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프랑스 르망에서 개최된 세계 내구 챔피언십(WEC) 제3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는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같았다. 출전 28년 만에 종합우승을 노렸던 토요타가 종료 3분 전 머신 트러블로 멈춰서며 포르쉐가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것. 그 밖에도 GTE 프로 클래스에서 첫 출전 이후 50년 만에 르망을 다시 찾은 포드 GT가 왕년의 라이벌 페라리를 꺾고 우승하는 등 화제가 만발한 대회였다.
그런데 이번 대회의 감동적인 드라마는 경쟁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다양한 신기술을 시연하기 위해 “개러지 56″이라는 비경쟁 클래스를 개최하고 있다. 쐐기형 자동차인 델타 윙, 전기모터로만 사르트 서킷을 1랩 이상 주행할 수 있는 ZEOD RC 등 실험적인 경주차들이 개러지 56을 통해 르망에 출전해 왔다.
올해 개러지 56을 통해 출전한 팀은 OAK 레이싱 소속 SRT 41. 2013년 르망에서 LMP2 클래스 우승을 거머쥔 모건 LMP2 레이스카에 아우디 R8 LMS 엔진을 탑재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팀의 비밀은, 레이스카가 아닌 선수에 있었다.
취미로 아마추어 레이싱을 즐겼던 프랑스인 사업가 프레데릭 소셋(Frédéric Sausset)은 몇 년 전 전격성자반병이라는 희귀 질환의 합병증으로 사지가 괴사되면서 절단 수술을 받고 팔·다리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병으로 심한 장애를 안고 살게 됐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평소 즐겼던 모터스포츠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그것도 보통 대회가 아닌, 극한의 지구력을 요구하는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출전을 결정한 것이다.
그는 몇 개월 전부터 아우디와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레이스 출전 준비를 시작했다. 스스로 체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이고, 절단된 팔·다리로 레이스카를 조작할 수 있도록 전혀 새로운 설계의 조작장치를 개발하는 데에도 동참했다. 팀에서도 오직 그를 위한 전용 시트와 한 팔로 조작할 수 있는 스티어링 휠, 넓적다리로 밟을 수 있도록 설계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만들었다.
개러지 56은 기존의 차량 설계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안전에 관한 한 타협해 주지 않았다. 특히 차량이 멈춰섰을 때 운전자가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어야 했는데, 프레데릭 소셋에게는 일반적인 차량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에 팀원들은 전투기의 사출 콕핏에서 착안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압축공기로 시트를 사출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제 기술적으로 그의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대회가 시작되고, 프레데릭 소셋은 전용 콕핏과 함께 봉에 매달려 탑승하는 방식으로 여타 팀과 같이 선수 교체를 해 가며 극한의 경주에 참가했다. 그는 총 69랩을 완주했고, 4분 00초 656의 베스트 랩을 기록하며 비장애인 못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24시간이 지나고 프레데릭 소셋과 SRT41 팀원들은 315랩을 달려 종합 38위로 완주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르망 사상 최초의 사지절단 드라이버로 기록됐으며, 동시에 2012년 도입 이후 번번히 리타이어했던 개러지 56 클래스 사상 최초로 완주에 성공했다.
패럴림픽과 같은 스포츠 대회에서 불의의 장애를 얻은 이들이 운동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프레데릭 소셋은 그간 장애인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모터스포츠, 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기로 소문난 르망 24시 내구레이스를 완주해 신체적 장애는 어떤 장애물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인간의 도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