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370Z는 제대로 스포츠카다운 화려한 스타일과 소형 스포츠카에 차고 넘치는 강력한 성능, 끊임없이 엑셀을 밟고 싶게 만드는 자극적인 엔진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가격 경쟁력까지, 이 모든 것을 갖춘 닛산 스포츠카의 아이콘이다.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다운사이징 엔진이나 DCT, 다양한 편의 장비를 갖추지 않은 것은 조금 뒤쳐진 모습이다. 하지만 370Z는 정말 가슴 뛰게 만드는 차다. 페어레이디, 아직 싸롸있네!!!
닛산에서 오랜만에 370Z를 시승하라고 연락이 왔다. ‘왠 뜬금없이 370Z?’ 라는 생각이 든 건 아주 잠깐이고, 그 때부터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에 자꾸 370Z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GLA45 AMG, 골프 R, S3 등을 시승했고, 곧 TTS도 시승이 예정돼 있는 상황인데, 다운사이징 2리터 터보로 300마력 혹은 그 이상의 강력한 성능을 뿜어내는 모델들을 시승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달리면서도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리고 그 갈증의 어느 끝자락에서 370Z 생각이 모락모락 났었던 모양이다. 방금 이야기한 최신 모델들에 비하면 다운사이징이라든가 DCT 같은 최신 트랜드 기술이 적용되진 않았지만 강력한 자연흡기 6기통 엔진을 얹은 순수 스포츠카의 느낌이 살아있는, 일본산 스포츠카의 핵심 모델 중 하나로 한 때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370Z를 지금 다시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가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370Z는 1969년 페어레이디 Z로 세상에 태어났고, 지금 모델은 지난 2008년 등장한 6세대 모델의 최신 버전이다. 이번 2016년형은 조향 감각과 서스펜션을 개선해 더욱 높아진 응답성과 즉각적인 핸들링, 안정적이면서도 평소에 부드러운 승차감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을 570만원 낮춘 5,190만원으로 책정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골프 R이 5,190만원으로 370Z와 값이 같고, 220마력의 아우디 TT는 5,750만원이고, 성능이 비슷해지는 293마력 TTS는 7,890만원으로 가격이 껑충 뛴다. 반면 370Z는 스타일과 성능을 고루 갖춘 후륜구동 스포츠카임을 감안하면 경쟁력이 무척 높아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처럼 다시 만난 370Z는 빨간색이다. 2009년 6세대가 처음 들어왔을 땐 노란색이었는데, 빨간색도 엄청 잘 어울린다. 게다가 실내를 오렌지색으로 꾸며 내 외장 색깔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지난 번에 라디에이터 그릴에 삐죽 튀어 나왔던 덧니는 깔끔하게 치아교정을 마쳤다. 범퍼 좌우에는 세로로 주간주행등을 추가했다. 그러고 보니 5세대였던 350Z의 앞모습과 많이 닮아졌다. 어쨌든 6세대 초기형에 비해 디자인은 한결 차분하면서 남성다워진 모습이다.
블랙컬러로 바뀐 18인치 알로이휠도 멋을 더한다. 타이어는 지난 번과 같은 앞 225/50R18, 뒤 245/45R18 요코하마 어드반 스포츠다. 차의 성능을 생각할 때 정말 겸손한 타이어 세팅이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타이어를 신고도 기대 이상의 코너링 접지력을 갖추고 있다. 좀 더 과감하게 고성능 광폭타이어로 갈아 신는다면 강력한 코너링 머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옆모습 실루엣은 사실 좀 짜리몽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길이가 4,250mm에 불과한 컴팩트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예전 페어레이디 300ZX 시절에 비하면 길이가 27cm나 짧아진 것이다. 하지만 휠베이스는 유지하면서 길이만 짧아진 만큼 운동성 면에서는 훨씬 유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때문에 ‘+2’의 뒷좌석은 사라졌다. 어쨌든 지금은 아우디 TT와 비슷한 사이즈이면서 스타일은 정통 스포츠카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실내는 이전과 바뀐 부분이 없다. 다만 지난번에는 보지 못했던 오렌지색 투톤이 적용돼 무척 낯설기도 하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좀 크다. 작고 강력한 스포츠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텔레스코픽도 지원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운전자세를 잡아보려 애쓰면 어느 정도 맞출 수는 있지만 완벽한 자세를 잡기는 어렵다. 반면 계기판은 무척 멋지다. 그리고 스티어링 휠이 틸팅될 때 계기판이 함께 위 아래로 움직여 어떤 각도에서도 스티어링 휠 사이로 보이는 계기판의 정보가 동일하게 유지된다.
센터페시아에는 상단에 수온계와 전압계, 그리고 시계를 동그란 게이지 형태로 배열해 스포츠카의 분위기를 돋운다. 그 아래에는 모니터를 적용하지 않고, 커버가 있는 수납공간으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네비게이션 등의 편의장비가 빠진다. 2009년에도 없었다. 모니터 넣고 가격 높아지는 것보다는 없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아쉬운 네비게이션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하고, 블루투스 통화가 가능하고, 아이폰을 USB에 연결하면 충전과 동시에 폰 속의 음악을 쉽게 들을 수도 있어서 아쉬움을 달래 준다.
음악은 보스 오디오 시스템이 맡는다. 스포츠카일수록 보스 오디오 시스템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물론 보스 중에서 성능이 아주 뛰어난 상위 모델은 아니다.
오렌지색 시트는 색상 때문에 더 멋지게 보이고, 몸도 잘 잡아준다. 가운데 부분은 펀칭한 알칸타라로 꾸며 몸을 더 잘 밀착시켜 준다. 시트 전동 조절 장치는 예전 닛산 스타일 대로 시트와 센터 터널 사이에 위치한다. 운전석에서 동반석 시트 조절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시트 뒤에는 트렁크쪽 격벽 사이에 약간의 수납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작은 가방 정도를 놓기에 편리하다.
해치 아래 트렁크에는 골프백 2개가 들어갈 정도의 꽤 넉넉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둘이서 길지 않은 여행을 떠나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보기보다 실용성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엔진은 8세대 출시 때와 같은, 14년 연속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된 VQ 엔진 시리즈인 V6 DOHC 3.7리터 VQ37VHR 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 333마력, 최대토크 37kg.m의 강력한 성능도 그대로다. 변속기도 자동 7단 그대로다.
엔진은 정말 매끄럽고 강력하다. 0~100km/h 가속 제원을 밝히고 있지 않는데, 실측해 보면 4초 중반 정도로 보인다. 매우 만족스러운 가속력이다.
최신 다운사이징 2리터 엔진들이 300마력, 혹은 360마력까지도 뽑아낼 수 있고, 4륜구동과 더해서 0~100km/h 가속을 5초 이하로 끊고는 있지만, 가속의 느낌은 370Z가 훨씬 더 강렬하다.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도 그렇지만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이 뿜어내는 사운드에서 그 차이는 확연해진다.
VQ37VHR 엔진은 7,500rpm까지 매끄럽게 돌아주면서 멋진 사운드를 뿜어낸다. 그런데 이번 370Z에는 보스 오디오 시스템에 적용된 액티브 사운드 인핸스먼트(ASE: Active Sound Enhancement)를 통해 엔진 사운드가 실내로 고스란히 뿜어져 나온다. 분명 지난 2009년에 시승할 때 엔진 사운드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에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멋진 사운드를 구현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어딘지 살짝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엔진 사운드에 살짝 버터가 입혀진 듯한, 어딘지 약간 느끼한 그런 사운드다. 하지만 사운드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그냥 강렬한 엔진 사운드 그 자체다. 이 사운드 때문에 자꾸만 엑셀을 더 깊이 밟고 싶어진다.
자동 7단 변속기는 응답성이 매우 뛰어나다. 스포츠 모드가 따로 없는데 엑셀을 좀 깊이 밟으면 변속기가 알아서 스포츠 모드가 되는 느낌이다. 응답성이 좋아지고, 기어 내리는 타이밍도 빨라진다. 운전자의 변속 습관을 기억하는 어댑티브 시프트 컨트롤(Adaptive Shift Control) 때문으로 보인다.
시프트 패들은 스티어링 휠에 고정된 방식이 아니고, 스티어링 칼럼에 고정된 방식으로 닛산과 인피니티가 모두 같이 쓰는 패들이다. 시프트 패들로 변속할 때 반응도 매우 경쾌하고 빠르다. DCT가 대세인 것을 감안하면 DCT가 아닌 점이 아쉽긴 하지만 실제 주행에서 아쉬움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를 맞춰주는 실력은 수준급이다. 강렬한 엔진 상승음과 함께 순식간에 바늘이 튀어오르면 동시에 차가 튀어나갈 준비도 끝난다.
D에서도 시프트패들을 당기면 수동모드가 되는데 이 때도 회전수가 레드존에 이르면 자동으로 시프트업이 되지 않고 연료 차단이 된다. 하지만 가속하지 않고 정속 주행을 하면 다시 D로 돌아가는 속도는 빠른 편이다. 제대로 달리려면 아예 기어레버를 왼쪽으로 옮겨서 수동모드로 달리는 게 낫다. 시프트패들을 이용해 고회전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달리다 보면 마치 차와 운전자가 한 몸이 된 듯 멋진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사실 이번 370Z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승차감이다. 평상시 승차감이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잘 어울렸다. 분명 단단하긴 한데 끝에서 살짝 여유가 있어서 평상시 타고 다닐 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물론 승차감 때문에 안정성을 해치지는 않는다. 중저속에서는 안정성에 더할 나위가 없다. 고속에서는 안정성이 그래도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차체가 작은 데서 오는 불안감까지 완벽하게 커버하지는 못한다. 고속에서는 스티어링에도 약간의 유격이 있어서 여유로운 조작이 필요하다.
앞서 미리 이야기한 것처럼 코너링 실력도 무척 뛰어난 편이다. 강력한 파워로 밀어 부치는데도 매우 잘 버텨준다. 물론 엑셀을 끝까지 밟으면서 강하게 밀어 부치면 당연히 오버스티어가 난다. 코너링에서 더 빠르게 돌아나가고 싶다면 타이어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다. 브레이크 성능도 나쁘지 않다. 캘리퍼를 빨간색으로 칠해 고성능임을 암시한다.
370Z는 컴팩트 스포츠카 중 운동성능에서 톱 클래스에 해당한다. 가속성능과 코너링 성능, 감성적인 측면 등에서 매우 뛰어난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다 가격까지 함께 생각하면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동급에서 이 시대 최고의 스포츠카라면 포르쉐 카이맨 GTS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절반의 가격으로 그에 버금가는 성능을 즐길 수 있다면 이 또한 분명히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