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20대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로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가 적혔지만 그 중에서도 꼭 해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전국 일주”였다. 그것도 자동차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팔도 방방곡곡을 다녀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필자도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곳의 이색적인 정취는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고, 무료한 일상을 설레는 순간으로 바꿔준다. 뜻밖의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즐거울 때는 즐거운 대로, 속상할 때는 속상한 대로 짧게든 길게든 종종 여행을 다닌다.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계획이 계획인 경우도 있다. 계획이 없으면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면 근사한 장면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배가 된다. 그것이 바로 즉흥 여행의 묘미다.
이번 여행도 그렇게 충동적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겨울 중 짧은 휴가를 얻어 친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일정이 어긋나 버렸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버킷 리스트에 써 뒀던 “전국 일주”가 떠올랐다.
전국 일주! 제법 낭만적인 소재지만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는 않는 여행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어마어마하게 땅덩어리가 크면 모를까, 우리나라는 어디든지 몇 시간이면 갈 수 있기에 며칠 씩 적잖은 비용을 들여가며 국내 여행을 떠나기가 선뜻 망설여진다. 어딜 가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도 비슷할 게다. 시골로 들어가자면 대중교통편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자동차로 돌아다니자니 퍽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숨은 절경과 볼거리가 많다. 특히나 자동차 여행은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을 구석구석 다닐 수 있고, 도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사회생활이 길어질 수록 다시는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요즘은 전국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으니 업무에도 크게 지장받지 않았다.
여행기간은 15일로 잡고 탄력적으로 늘리거나 줄이기로 했다. 자동차로 출발하기로 했지만 막상 어떤 차를 가져갈 지가 고민이었다. 필자의 자가용은 1998년식 EF 쏘나타 수동, 그리고 같은 1998년식 BMW 540i 등 두 대. 쏘나타는 전국 어디서나 정비하기 수월하지만 수동이라 운전 피로도가 높을 터였고, 540i는 굉장히 편안하지만 고속연비가 10km/L에도 못 미쳐 유류비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오래된 수입차가 시골에서 트러블이라도 생겼다가는 여행 스케줄을 완전히 망칠 우려도 컸다.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에 마침 푸조로부터 308 SW의 롱텀 시승 제의가 들어왔다. 기간도 딱 맞았다. 롱텀 시승은 오랫동안 타 보면서 차의 장단점을 분석하기 위한 목적이니만큼 15일 간의 장거리 여행이라면 차를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건이니 한 가득인 짐을 싣고 내리기도 편하고 실용성도 뛰어나다. 사진 찍기가 즐거워 지는 예쁜 외모는 덤이다. 무엇보다 연비 좋기로 소문난 푸조 아닌가? 그야말로 여행에 딱 맞는 최적의 차다.
일정을 조정하고 준비를 마친 뒤 지난 1월 중순, 충북 제천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강원도는 최근에 일주일여 간 따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제외됐고, 충남 역시 자주 다녀온 터라 충북에서 출발해 영남 내륙을 지나 남해를 거쳐 전라도를 관통해 올라오며 자주 가 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는 루트를 계획했다. 이렇게 한반도를 한 바퀴 돌기만 해도 꽤나 빡빡한 스케줄이어서 제주도는 차후에 따로 다녀오기로 했다.
완벽한 “전국” 일주는 아니지만, 대신 가능한 대부분의 이동은 무료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는 빠르고 쾌적하지만 놓치는 풍경이 많은 까닭이다. 결과적으로 출발과 귀경 외에 한 두 구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정은 국도와 지방도만을 이용했다. 주행 패턴은 스트레스 없이, 연비를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주행하는 패턴을 유지하기로 했다.
장기간의 여행인 만큼 준비할 것도 평소보다 많았다. 옷가지와 각종 전자제품 충전을 위한 멀티탭은 기본. 우산은 휴대하는 접이식 우산 외에 장우산을 하나 더 챙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각대와 야광 반사 조끼, 경광봉도 챙겼다. 겨울에는 체인 등 월동장구도 필수. 끝으로 자동차 사진을 많이 찍는 만큼 세차가 용이하도록 다목적 타올을 한 묶음 넣었다. 왜건이 아니었다면 꽤 많은 짐을 넣기 위해 시트를 폴딩해야 했거나 트렁크 정리에 골머리를 썩었을 것이다.
트렁크에만 짐이 많은 것은 아니다. 거의 여행 내내 필자의 차 풍경은 이랬다(물론 이 것은 연출된 사진이다). 휴대폰이나 소형 전자제품을 충전할 수 있는 시거잭 충전기와 스마트폰 거치대는 필수다. 물티슈와 휴지 등 위생용품은 늘 손 닿는 곳에 넣어뒀고, 운전 중 피곤할 때 안락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담요와 베개도 뒷좌석에 보관했다. 생수는 큰 병을 사서 뒷좌석에 보관하며 텀블러에 조금씩 나눠 담아 마셨고, 비닐봉투로 휴지통을 만들어 청결을 유지했다. 운전 중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간식이나 껌 등은 그때 그때 구입했다.
그 밖에 선글라스와 차량용 휴대전화 번호 알림판도 차량에 꼭 비치해 두는 것이 좋다. 더불어 종이로 된 지도를 한 부 챙겼는데, 인터넷 지도가 편리하다고 해도 한 눈에 지도를 보며 손쉽게 경로를 계획하기에는 종이 지도가 제 격이다. 이 정도 준비하면 자동차 여행 준비 끝이다. 사람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겠지만, 이 정도면 여행 중에 불편함은 없다.
여행 스케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숙소는 이틀 씩만 예약하고, 이틀마다 숙소를 새로 예약했다. 혼자 떠난 여행이라 대부분의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요즘은 학생들 사이에 기차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웬만한 도시마다 게스트하우스가 잘 구비돼 있다. 주차 역시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대망의 여행 첫 날, 집을 나설 때 연료는 3/4이 조금 넘게 있었다. 트립 컴퓨터를 리셋하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주행거리와 연비를 누적해 체크하기로 했다. 서울을 출발하면서는 행사에 동행하는 지인들을 태우고 가느라 5명이 차에 꽉 채워 탔고, 짐도 한 가득이었다. 하지만 308 SW의 적재능력은 시작부터 빛을 발했다. 아마 해치백이나 준중형 세단이었으면 짐을 싣기 어려웠겠지만, 가방과 옷을 대충 트렁크에 던져 놓아도 부담 없이 들어갔다. 해치백보다 110mm 길어진 휠베이스 덕에 뒷좌석 공간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인원과 짐으로 인해 혼자 탈 때보다 최소한 250kg 이상은 무게가 더해졌을텐데 힘에 부치지 않을까가 걱정이었지만, 서울에서 제천까지 가는 2시간 여의 여정에서 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1.6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20마력, 최대토크는 30.6kg.m이다. 넘치지는 않지만 컴팩트 왜건이 치고 나가기에는 충분한 출력이다.
첫 여행지를 제천으로 잡은 까닭은 지인들과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1박2일의 행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른 차편으로 서울로 돌아갔고, 필자는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첫 숙소는 제천으로부터 120km 가량 떨어진 경북 안동이었기 때문에 제천에서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몇몇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제천을 떠나기 전에 들른 곳은 의림지. 평범한 저수지처럼 보이지만, 삼한시대에 축조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다. 충청도를 호서(호수의 서쪽)라고 부른 것 또한 제천 의림지에서 유래한다. 화려한 볼 것이 있지는 않지만 호변을 산책하며 서늘한 겨울공기를 만끽하기 좋다. 날이 풀리면 인공폭포에서 물줄기가 쏟아지고 푸른 초목이 우거진다고 한다. 의림지 외에도 제천에는 아름다운 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가 있고, 멀지 않은 강원도 영월군에 한반도 지형도 유명하다. 마음 같아선 모두 둘러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기에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이동했다.
제천을 벗어나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곳이 충북 단양군이다. 온달설화로 유명한 단양에는 깎아지른 자연의 절경이 곳곳에 숨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도담삼봉이다. 남한강에 우뚝 솟아있는 세 개의 봉우리로, 가운데가 남편봉이고 처봉과 첩봉이 양 옆에 위치한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호를 삼봉으로 지을 만큼 도담삼봉을 아꼈다고 한다.
강에 섬이 떠 있는 것은 그다지 신기할 것이 없지만, 강 한가운데에 혼자 삐죽 솟은 도담삼봉은 어딘가 신비롭고 낯설기만 하다. 눈 쌓인 봉우리가 거울처럼 잔잔한 남한강 물길에 반사돼 운치를 더했다. 점점 궂어지는 하늘만 아니었어도 좀 더 근사한 모습을 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흐린 날씨도 여행의 일부이니 마냥 원망할 것은 아니다.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안동은 다음 날 둘러볼 계획이었으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그만이었지만, 시간에 쫓긴 것은 단양 옆 경북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에 해가 지기 전에 당도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을 직접 보고 싶었다. 겨울 여행은 한가로워서 좋지만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짧은 해가 아쉽다. 아침 해는 7시 반 정도에 뜨고 오후 5시 반이면 해가 넘어가 버리니 부지런히 다니는 수 밖에. 더군다나 해가 진 뒤에 운전하는 것은 퍽 피곤한 일이므로 가급적 주간에 장거리 이동 스케줄을 맞췄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고찰 중 하나다. 아름다운 두 개의 누각을 지나면 비껴 서 있는 무량수전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 중 하나인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건물로, 자그마치 7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 내부에는 키가 2.8m에 육박하는 소조여래좌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무량수전 건물과 그 앞의 석등, 소조여래좌상이 모두 국보급 문화재다.
오는 길에 내리던 비가 부석사에 오를 즈음에는 눈으로 바뀌었다. 궂은 날씨 탓에 부석사를 찾는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부석사의 또 다른 절경 중 하나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노을이지만, 눈발이 내려앉아 노을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소박하게 눈에 덮힌 부석사를 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부석사를 내려오니 금방 어두워졌다. 진눈깨비를 헤치고 안동에 당도했다. 점심을 먹은 지 꽤 지난 터라 안동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인 헛제삿밥을 먹었다. 평상 시에 먹지 못하는 제사 음식이 먹고 싶어 제사 음식 재료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안동이 가장 유명하다. 안동 간고등어나 안동 찜닭도 유명하지만, 혼자서 먹을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나홀로 여행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식당 앞 야경 명소인 월영교는 물안개가 낀 데다 너무 어두워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아쉬운 대로 한 컷. 시내에 들러 맘모스 제과에서 유명한 크림치즈빵을 사 들고 숙소로 향했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인 까닭일까, 게스트 하우스가 텅 비어 편하게 혼자 방을 쓸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하회마을로 향했다. 양반 마을로 유명한 안동 하회마을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고 오래된 전통가옥에서 여전히 주민들의 삶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개장 시간에 맞춰 둘러볼 요량으로 갔지만 너무 이른 시간인 까닭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전국이 기록적인 한파에 얼어붙은 시기라 주민들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오싹할 정도로 적막했다. 묘한 기분이 들어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왔는데, 그제서야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관광지를 둘러볼 때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고촌(古村)을 배경으로 여행의 유일한 벗인 308 SW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하회마을의 주민이 아니면 차를 타고 들어갈 수는 없다. 대신 하회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을 나오는 길 옆의 비포장 샛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고즈넉한 병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서애 류성룡의 얼이 서린 병산서원은 낙동강변에 위치한 안동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다. 지방 도시를 다니면 곳곳에서 서원과 향교를 만날 수 있는데, 잠시 들러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고 가는 것도 좋다.
안동에서 몇 곳을 더 돌아본 뒤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경북 경주로 향했다. 거리는 170km가 넘었고, 국도를 타고 갔을 때 소요 시간은 3시간 30분 가량. 도착하면 이미 꽤 시간이 늦을 터라 부지런히 출발했다. 안동을 벗어날 때는 914번 지방도를 이용했는데, 도중에 삽재고개라는 작은 고개를 넘는다.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좁은데, 정상 즈음에서 안동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사진을 한 컷 남겨두고 여정을 이어갔다.
내비게이션이 그 때 그 때 추천하는 경로를 따라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탔다. 노면이 나쁜 구간도 많았는데, 308 SW의 서스펜션은 길을 가리지 않고 탁월한 승차감을 보여줬다. 탁 트인 길에서는 노면에 밀착되고, 울퉁불퉁한 곳에서도 자세가 쉬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모터스포츠로 다져진 노하우가 이 평범한 컴팩트 왜건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 3시간여의 운전이 피곤할 법도 한데, 마치 시골길을 가로지르는 유럽의 랠리 대회에 참가한 기분으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경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가 다 됐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세차장. 전날 내린 비와 흙먼지로 엉망이 된 308 SW를 깨끗이 씻겨주고, 곧장 불국사로 향했다. 수학여행을 온 기분으로 석굴암도 가 보려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서울 출신이라면 으레 수학여행지로 경주를 들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거리가 꽤 되는 까닭에 어른이 되어 자주 찾을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서울 토박이인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이후로 경주는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였던 불국사는 이제 와서 보니 생각하던 것보다 아담하게 느껴졌다. 물론 웅장한 청운교 백운교는 여전히 아찔하게 와 닿았지만 말이다. 해태 석상이 외롭게 다보탑을 지키고 있는 것도 그대로였지만, 석가탑은 보수 공사가 한창이어서 빼어난 자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기왕 기분을 낸 김에 불국사를 내려와 야경으로 유명한 안압지와 첨성대도 둘러봤다. 안압지의 올바른 명칭은 “동궁과 월지”로, 신라시대 궁궐이었던 동궁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낮에도 멋스럽지만, 야간에 들어서면 연못에 비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첨성대는 입장료 없이 산책로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조명이 켜져 야경이 근사하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고약하게 몰아쳤지만,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벌써 주행거리는 500km가 넘었다. 연료가 1/4 가량 남았을 때 주유를 하니 3만 5,000원이 결제됐다. 연료탱크가 크지 않은 까닭이다. 경주까지 오는 여정의 평균 연비는 17.5km/L를 기록했다.
이 날은 숙소에 적잖은 여행객들이 있었고, 간단한 술자리를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과중한 업무의 피로를 풀기 위해 여행 온 사람, 새로운 도전에 앞서 마음을 다잡는 여행을 온 사람, 우정 여행을 온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긴 밤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 날 포항에서 부산에 이르는 해안도로를 달려가야 했기에 일찍 자리에 누웠다. 이번 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해안 여정을 시작할 생각에 설레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