과 CLS63을 만들어 고성능 세단과 4도어 쿠페를 병행 생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쨌거나 RS7이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해 A7의 부분변경과 함께 RS7도 화장을 손봤는데, 기존 RS7이 좀 더 날카롭게 찢어진 인상이었다면 새로운 RS7은 더 중후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태가 약간 바뀌고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가 적용됐다. RS의 상징인 허니컴 그릴과 알루미늄 포인트는 그대로다.
구형의 경우 국내 사양에는 그릴 하단의 “콰트로(quattro)” 레터링이 적용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국내 사양 RS7에도 레터링이 추가됐다. 작은 디테일 차이지만 전면부의 입체감이 훨씬 두드러진다.
기존 대비 분위기 변화가 큰 일반 A7에 비하자면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21인치 알로이 휠은 기존과 같은 디자인이지만 블랙 투톤을 적용해 더 커보이는 효과를 준다. 후면부 역시 방향지시등이 흘러가는 신형 다이내믹 턴시그널 LED 테일램프가 적용된 것 외에는 별 변화가 없다. 기존 RS7의 디자인이 워낙 유려한 까닭도 있겠다.
실내 또한 변화를 찾기 힘들다. 최정상급 퍼포먼스를 갖춘 모델인 만큼 구매자의 주문에 따라 사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의 변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분변경 모델임에도 변화가 적은 것은 기존의 높은 완성도의 방증이지만 새로운 것을 기대한 소비자들에게는 아쉬움일 수 있겠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RS 특유의 허니컴 그릴을 시트로 옮겨 와 육각형 패턴의 퀼팅으로 마감한 것. 이전에 시승했던 RS5의 코브라 시트는 끔찍하게 불편했기 때문에 살짝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RS7의 스포츠 버킷 시트는 불편하지 않고 장시간 주행에도 부담이 없다.
넓은 대쉬보드를 카본 트림이 가로지르고, 손이 닿는 거의 모든 부위에 타공 가죽이 적용됐다. 운전자를 향해 살짝 기울어진 센터페시아 덕에 좌우 폭이 넓음에도 전투기 조종석에 탄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진다. 성능으로만 보자면 전투기만큼이나 강력한 것이 사실이다.
메르세데스-AMG CLS63이나 BMW M6 그란쿠페는 엄밀히 말해 2열 공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스타일을 위해 루프라인을 깎으면서 2열 헤드룸이 희생됐고, 불쑥 튀어나온 센터 터널이 2열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좌우 이동도 어렵다.
RS7이 그런 경쟁자 대비 갖는 경쟁력 중 하나가 공간이다. 패스트백 형태로 루프라인을 리어 엔드까지 끌어당김으로서 충분한 2열 헤드룸을 확보한 것은 물론이고 레그룸 역시 좁지 않다. 센터 터널이 2열까지 이어지지 않아 5인승처럼 보이지만 가운데에는 조그만한 수납함이 마련돼 있어 사람이 앉을 수 없다. 그래도 동급 대비 2열의 개방감이 탁월하다.
뒷유리까지 함께 개방되는 패스트백 테일게이트 덕에 535L의 트렁크 공간은 체감 상 훨씬 넉넉하다. 2열 폴딩 시에는 적재용량이 1,390L까지 확장되는 점도 장점. 4도어 쿠페에 대한 아우디만의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버추얼 콕핏은 적용되지 않았지만, 신규 듀얼 내비게이션이 적용돼 클러스터 중앙 디스플레이로도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음향 렌즈가 포함된 뱅앤 올룹슨 오디오 시스템도 매력적이다.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RS7이지만 평상 시의 주행에서는 말끔한 수트를 차려 입은 꽃미남같다. 아우디 드라이브 셀렉트는 여타 아우디 모델처럼 드라이브 모드를 제공하는데, 컴포트·다이내믹·오토·인디비주얼 등 4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컴포트에서는 실내로 유입되는 사운드도 매우 절제돼 있고, 에어 서스펜션도 편안한 세팅으로 도심 주행에도 거부감이 없다. 심지어 4개 실린더의 작동을 멈춰 효율을 끌어올리기까지 한다.
인디비주얼 모드에서는 스티어링, 서스펜션, 엔진 리스폰스 등을 원하는 대로 세팅할 수 있다. 묵직한 스티어링 감각과 탄탄한 서스펜션을 일상 주행에서도 느끼고 싶거나, 빠른 엔진반응에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조합하고 싶다면 인디비주얼 모드를 사용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A7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A7도 충분히 섹시하고, 강력하며, 고급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트를 벗고 근육질의 마초 본성을 드러내면 숨막히는 반전이 시작된다.
RS7은 4.0L V8 TFSI 엔진과 8속 팁트로닉 자동변속기의 조합으로 네 바퀴를 상시 굴린다. 배기량은 5.2L 자연흡기 엔진의 R8보다 적지만 2개의 터보차저에 힘입어 최고출력은 무려 560마력, 최대토크는 71.4kg.m에 이른다. 0-100km/h 가속 시간은 3.9초, 최고속도는 305km/h에서 제한된다.
최근에는 이른바 ‘제로백’을 2초 대에 끊는 슈퍼카도 많아졌지만 3.9초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것이다. 애스턴마틴 DB11, 재규어 F-타입 프로젝트 7 등과 같은 수치다. 다른 차들이 스포츠카인 반면 RS7은 공차중량 2톤이 넘는 4도어 쿠페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수치다.
어쨌거나 가속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깊숙히 밟아도 휠 스핀조차 나지 않고 순식간에 속도계는 100km/h까지 치솟는다. 수동 모드에 두면 너무 빠른 가속때문에 변속 타이밍을 놓치기가 일쑤다. 정확히 밟는 만큼 선형적 가속을 보이는 BMW나 반 템포의 여유를 갖춘 메르세데스-AMG와는 다른 느낌이다. 말 그대로 로켓처럼 치고 나간다.
조용하고 매끄럽던 엔진은 8기통 특유의 거친 숨소리를 내쉬기 시작하고, 모든 동작은 긴장한 듯 꽉 조여진다. 다만 에어 서스펜션이 최대한 감쇠력을 높여도 일반적인 코일오버 서스펜션보다는 부드럽다. 자세가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코너에서는 어느 정도 롤링이 느껴진다는 점은 흠이라면 흠이겠다.
대신 아우디의 자랑인 콰트로가 운동성능을 보완한다. “이 속도로 진입해도 될까?” 콰트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후륜구동 차보다 높은 속도로 과감하게 코너에 뛰어들어 보면 처음에는 머릿결이 쭈볏거릴 정도로 긴장되지만, 거짓말처럼 매끄럽게 코너를 돌아 나간다. 5m가 넘는 차체가 무색할 정도로 예리하면서도 불안감은 없다.
첨언하자면 RS7을 시승한 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상품성 개선 모델이 출시돼 시승차와 같은 일반 사양 RS7은 단종된 상태다. RS7 플러스(+)는 엔진의 퍼포먼스를 더 끌어올려 무려 605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현존하는 아우디 라인업 중 최강의 엔진이다. 그 밖의 사양은 대부분 시승차와 RS7 플러스 모델이 동일하다.
RS7은 반박할 수 없는 슈퍼카 급 퍼포먼스의 4도어 쿠페다. 경쟁 모델들이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평소에는 다소곳한 모습이다가 필요할 때 짐승같은 매력을 발산한다면, RS7은 타고 난 옴므파탈(homme fatale)이다.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에어 덕트와 날카로운 인상, 은은한 매트 그레이 컬러는 첫 인상부터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고하게 도심을 누비다가도 마음 내키면 언제든 로켓으로 변신해 도로를 지배한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센 놈임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싶다가도 세련된 스타일이 무색하게 뛰어난 실용성이 뜻밖의 매력을 선사한다. 어딘가 쉽지 않으면서도 한번 빼앗긴 마음을 되찾기 어려운 나쁜 남자같다. 그것이 우리가 RS7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