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르부르크링이 쉬워진다?” 속도 무제한 위해 코스 수정

“녹색 지옥”으로 악명높은 세계 최장의 서킷, 뉘르부르크링이 안전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노르트슐라이페(북쪽 코스)의 많은 구간에 안전 펜스가 추가되고 일부 구간에는 평탄화 작업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노르트슐라이페의 난이도가 조금 낮아지고, 랩타임 역시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운영하고 있는 카프리콘 뉘르부르크링 측에 따르면, 지난 11월 11일 FIA(국제 자동차 연맹)는 올해로 만료되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의 공인 서킷 인증을 3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또 뉘르부르크링 일부 구간에 설정된 속도 제한 역시 폐지한다. 단, 이 모든 승인에는 뉘르부르크링 서킷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전장 21km의 서킷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면서 동시에 가장 공략이 어려운 난코스로 유명하다. 이 전설적인 서킷에 속도 제한이 발효된 것은 지난 3월에 발생한 사망사고 때문이다. 급격한 고저차로 차체가 붕 뜨는 Flugplatz 구간에서 얀 마덴버러가 몰던 GT-R 레이스카가 날아올라 관중석을 덮친 것. 이 사고로 관람객 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끔찍한 참사 이후 독일 모터스포츠 연맹(DSMB)는 회의를 통해 노르트슐라이페 일부 구간에 속도 제한을 발령했다. 속도 제한이 있는 구간은 총 4곳으로, 사고가 난 Flugplatz 및 Antoniusbuche, Schwedenkreuz 등 3곳에서는 200km/h 제한, 최고속을 내는 4km 길이의 Döttinger Höhe에서는 250km/h 제한이 이뤄졌다.

고속구간의 속도 제한으로 인해 그간 많은 스포츠카들이 노르트슐라이페 랩타임 계측을 포기해야 했다. 특히 지난 6월 코닉세그의 하이퍼카 원(One:1)이 이 속도 제한 때문에 랩타임 계측이 좌절되면서 팬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사진 출처: 뉘르부르크링 공식 페이스북)

뉘르부르크링은 경기용 서킷에 만들어진 황당한 속도 제한 규정을 철폐시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FIA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여러 구간에 강철 펜스와 타이어 월, 방호벽 등을 추가하기로 한 것. 이에 따르면 Metzgesfeld, Schwedenkreuz, Antuniusbuche 등 사고가 잦은 여러 구간에 FIA 인증 규격 펜스와 방호벽이 추가된다. 서킷 내부 뿐 아니라, 방호벽을 넘어가는 잔해를 막기 위한 외부의 이중 펜스 설치까지 포함된다.

변화의 핵심은 일부 구간의 수정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Quiddelbacher Höhe~Flugplatz 구간에 이르는 500m 가량의 코스에서 5개의 요철이 제거되고 코스의 굴곡이 더욱 완만해진다. 이에 따라 Flugplatz 직전의 악명높은 점프 구간 역시 사라지고, 해당 구간의 난이도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차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당 구간의 수정으로 인해 노르트슐라이페의 랩타임 기록 역시 0.5~1초 가량 감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출처: 뉘르부르크링 공식 페이스북)

카프리콘 뉘르부르크링 측은 “해당 구간의 특성을 최대한 보존할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뉘르부르크링 팬들 사이에서는 아쉬움과 안도가 교차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뉘르부르크링은 독일과 유럽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므로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Flugplatz(독일어로 ‘비행장’)에서 더 이상 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다른 누리꾼들은 “뉘르부르크링의 보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끊임 없이 변화해 왔다”며 “유적이 아닌, 살아 숨쉬는 서킷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코스 수정을 환영했다.

한편, 지난 6월 랩타임 계측을 거부당했던 코닉세그는 지난 10일 뉘르부르크링의 변화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코닉세그 측에 따르면 기록 계측에 도전했던 차량이 고객에게 인도된 관계로, 이르면 내년 중순 경 새로운 차량을 마련해 노르트슐라이페에 다시 출사표를 낼 전망이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최고 6분 30초대의 기록을 기대했던 만큼 코닉세그는 차량이 준비되는 대로 기록에 도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진 출처: 뉘르부르크링 공식 페이스북)

현재 뉘르부르크링은 비수기를 활용해 여러 구간의 노면을 보수하면서 Flugplatz 구간에 대한 대대적 공사에 돌입했다. 내년 시즌에 계획된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공사는 내년 3월 전까지 완료될 전망이다. 비록 뉘르부르크링이 쉬워지는 데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대다수의 모터스포츠 팬들은 내년에도 WEC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를 비롯해 수많은 레이싱 이벤트를 속도 제한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데에 기대를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