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이라는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미국 대통령의 차”, “아메리칸 럭셔리”, “리무진” 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캐딜락은 지난 세기의 권위적인 럭셔리 카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캐딜락은 독일 유명 브랜드와 견줘도 손색 없는 강렬한 주행성능 또한 강점이다.
2세대 CTS-V는 양산 세단 사상 최초로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에서 7분 대에 입성한 모델이며,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SCCA 월드 챌린지에서 4회 종합우승을 거두는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이벤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CJ 슈퍼레이스의 스톡카 바디카울로도 ATS-V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캐딜락은 달리기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그런 캐딜락의 뛰어난 달리기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행사가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됐다. 캐딜락의 주력 모델인 ATS, CTS 세단은 물론 동급 최강의 달리기 실력을 자랑하는 ATS-V 세단까지 총 3종의 모델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올해는 캐딜락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다. 꾸준히 수입차 시장이 20% 이상의 고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캐딜락은 그 가치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최대 4종의 신모델을 투입하고 주력 모델들의 마이너 체인지를 이루는 등, 전 라인업을 손봐 반등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연초에 고성능 컴팩트 세단인 ATS-V를 선보인 데 이어 ATS와 CTS의 16년형 모델이 출시됐고, 3분기 내로 648마력의 슈퍼 세단 CTS-V와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인 CT6까지 판매에 돌입한다. 프리미엄 크로스오버인 XT5는 늦어도 내년 초 안에 한국 땅을 밟는다. 지난 해 ATS 쿠페 외에 이렇다 할 신차가 없었던 캐딜락으로서는 야심찬 라인업 확장 계획인 셈이다.
그렇다면 캐딜락이 쟁쟁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역동적인 달리기 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아메리칸 럭셔리의 대명사인 캐딜락으로 서킷이라니, 좀처럼 연상되지 않는 조합이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간단한 브리핑에 이어 곧바로 본격적인 체험에 나섰다. 두 조로 나뉘어 ATS 짐카나 체험과 3개 차종 서킷 주행을 진행했는데, 짐카나 주행은 별도의 기록측정 없이 워밍업 개념으로 참가했다. 짧은 체험과 약간의 기다림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서킷 주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시승할 차는 16년형 ATS와 CTS, 그리고 ATS-V. 가장 강력한 성능의 ATS-V를 먼저 타보면 다른 차들이 지루해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기자의 조는 ATS·CTS·ATS-V 순으로 시승했다.
각 차량을 타고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3랩씩 주행했다. 2명이 탑승해 번갈아가며 시승했으니 총 18랩의 주행에 참여한 셈이다. 오랫동안 빗장을 걸어잠갔던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제법 익숙해질 때까지 시승이 가능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첫 차는 ATS. 2.0L 터보 엔진을 탑재해 272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해 주요 경쟁모델인 BMW 3 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C 클래스, 아우디 A4 등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주행 성능이 강점이다. 16년형에는 오토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과 8속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가 적용되고 차선유지보조 기능 등 다양한 안전사양이 추가됐다. 다만 변속기 외의 변화는 서킷에서 체감할 부분은 아닌 만큼 개별 시승 때 확인하기로 미뤄뒀다.
ATS가 세련된 외모와 우수한 기본기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낮은 전고와 좁은 전폭, 짧은 휠베이스 등으로 인해 실내공간이 비좁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킷에서는 이런 점들이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온다.
컴팩트한 차체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에 힘입어 쉽게 자세를 놓치지 않고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난코너들을 예리하게 빠져나갔고, 직선주로에서는 동급 최고 수준의 출력으로 매서운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거주성이 확보되고 직진안정성이 개선되지만 코너에서의 민첩함은 다소 떨어진다. ATS는 거주성과의 타협으로 점차 커지는 경쟁 모델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되려 일반도로에서는 큰 감흥이 없었던 ATS를 타고 서킷을 달리자 흥미가 동했다. 너무 정제되지도, 너무 난폭하지도 않은 거동과 위기순간 직전까지 운전자의 자유를 허용하는 자세제어장치의 소극적 개입도 마음에 든다.
이어서 탄 차는 캐딜락의 변화를 이끌었던 CTS. 사실 1세대 CTS는 지금처럼 큰 차가 아니었다. 크기로만 보자면 지금의 쏘나타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번의 세대교체를 거치며 이제는 전장이 5m에 육박하는 프리미엄 세단으로 거듭났다. 반면 기존의 3.6L V6 엔진을 걷어내고 한국 시장에는 다운사이징된 2.0L 터보 엔진만 출시됐다. 최고출력은 같은 엔진을 쓰는 ATS보다 조금 높은 276마력.
한 급 위의 모델임에도 거의 성능이 같은 엔진을 쓰기에 차별화가 미약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같은 엔진이라고 해서 성향이 똑같은 것은 절대 아니다. 의도적으로 엔진 사운드가 실내에 유입되도록 만들었던 ATS와 달리 CTS는 보다 정숙하고 진동도 여과된 점이 먼저 와 닿는다. 또 컴포트 중심의 세단인 만큼 기어비도 비교적 여유를 둬 가속보다는 항속에 초점을 맞추고 세팅됐다.
ATS와 마찬가지로 CTS에도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적용됐지만, 아무래도 전장이 300mm 가량 긴 만큼 CTS의 거동이 훨씬 둔하다. 하지만 코너에서도 결코 헤매지 않고 탈출지점을 응시하며 빠져나가는 솜씨가 제법이다.
두 대의 볼륨 모델을 연달아 탄 뒤 마침내 고대하던 ATS-V에 올라탔다.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한 레카로 시트부터 남다르다. 시트는 방석 부분과 등받이 부분의 사이드 볼스터를 따로 조절할 수 있어 체구에 상관없이 몸을 꼭 맞출 수 있다.
한참 자세를 잡은 뒤 시동을 걸자 3.6L V6 트윈터보 엔진이 우렁찬 소리를 낸다. ATS-V의 심장은 최고출력 470마력, 최대토크 61.4kg.m을 발휘해 동급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경쟁 모델들이 앞다퉈 듀얼클러치 방식의 변속기를 채택한 반면 캐딜락은 듀얼클러치만큼 변속이 빠르다고 주장하는 8속 하이드라매틱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0-100km/h 가속은 3.8초면 마무리되고 최고속도는 무려 302km/h에 달한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자동차는 숫자놀음이 전부가 아니다. 제원 만으로 차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서 M4, C63, RS5, RC F 등 경쟁 모델들을 모두 시승해 본 만큼 이번 짧은 주행에서는 ATS-V의 서킷 경쟁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당장 첫 코너부터 앞서 탔던 모델들과는 궤를 달리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묵직한 스티어링 휠은 거의 유격감이 느껴지지 않고 차체를 회전시킨다. 탄탄한 서스펜션 역시 조금의 롤링이나 피칭도 허용하지 않는다.
코너를 빠져나갈 때면 “이 차가 충분히 빠른 속도로 내달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촘촘한 기어비는 470마력의 출력을 재빠르게 뒷바퀴에 분배하고, 200km/h가 넘는 고속에서도 순식간에 노면으로 내려앉는 강력한 제동력도 믿음직스럽다. 운전자가 의도한 만큼 달리고, 돌고, 선다. 동급 중 서킷에서 가장 사랑받는 BMW M4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일부 테스트에서 ATS-V는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서킷 레코드를 세우기도 했다.
아무리 극적인 순간에서도 변속기는 드라마틱한 감속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가속 시에는 번개처럼 변속을 해내지만, 다운시프팅은 다소 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속충격은 효과적으로 억제됐고, 어느 정도 원하는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다만 패들 시프트를 당길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배기음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유감이었던 점은 서킷 주행을 위해 마련된 차량들의 타이어가 순정 출고 사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ATS와 CTS에는 금호 엑스타 4X II가, ATS-V에는 금호 LE 스포츠가 장착됐다. 나름대로 썸머 타이어이기는 하지만 각각 200마력대 후반과 400마력대 후반의 출력을 내는 시승차들에게는 한참 못 미치는 접지력이다. ATS-V의 출고 타이어인 미쉐린 PSS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립이 부족한 타이어때문에 코너 탈출 시에 조금만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아도 자세제어장치의 개입이 들어왔고, 그 결과 차량의 성능을 100%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다. 특히 강력한 성능의 ATS-V는 거의 대부분의 코너에서 깜빡이는 자세제어장치 경고등을 봐야 했다. 아무리 가격이 비싸더라도 순정 출고 타이어를 장착해줘야 제대로 된 시승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ATS-V는 그 주행 성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초도물량이 이미 완판됐다는 것이 캐딜락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인증 작업이 진행 중인 CTS-V 또한 648마력의 최고출력과 87,1kg.m의 어마어마한 최대토크로 스포츠카 매니아들을 놀래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캐딜락의 고급스러움이 궁금했지만, 이제는 그 역동성에 좀 더 많은 기대를 걸게 된다. 운전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BMW와 견줘도 손색 없는 기본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짧고 굵게 진행된 이번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는 캐딜락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캐딜락이 고리타분한 럭셔리 브랜드 정도로 느껴진다면, 서킷에서 한계 주행을 체험해봤을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를 즐기는 운전자라면 이제는 캐딜락도 관심 리스트에 올리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