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중형차 시장이 시끌벅적하다. 십수 년 간 공고했던 쏘나타의 아성이 최신예 경쟁모델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3월 출시된 르노삼성 SM6가 턱끝까지 쏘나타를 추격했고, 깜짝 놀랄 상품성과 가격으로 무장한 쉐보레 말리부도 사전계약 1만 5,000대의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여기에 수입 중형차도 가세했다. 지금까지 수입 중형차는 3,000만 원대에서 시작되는 가격정책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만듦새와 주행감각 등의 강점을 앞세워 수입차 시장에서 조용히 성장세를 이어 왔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모델은 닛산 알티마다. 2009년 처음 국내 출시된 이래 꾸준히 인기를 끌며 닛산 브랜드 한국 판매량의 50% 이상을 이끌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상품성을 대폭 개선한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됐는데, 동급 수입차 중 최초로 2,000만 원대 트림(2.5SL 스마트·2,990만원)을 추가하며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알티마의 심장은 2.5L 직렬 4기통 엔진과 3.5L V6 엔진 등 두 가지인데, 주력인 2.5L 모델의 경우 동급 최고 수준의 연비로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 유가가 서서히 반등하고 디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재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성능을 내면서 연비도 뛰어난 가솔린 모델은 당연히 관심있게 지켜 볼 가치가 있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다양한 첨단 편의사양까지 탑재된 알티마 2.5 테크. 동급 중 가장 뛰어난 상품성과 우수한 연비, 그리고 닛산 특유의 역동적인 드라이빙까지 모두 만끽할 수 있는 모델이다. 공교롭게 시승 기간에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삼척까지 다녀올 일이 생겼다. 출시 전부터 연비 좋기로 소문난 알티마와 함께 동해안을 왕복해 봤다.
기존 알티마를 처음 봤을 때도 퍽 젊고 역동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신형 알티마는 그보다도 더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맥시마의 스타일링을 따와 V-모션 그릴과 부메랑 헤드라이트가 더더욱 강조됐고, 범퍼와 사이드라인의 입체감도 더해졌다. 보수적인 소비자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젊은 운전자가 타기에도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다.
뒷모습 역시 양감을 살리는 한편 테일램프를 가로형으로 변경하면서 차가 더 넓어보이도록 디자인이 바뀌었다. 디자인만 바뀐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면까지 고려해 공기저항계수(Cd)는 동급 최저 수준인 0.26에 불과하며, 동시에 고속 주행에서는 양력을 감소시켜 주행 안정성도 개선했다는 것이 닛산의 설명이다.
갈 수록 자극적인 디자인이 대세가 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구형 모델은 차분한 이미지였던 것에 비해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해지고 존재감이 대폭 강해졌다고 평할 수 있겠다. 전 트림에 LED 주간주행등이 포함된 LED 헤드라이트와 17인치 투톤 알로이 휠이 기본 적용된 점도 칭찬할 만 하다.
실내 디자인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소재를 고급화하고 신규 기능들을 투입했다. 계기판 클러스터 디자인이 바뀌고 중앙부에는 3D 디스플레이를 탑재, 직관적으로 주행 데이터와 전자장비 작동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당연히 알티마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저중력 시트는 그대로다. 특히나 이번 시승에서는 도합 700km 이상을 주행했기에 저중력 시트가 더욱 빛을 발했다. 하중을 분산시켜 편안하면서도 운전자의 자세를 탁월하게 잡아주는 시트 덕에 끔찍한 교통정체를 통과하는 와중에도 몸의 피로를 덜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변경점이 있지만, 앞서 여러 시승기에서 다뤘던 만큼 이번 시승에서는 알티마가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해 봤다.
알티마의 QR25DE 엔진은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24.5kg.m을 발휘한다. 6,500rpm 이상의 고회전 영역을 사용하는 자연흡기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토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4,000rpm에서 발휘되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188마력을 내는 혼다 어코드 2.4나 181마력의 토요타 캠리 2.5에 비하자면 보다 효율과 실용영역 주행 성능에 역점을 둔 엔진이다.
여기에 조합되는 것이 3세대 엑스트로닉(Xtronic) CVT 자동변속기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닛산의 엑스트로닉 CVT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무단변속기다. 무단변속기 특유의 부드러움을 기본으로 하되 일반 변속기 못지 않은 직결감과 경쾌한 가속력까지 모두 잡았다.
그 비결은 바로 D-스텝 기능이다. 일상주행에서는 가속페달 개도량에 따라 최적의 회전수를 유지하며 매끄럽게 속도를 유지하다가, 운전자가 가속을 원하는 경우에는 일반 변속기처럼 임의의 기어비를 설정, 고회전까지 출력을 끌어낸다. 가속 시에도 고정기어비가 아닌, 속도와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른 최적화된 기어비를 설정하기 때문에 실제 출력보다 훨씬 강력한 가속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CVT 덕에 고속 주행 시에도 2,000rpm 미만의 저회전을 유지, 항속연비를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 2,000cc 이상 가솔린 세단 중 최고 연비인 복합 13.3km/L, 도심 11.5km/L, 고속 16.6km/L의 공인연비를 기록했다. 참고로 쏘나타 2.0 CVVL의 공인연비는 복합 12.0~12.6km/L, 토요타 캠리 2.5는 복합 11.5km/L에 그친다.
서울을 출발해 2박 3일간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삼척을 오가는 일정은 이 믿기 어려운 연비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을 출발하면서 연비 게이지를 리셋한 뒤 약 100km 거리의 양평으로 향했다. 금요일 오후의 지독한 교통정체가 서울을 가득 메웠고, 쨍쨍한 햇살에 에어컨도 풀가동했다. 기자를 포함해 성인 5명이 탑승한 데다 트렁크에도 짐이 가득했던 상황. 양평까지 가는 데 무려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연비에 불리한 조건이 가득했다.
의도적인 연비주행을 지양하고 최대한 일상적인 패턴으로 주행하기 위헤 계기판에서 연비 게이지도 숨기고 주행했음에도, 평균연비는 10.3km/L을 기록했다. 도심 공인연비보다는 조금 낮은 수치였지만 여러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납득할 수준이었다. 연료계는 반 조금 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도착한 후 반 조금 아래로 내려온 정도에 그쳤다.
다음날, 강원도 삼척으로 가는 길.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거리는 240km 정도, 대부분의 구간이 고속도로였지만 마찬가지로 정체구간이 꽤 길었다. 경춘 고속도로에 올라서자마자 강촌 IC까지 차들이 거북이 주행을 하고 있었고, 춘천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에는 촉박한 약속시간때문에 제법 빠른 페이스로 달렸다. 횡성을 지나 영동고속도로에 오르자 이번에는 평창올림픽 대비 공사로 10km/h 이하의 서행구간이 나타났다. 오늘도 에어컨이 풀가동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연비체크라 하면 최고의 연비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상주행에서 운전자가 체감할 수 없는, 극도로 통제된 상황의 연비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주행페이스는 탄력적으로 조절했다. 피곤할 때는 크루즈 컨트롤을 켜고 주행하다가 내리막에서는 탄력주행을 활용하기도 했고, 때로는 좀 더 속도를 내기도 했다. 정체구간을 우회하기 위에 국도를 택한 것도 여러 번이다.
막히지 않은 고속도로 구간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면 공인연비를 훌쩍 뛰어넘는 18km/L 이상의 연비가 쉽게 나왔지만, 누적 연비를 끌어올리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삼척에 도착하자마자 반도 남지 않은 연료로 출발했던 차에 주유경고등이 들어왔다. 주유 중 체크한 삼척까지의 누적연비는 14.3km/L. 복합 공인연비를 상회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예상보다 좋은 연비를 기록한 것은 의외였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복합 공인연비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참 주행을 하다보니 제법 정도 들었다. 인텔리전트 크루즈 컨트롤(ICC)과 사각지대 경보기능 덕분에 저중력 시트에 몸을 기대 긴장을 내려놓아도 된다. ICC는 AEB와 연동해 완전정차까지는 지원하지만 정차 후 경고음과 함께 브레이크가 해제된다.
최저설정속도가 32km/h지만 더 낮은 속도로 주행 중에도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출발만 제외하고 자율적인 가·감속이 가능하다. 운전 스트레스를 풀 때는 보스 9-스피커 오디오 시스템도 한 몫 한다. 보스 오디오는 전 트림 기본 사양이다.
그렇다고 편안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알티마의 주행감각을 확인하기 위해 대관령 옛길에 올랐다. 묵직한 스티어링 조작감은 예리하면서도 안정감 있고, 서스펜션도 구형대비 고속안정성이 크게 개선돼 초고속 영역에서도 불안감이 없다. 시프트 노브 측면의 스포츠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Ds 레인지로 옮기면 CVT가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스포츠 주행을 선사한다. 수동모드가 없는 점은 아쉽지만, 이것 만으로 와인딩 공략도 가능하다.
점심때쯤 대관령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는데, 맑았던 주말 날씨와 영동고속도로의 공사구간, 그리고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쏟아진 폭우까지 합쳐져 귀성길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대관령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데만 무려 6시간이 걸렸다. 도중에 재급유를 해야 할 지 걱정도 됐지만, 무탈히 집에 돌아왔다. 엄청난 정체에도 불구하고 누적연비는 12.1km/L을 기록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며칠 간 함께 했던 알티마는 감히 말하건대 동급 최고 수준의 가치를 지닌 세단이다. 국산 중형 세단들이 3,000만 원대 중반까지 가격이 오른 반면 알티마 2.5는 2,990~3,480만 원의 경쟁력 있는 가격을 갖추고, 디젤 뺨치는 동급 최고의 연비를 기록해 장거리 여행에도 손색이 없다. 우수한 거주성이나 미국 IIHS 탑 세이프티 픽+에 빛나는 안전성은 덤이다.
지난 해 맥시마의 깜짝 인기에 이어 알티마 역시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을 두루 갖춘 만큼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알티마는 2014년에도 수입 중형 세단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조용히 입소문이 난 모델이다. 더 나아졌으니 더 인기를 끌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알티마의 약진에 대해 추측이 아닌 확신이 생기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