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아차 그룹 최초의 하이브리드 SUV인 기아 니로가 오는 3월 29일 출시를 앞둔 가운데 기존 라인업 체계와는 약간 다른 포지셔닝으로 인해 주목을 끌고 있다. 쉽게 말해 족보가 살짝 꼬인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컨셉트카를 통해 먼저 알려진 ‘니로’라는 이름은 높은 친환경성을 표현하는 ‘니어 제로(Near Zero)’와 ‘히어로(Hero)’를 합친 합성어다. 기아차 내에서는 이미 선보인 K5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 쏘울 EV의 친환경차 계보를 잇게 되며, 현대 기아차 그룹 내에서는 최근 선보인 친환경 전용 모델 아이오닉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아이오닉의 SUV 버전’이자, 플랫폼 내 첫 SUV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친환경 모델 전략의 일환으로 개발되면서 동시에 최근 국내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소형 SUV들과도 경쟁하도록 포지셔닝되다 보니 기존 현대 기아차의 라인업 구조와는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마치 한국인 가정에 서양인의 피가 섞이면서 갑자기 체격과 외모가 전혀 다른 아이가 태어난 느낌이다. (니로의 실제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아 니로의 등장으로 족보가 살짝 꼬이고, 포지셔닝 잡기가 애매하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니로는 기아 SUV 라인업에서 모하비, 쏘렌토, 스포티지로 이어지는 대, 중, 소형 SUV 아래, 막내 SUV로 태어났지만 휠베이스가 형인 스포티지보다 더 길다. 니로의 차체 사이즈는 4,355 x 1,800 x 1,535mm로 분명 스포티지의 4,475 x 1,850 x 1,645mm보다 작다. 그런데 실내 공간의 척도가 될 수 있는 휠베이스는 스포티지의 2,670mm보다 긴 2,700mm다. 이는 그 윗급 모델인 현대 싼타페와 동일한 사이즈다.
휠베이스로만 보면 분명 하극상이다. 이는 니로가 처음부터 스포티지 아래 소형 SUV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친환경 전용 모델로 개발되면서 기존 라인업 체계와는 다르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개발 초기 포지셔닝은 소형 SUV 경쟁 모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니로를 기아 SUV의 막내라고 할 수 있을까?
둘째, 그러다 보니 기아차가 지목한 경쟁모델들과도 체격에서 차이가 난다. 르노삼성 QM3의 사이즈가 4,125 x 1,780, x 1,565mm에 휠베이스가 2,605mm이고, 쉐보레 트랙스는 크기가 4,245 x 1,775 x 1,670mm, 휠베이스 2,555mm, 그리고 쌍용 티볼리는 크기가 4,195 x 1,795 x 1,590mm에 휠베이스 2,600mm다. 키를 제외한 모든 체격에서 니로가 월등히 더 크다. 이는 중학생이 초등학생과 경쟁하겠다는 수준이다. 그나마 티볼리 에어의 경우 4,440 x 1,795 x 1,635mm, 휠베이스 2,600mm로 휠베이스를 제외하고 차체 크기가 어느 정도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과연 니로를 소형 SUV 경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셋째, 니로는 ‘세단’(혹은 패스트백)인 현대 아이오닉의 플랫폼을 이용해 개발한 ‘SUV’임에도 가격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같은 플랫폼에서 개발된 세단 모델에 비해 SUV는 가격이 한 체급 올라가는 것이 보통인데, 니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SUV들과는 전혀 다른 가격책정이다.
예를 들어, 아반떼 플랫폼으로 개발된 SUV인 투싼은 가격이 쏘나타와 비슷하고, 쏘나타 플랫폼으로 개발된 SUV인 싼타페는 가격이 그랜저급이 된다. 그런데 아이오닉 플랫폼으로 개발된 SUV 니로가 아이오닉과 비슷한 가격이라면 뭔가 느낌이 이상해진다. 그렇다면 니로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표를 달고 나온 것이거나, 지금까지 세단과 비슷한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SUV를 비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진실일까?
기아차 관계자는 니로가 SUV이긴 하지만 오프로드 주행까지 고려해서 개발되는 일반 SUV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오프로드 주행은 염두에 두지 않고 개발된 모델이다 보니 차체 보강 측면 등에서 일반 SUV들과는 달리 가격 상승 요인이 많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는 답변이다. 소비자들은 니로를 SUV로 보고 있는데, 그저 키가 큰 세단일 뿐이어서 다양한 스포츠 유틸리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일반적인 SUV들보다 차체 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기아차 관계자는 그것은 또 아니라고 답했다.
또 하나 추측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소형 SUV 시장에 대해 투싼이나 스포티지의 가지치기 모델로만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새로운 모델인 니로를 그 시장에 대등하도록 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쌍용 티볼리, 특히 티볼리 에어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니로를 고려하고 있는 고객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니로의 가격은 럭셔리 2317만원~2347만원, 프레스티지 2514만원~2544만원, 노블레스 2711만원~2741만원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경쟁 모델들의 가격은 QM3 2,239~2,533만원, 트랙스 1,920~2,465만원, 티볼리 1,606~2,450만원, 티볼리 에어 1,949~2,449만원 수준이다. 기아차는 니로가 전체적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되긴 했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각종 세제 혜택을 고려하면 매우 경쟁력 있는 가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과 직접 경쟁 상대인 디젤 모델과 비교할 경우 나름 의미 있는 분석이긴 하지만 가격대가 가장 낮은 티볼리 가솔린 모델의 판매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 부분은 어느 정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티볼리 가솔린 모델의 판매 비중이 높은 것은 소형 SUV인 만큼 1.6 가솔린 엔진으로도 힘이 크게 부족하지 않고, 가격대가 낮은 소형차인 만큼 가솔린과 디젤의 가격차이가 매우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소형차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고 고급차라 할 수 있는 니로가 어느 정도 선전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넷째, 니로는 ‘SUV’ 이지만 결국 4WD를 갖춘 스포츠 유틸리티 비클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이브리드의 대명사인 토요타와 렉서스의 경우 SUV 모델에 하이브리드를 적용할 경우에도 4륜 구동 모델을 함께 선보인다. 이 때 센터 디프렌션을 이용한 정통적인 방식의 4륜구동 모델도 있지만, 최근에는 앞쪽 하이브리드 시스템 외에 별도로 뒷바퀴에 전기모터를 추가한 E-4 AWD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렉서스 NX, RX, 그리고 토요타 RAV4 등이 그렇다.
그런데 니로는 하이브리드 SUV 이지만 AWD 시스템에 대한 계획이 아예 없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차체 보강 면에서 오프로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뒷바퀴 쪽에 전기모터를 추가하는 형태의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당장은 채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도심형 SUV들이 늘어나면서 2WD SUV들이 많아졌고, 겨울철 눈길에서 헤매는 2WD SUV들을 보면서 ‘무늬만 SUV’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모델들도 라인업에는 4WD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고객들이 4WD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니로는 아예 선택할 수가 없다. 물론 르노삼성 QM3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럼에도 하이브리드 SUV 중에서 4WD 시스템이 없는 모델은 아직까지는 니로가 유일하다.
거기다 최저 지상고도 세단보다는 높은 160mm 수준이지만 SUV 수준에는 못 미친다. 과연 니로를 SUV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처럼 족보가 꼬이면서 정확한 정체 파악이 애매한 니로의 존재가 소비자에겐 득일까? 실일까?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 4WD 시스템에 대한 수요 등은 소비자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지만, 경쟁모델을 의식해서든 아니든, 세단형과 비교해서 크게 오르지 않은 가격은 우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차체 강성이나 최근 불거진 아이오닉의 경사로 밀림 등에서 문제만 없다면 말이다. 특히 경쟁모델 들에 비해 더 큰 차체와 넓은 실내 공간을 갖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결국 제대로 된 경쟁이 있어야만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그먼트 내 저가 모델에 대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