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45년 만에 돌아 온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이름을 바꾼 SLC를 시승하러 니스를 다녀왔다. 지중해 해안을 로드스터와 카브리올레로 달린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승에는 두 모델 모두 ‘메르세데스-벤츠’ 모델과 ‘메르세데스-AMG’ 모델이 함께 동원됐다. 그리고 시승한 결과 당연히 AMG 모델들의 매력이 더욱 뛰어났다. 행사 도중 AMG 개발 담당자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과 AMG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됐고, 변해 가는 AMG를 느낄 수 있었다.
AMG 전통도 변한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앞으로 AMG 모델에 얹히는 엔진이 필요에 따라서는 ‘원맨원엔진(One Man One Engine)’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AMG 모델에 얹히는 엔진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이 1대의 엔진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그 완벽함에 대한 보증으로 엔진 윗면에 그 엔진을 조립한 장인의 사인이 부착된다. 그렇게 ‘원맨원엔진’은 AMG의 전통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원맨원엔진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엔진을 얹은 모델을 AMG라 할 수 있을까?
원맨원엔진이 아닌 엔진을 얹은 첫 번째 모델은 메르세데스-벤츠 C450 AMG 4매틱이었다. V6 3.0 트윈터보 367마력 엔진을 얹었는데, 이 엔진은 전통적인 원맨원엔진이 아니다. 당연히 엔진 커버에 AMG 로고도 없고, 조립한 엔지니어의 사인도 없다. 이미 브랜드 정책이 바뀌어 AMG 모델들은 메르세데스-AMG라는 브랜드로 분류되고 있었지만, 이 차는 메르세데스-AMG 브랜드가 아닌 메르세데스-벤츠로 출시됐다.
C450 AMG 가 등장했을 때 메르세데스-벤츠에서는 앞으로 ‘AMG 스포트’ 라인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C450 AMG가 AMG 스포트 라인의 첫 번째 모델이라고 했다. 그 때는 그런 줄 알았고, 그러니 엔진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정식 AMG가 아니어도 정말 강력하고 매력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었다.
그런데 뒤 이어 등장한 C클래스 쿠페와 카브리올레의 AMG 모델들은 메르세데스-AMG C43 4매틱 쿠페와 카브리올레로 등장했다. C450 AMG와 같은 엔진을 얹었지만, 메르세데스-벤츠가 아닌 메르세데스-AMG 브랜드를 달고 나온 것이다. 그 말은 ‘AMG 스포트’ 라인이 아니라 정식 AMG의 멤버라는 뜻이다.
그리고 시승행사에서 시승한 SLC의 AMG 모델도 이름이 메르세데스-AMG SLC 43이다. 역시 같은 V6 3.0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고, 원맨원엔진이 아니다. 그래서 AMG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SLC 43이 ‘메르세데스-벤츠’냐, ‘메르세데스-AMG’냐고. 그랬더니 메르세데스-AMG라고 답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원맨원엔진 방식이 아닌 엔진을 얹었는데도 메르세데스-AMG가 맞냐고 물었고, 역시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면 전통이 깨지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원맨원엔진이 아닌 엔진들이 AMG에 계속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V6 3.0 트윈터보 엔진보다 먼저 AMG에 적용된 낮은 배기량의 엔진이 있다. C, CLA, GAL 45 AMG에 얹히는 2리터 트윈터보 엔진이다. 그런데 그 엔진들은 여전히 원맨원엔진으로 만들어졌고, 엔진커버에 AMG 로고가 붙어 있고, 조립한 엔지니어의 사인도 붙어 있다. 비록 성능이나 배기량은 낮지만 그래도 기존 AMG의 전통에 따라 조립된 엔진을 얹었으니 당연히 AMG 패밀리로 인정해 줄 만했다.
결론을 정리하면 최근 메르세데스 내에서 AMG의 판매가 급신장하고 있고, 특히 낮은 배기량의 AMG 엔진 수요가 급증하면서 더 이상 원맨원엔진 방식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부 엔진에는 원맨원엔진 방식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는 AMG의 전통은 원맨원엔진 만이 아니다. 강력한 퍼포먼스, 달리는 즐거움과 공존하는 편안함, 최상의 고급스러움, 이런 것들이 모두 AMG의 전통인 만큼 단지 원맨원엔진이 아니라고 해서 AMG의 전통이 깨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공감한다. 원맨원엔진이 아니어도 AMG 모델들은 AMG 고유의 성격을 잘 간직할 것이다. C450 AMG도 그랬고, AMG SLC43도 그랬다. 정말 환상적인 모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 아쉬움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엔진룸을 열었을 때 엔지니어의 사인이 붙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 만큼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통도 계속 변하고 있다. 자연흡기 엔진 만을 고집했던 브랜드들이 앞 다투어 터보 엔진을 적용하고 있고, 스포츠카만 만들던 회사가 이제는 SUV로 떼 돈을 벌고 있다. 다행히 그렇게 벌어 들인 돈으로 더 멋지고 강력한 스포츠카를 꾸준히 개발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AMG의 변화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다. 특히 최근 여러 AMG 모델들이 전통적인 강자였던 BMW M 모델들과 서킷에서 경쟁해도 될 만큼 운동성능이 탁월하게 향상되고 있는 만큼, 형식적인 전통의 고수보다는 실제적으로 더욱 매력적인 차 만들기를 해 줄 것이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