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백의 교과서 골프에 292마력을 발휘하는 2리터 터보 엔진과 6단 DSG 변속기를 얹고, 4륜구동 4모션을 더한 골프 R은 강력하면서 거칠게 날뛰는 야생마가 아니다. 완벽하게 조련된 야생마다. 골프가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게 빠르고, 자꾸만 엑셀을 밟게 만드는 마력이 있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매끄럽다. 재미를 위해서 이 차를 선택한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최근 불거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로 인해서 폭스바겐 그룹을 비롯해 독일 메이커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시점에 폭스바겐 골프 R을 시승하게 됐다. 사실 디젤 모델이라면 디젤게이트의 추이에 따라서 당장 시승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승차는 골프 ‘R’이다. 국내 출시를 오랫동안 기다리기도 했거니와 차를 지극히 좋아하는 우리가 이렇게 기대되는 차를 마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핫해치의 원조는 골프 GTI다. 하지만 GTI는 더 이상 출력 경쟁에 내 몰리지 않는다. 그 위에 R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GTI는 파워면에서 큰 진전 없이 몇 세대에 걸쳐 200마력 언저리에서 놀고 있으면서, 밸런스 향상에 집중하고 운전재미가 좋은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골프 R이 골프 모델들 중에서 출력을 담당한다. 골프 R400이 곧 등장할 분위기였으나 디젤게이트로 인해 향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당분간은 R이 계속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골프 R의 역사는 골프에 V6 엔진을 얹으면서 시작됐다. 덩치 큰 6기통 엔진을 골프 엔진룸에 우겨 넣기 위해 뱅크각을 15도로 좁힌 협각 V6엔진을 개발해 넣었는데 폭스바겐에서는 이를 ‘VR6’ 엔진이라 부른다. 모델명은 3세대는 ‘골프 VR6’라 불렀고, 4세대와 5세대에서는 ‘골프 R32’라 불렀다. 5세대부터 4륜구동이 더해졌고, 5세대 R32는 6단 DSG와 결합해서 국내에도 한정판으로 들어왔었다. 6세대 골프에 와서는 VR6 엔진 대신 2리터 터보엔진을 얹으면서 이름도 ‘골프 R’이라고 바꿨다.
7세대 골프 R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전보다 향상된 출력이다. 유럽형이 300마력을 발휘하고, 국내 수입된 북미형은 292마력을 발휘한다. 이전 세대의 270마력에 비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작은 차체에 무거운 6기통 엔진을 얹으면 밸런스도 나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5세대 R32는 가속력이 강력하고 나름 찰진 감각을 선보이긴 하지만 운전재미 면에서는 GTI보다 짜릿하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이번에는 가벼운 2.0터보 엔진이 적용됐으니 어떤 차이가 날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었다.
디자인에서는 기대만큼 과격하지는 않다. 일반인이라면 골프들 중에서 괴물인 R을 구분해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니아들이라면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과격함을 적당히 배합해 냈다. 범퍼하단과 좌우에 거대한 공기 흡입구를 뚫어 ‘나는 보통 골프가 아니다’라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R배지도 달았다. GTI가 그릴에 빨간색 띠를 더해 존재감을 나타낸 것과는 달리 전면에서 색깔로 강조한 부분은 없다. 대신 헤드램프 안쪽에 U자 모양의 주간주행등 2개를 넣어,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고수의 느낌을 더했다.
옆모습에서는 거대하고 예리한 디자인의 19인치 휠이 위압적이다. 휠 사이로는 R 로고가 선명한 캘리퍼가 자리한다. 펜더에도 R배지를 달았다. 뒷모습에는 R배지와 트윈머플러가 더해졌다. 일반 골프보다 20mm, GTI보다 5mm 더 낮은 차체가 만드는 자세도 멋지다. 얼핏보면 무난한 골프처럼 보이지만 실루엣에서 풍채가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마침 시승차가 파란색이기도 하지만 골프 R은 파란색이 메인 컬러다. R을 위해 특별히 개발한 ‘라피즈 블루(Lapiz Blue)’라고 한다. 사이드 미러는 파란색과 잘 어울리는 은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실내에서는 계기판 바늘이 파란색이고, 도어패널과 스커프에 파란색 조명이 더해진 것을 제외하면 파란색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가죽 스티치를 파란색으로 해 줬으면 좋았겠다. 계기판 속도계는 320km/h까지 기록돼 있다.
우락부락한 디자인에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는 R로고도 찍혀 있고 날개 부분에는 카본 느낌이 나는 가죽으로 꾸몄다. 당연히 카본이 아니고 나파 카본 가죽이라고 한다. 곳곳에 카본 느낌을 아주 살짝 비쳤는데, 기왕이면 진짜 카본 파츠를 한 두 개라도 넣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시트에 전동조절장치가 들어간 부분은 대 환영이다.
D컷 스티어링 휠은 GTI에도 있는 것이지만 아래 부분에 R배지를 적용했다.
7세대 골프가 등장하면서 MQB플랫폼이 적용됐는데, 그로 인해 차체가 가벼우면서 단단해졌고 운전이 예리해졌다. 거기다 가벼우면서 강력한 엔진과 4륜구동이 적용됐으니 기대감이 크게 상승한다.
엔진은 2.0리터 TSI 터보로 최고출력 292마력/5,400~6,200rpm, 최대토크 38.7kg.m/1,900~5,300rpm을 발휘한다.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6단 DSG와 결합해 0~100km/h 가속은 5.1초. 최고속도는 250km/h(속도제한)에 이른다. (유럽형 300마력 골프 R은 0~100km/h 가속이 4.9초다.)
2리터 배기량으로 292마력을 뿜어내는 터보엔진이지만 회전이 무척이나 매끄럽고 6,500rpm까지 회전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가속력은 강력하다. 그런데 빠르고 강하지만 가속이 무척 부드럽다. 뭔가 조금 더 거친 맛이 있으면 운전자로서는 더 재미있을 텐데 워낙 매끄럽다 보니 빠른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이것이 골프R의 특징이다.
엔진 사운드도 굉장히 좋다. 회전이 무척 매끄럽고 빠르게 상승하고, 또 떨어지는데, 그 때 사운드도 경쾌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분명 6기통이나 8기통 소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근 300마력을 넘는 2리터 터보 모델을 여러 번 타보지만 결국 사운드 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히 있음을 많이 실감하게 된다.
6단 DSG는 반응이 매우 뛰어나다. 오토에서도 엑셀을 깊이 밟으면 즉각적이고 빠르게 기어를 내린 후 강력하게 가속해 나간다.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 매칭도 워낙 빠르고, 매끄럽다. 다시 말하지만 빠르긴 한데 확실히 부드럽다.
골프 R은 드라이브 모드에서 R만을 위해 준비한 ‘레이스’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레이스모드가 되면 응답성이 빨라지고, 변속은 빠르면서 더 거칠어지고, 약간의 충격도 동반한다. 심지어 아이들링 상태에서의 회전수부터 바뀐다. 노멀모드에서 약 700rpm 정도였던 아이들링 회전수가 레이스모드에서는 1,100rpm으로 올라가면서 즉시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아쉬워했던 과격함이 이제서야 표현된다. 사운드도 더 강렬해 진다. 레이스모드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사운드가 바뀌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레이스모드에서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바꿔도 레드존에서 변속이 차단되지 않고 자동으로 변속이 이뤄진다.
하체는 그 어떤 골프보다 단단하게 다듬었다. 고성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승차감으로서는 딱딱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약간 불편하게 느껴진다.
온로드에서의 주행감각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다. 직진안정성 좋고, 고속 안정감이나 급차선 변경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 타이트하게 잘 달릴 수 있다.
핸들링도 아주 정교하다. 스티어링 록투록이 2회전이 채 안돼서 조향을 아주 신속하게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살짝 묘한 느낌이다. 저속에서 주차할 때는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느낌인데 실제 와인딩에서는 의외로 부드러워진다. 스티어링 휠을 감아보면 유격 없이 즉각적으로 앞머리가 움직이긴 하는데, 많이 돌아가지는 않고 여유롭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골프 R은 4모션에 XDS+까지 더해져서 코너링에서 상당히 높은 속도까지 자세를 잘 잡아준다. 모든 코너를 정말 빠르고 깔끔하게 돌아나간다. 하지만 워낙 파워가 강한 만큼 강하게 밀어 부치면 당연히 언더스티어가 난다. 레이스모드에서도 ESP는 위급한 순간에 개입해 자세를 바로 잡아준다. ESP OFF 버튼을 한번 누르면 ESP 스포츠 상태가 되면서 엑셀이 조금 더 살아있고, 언더에서 오버로 살짝 넘어가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쾌해진다. 하지만 오버로 전환되기는 힘들다. 의도적으로 힘을 뒷바퀴에 몰아주는 타이밍을 만들어야 되는데 쉽지 않다. 할덱스 커플을 사용해 주행 안정성 위주로 된 세팅인듯 오버스티어를 연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ESP를 완전히 끄면 엑셀 제한이 안되니까 언더가 더 심해진다.
골프 R은 아주 잘 조련된 야생마같다. GTI도 무척 정교해져 가고 있지만 아직 거친 면이 어느 정도 살아 있다. 하지만 골프 R은 훨씬 더 빠르지만 매우 잘 조련돼 있어서 거친 맛보다 매끄러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너무 잘 조율돼 있어서 누구나 골프 R을 타면 이 강력한 성능을 마음껏 쉽게 즐길 수 있겠다. 대중적인 초고성능 핫해치라 할 수 있겠다. 과거 R32보다 더 가벼운 엔진을 장착한 탓에 분명 경쾌한 맛은 나아졌다. 하지만 조련이 너무 잘 된 탓에 300마력짜리 핫해치에 기대하는 거친 재미를 찾기는 살짝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