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동경모터쇼 개막 이틀 전인 지난 10월 26일 도치기현에 위치한 ‘혼다 R&D 센터’로 세계 여러 나라 기자들을 초청해 ’2015 혼다 미팅’을 개최해, 현재 혼다가 보유한 최신 기술과 개발 중인 다양한 미래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혼다 미팅은 동경모터쇼에 맞춰 매 2년마다 개최되며 이번이 4회째다.
이날 소개된 기술은 자율 주행 자동차를 위한 트래킹 기술, 사고 제로를 위한 충돌 방지 기술,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 연료 전지차, 순수 전기차 등 다양한 친환경 파워 트레인, 세계 최초 10단 자동 변속기, 다운 사이징 가솔린 1.0 터보, 1.5 터보, 2.0 터보 엔진 등을 비롯해, 최첨단 하이브리드 수퍼카 NSX, 경스포츠카 S660 등의 시승도 함께 진행됐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정말 쉴 틈 없이 다양한 교육과 실습이 이어졌다.
혼다 미팅이 열린 혼다 도치기 R&D 센터는 1986년에 건립됐으며, 연구개발 지역이 48만 평방미터, 인접테스트 코스가 145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연구단지가 숲속에 자리한 듯 주변에 엄청 키가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프루빙 그라운드를 주행중인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주변에도 키큰 나무들이 빼곡히 심겨져 있었다. 역사와 철학이 어우러진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79년 설립된 도치기 성능 시험장은 모터사이클을 비롯해 자동차와 범용제품까지 동시 테스트가 가능한 곳으로, 엔진 내구성을 실험할 수 있는 하이스피드 원형 코스, 직선 코스, 통합 코스, 스페셜 코스, 비포장 노면 코스, 커브 코스, 모터크로스 경주 코스 등이 있어 모터사이클과 자동차의 다양한 성능을 테스트 할 수 있다. 또한 잔디밭 구역이 마련되어 있어 트랙터 및 잔디깎이 등의 성능 시험이 가능하다. 이 최신 성능의 시험 센터는 총 60킬로미터의 코스와 고성능 관제 타워 및 모든 시험장을 감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자랑한다. 실험에서 얻어진 데이터는 정밀하게 측정, 분석되어 전세계 모든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품 생산을 위해 모든 혼다 R&D 센터에 제공된다. 일본 이외의 지역에 위치한 혼다 R&D 센터는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중국 등 5곳에 위치해 있다.
혼다 R&D 센터의 기술 개발 핵심 과제는 재미, 안전, 환경, 자율주행이다. 달리기 성능이 뛰어난 재미있는 자동차, 사고 제로 및 부상 제로의 안전한 차, 환경에 피해가 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 그리고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자율 주행 자동차, 사실 이 4가지 핵심 과제면 거의 모든 영역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날 혼다 미팅도 이 4가지 핵심 과제에 따라 다양한 소그룹으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혼다 기술연구소 대표이사 코이치 후쿠오 사장은 기자들에게 ‘오늘의 혼다를 체감하라’고 말하면서, 연구소의 원점은 ‘도움이 되는 즐거움’으로, 기술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혼다에서는 4륜과 2륜, 그리고 범용 기기를 위한 연구가 모두 이뤄지며, 아시모에서 발전한 보행 어시스트와 마침내 올해 출항하게 될 혼다 제트 등의 연구도 잘 알려져 있다.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가운데 한국 기자팀이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자율 주행을 위한 라인 트래킹 체험이었다. 여러 개의 카메라와 레이더, 그리고 초정밀 GPS를 장착한 혼다 어코드 실험차량에 동승했는데, 연구원이 트랙의 지점 몇 곳의 좌표와 구간 속도를 입력해 두고 출발하자, 자동차는 엑셀과 브레이크, 운전대에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트랙을 2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60km/h 정도의 속도로 돌다가 다음에는 100km/h까지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트랙의 코너 반경이 매우 급한 곳도 여럿 있었는데 자동차는 정확하게 레코드 라인을 그리며 정말 부드럽게 주행을 마쳤다. 대기 장소에 도착해서 유턴하는 것까지 운전자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해 냈다.
그 동안 ACC와 스티어링 어시스트 등을 통해서 초보 단계의 자율 주행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본 바 있지만 이번 테스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매우 급한 코너를, 완벽한 라인을 타면서 자동차 혼자 주행해 내는 실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트래픽 잼 어시스트를 통한 충돌 방지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존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ACC에 저속 추종 시스템을 더해, 낮은 속도에서도 차선과 앞차를 따라서 정확하게 주행하는 기술이다. 이 외에도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과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 등을 통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테스트에서는 저속으로 앞 차를 따라가는 중에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자동차를 감지해 자동으로 거리를 유지해 주는 시스템을 체험했다. 이 기술들은 메르세데스-벤츠를 포함해 여러 브랜드에서 연구하고 있는 시스템과 일부 같거나, 일부 차이가 나지만 방향성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또한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라 정밀하게 브랜드 간의 성능 차이를 비교하기도 어렵다. 향후에는 이런 시스템들을 잘 통합해서 차량에 적용하는 기술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후에는 시승을 먼저 했다. 시승은 연구소를 감싸고 있는 약 4km 거리의 오벌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진행됐다. 차례에 따라 최첨단 하이브리드 수퍼카 NSX, 10단 자동변속기 장착 레전드, 시빅 1.0 터보를 시승하며, 그 중간에 희망자에 한해 경스포츠카 S660과 제이드 1.5 터보를 시승할 수 있도록 해 줬다. 각 모델당 시승은 프루빙 그라운드 2랩으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시빅 1.0 터보’를 시승했다. 시빅은 현대 i30, 폭스바겐 골프와 경쟁하는 해치백인데 1.0 터보 엔진으로 친환경성을 높인 모델이다. 터보로 파워를 높였다고는 하지만 강력한 가속을 즐기기는 무리였지만,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파워를 갖췄다. 물론 연비에서 크게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S660 수동 모델을 시승했다. 일본 내수용 모델인 만큼 우핸들인데다 수동변속기까지 더하니 다소 헷갈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수동 변속기라 더 재미있었다. 배기량이 660cc에 불과한 경차인 만큼 스타일이 아무리 스포츠카를 닮았다 하더라도 스포츠 주행을 즐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작고 경제적이면서 스포츠카다운 디자인과 오픈 탑을 갖췄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미 병행수입을 통해 몇 대가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데, 정식 수입된다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모델이다. 그날 오후 연구소 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코이치 후쿠오 연구소 사장은 S660의 한국 도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 시장이 강력히 원한다면 들여오지 말라는 법도 없긴 하다.
마지막 시승은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NSX였다. 어큐라 버전의 좌핸들 모델과 혼다 버전의 우핸들 모델이 준비됐는데, 기자는 순서에 따라 우핸들 버전을 시승했다. NSX는 V6 3.5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그 뒤에 전기모터와 변속기를 장착한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사용하는데, 더 나아가 앞 바퀴에도 좌우에 각각 전기모터를 장착해 총 3개의 전기모터가 장착된 하이브리드 수퍼카다. 통합 출력은 573마력에 달하고, 강력한 가속성능을 발휘하지만 평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나긋나긋하다. 가속력 못지 않게 짜릿한 부분은 코너링 실력으로 앞바퀴 좌우의 전기모터가 각각 회전속도를 제어해 강력한 코너링 성능을 만들어 낸다. 시승에서 코너링 실력까지 다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충분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던 시승이었다.
프루빙 그라운드에서의 시승을 마치고 이동해서 다음에 체험한 코스는 매우 특이한 자동차 시승이었다. 혼다는 미국 파이크스피크 힐 클라임 경주에 CR-Z 개조 전기차로 출전해서 그 부문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 차는 가솔린 엔진을 떼어내고 4개의 바퀴에 각각 전기모터를 더한 ‘4모터 EV’ 스포츠카였다. 행사장에는 실제 경주에 출전했던 경주차를 전시했고, 그 옆에서는 오전에 자율 주행을 체험했던 코스에서 테스트용으로 제작된 ‘4모터 EV’ 시승이 진행됐다.
사실 NSX를 막 시승하고 온 터라 CR-Z 전기차는 큰 기대감 없이 시승에 임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우선 4개의 전기모터가 한꺼번에 토크를 쏟아내는 만큼 가속력이 탁월했다. 더 놀라운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인 코너링 실력이었다. 코너를 돌 때 안쪽 바퀴와 바깥쪽 바퀴는 회전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가 발생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좌우 바퀴의 회전차를 조절해 주는 토크벡터링 기술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그런데 4모터 EV는 4개의 바퀴가 각각 컨트롤 되면서 코너에서 각각 최적의 스피드를 찾아내 안쪽은 느리게, 바깥쪽은 빠르게 돌도록 해 코너를 정말 깔끔하게 주행해 내는 것이다.
첫 코너에서 너무나 쉽고 빠르게 돌아나가는 모습에 당황해서 다음 코너에서는 엑셀을 더 밟아 보지만 그 역시 완벽하게 돌아나간다. 헤어핀에 가까운 코너를 80km/h 가까운 속도로 돌아나가면서도 스피드 음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 코너에서 더 용기를 내서 속도를 올려 보지만 역시 스키드 음조차 없이 코너를 돈다. 거이 멘붕 수준에 이를 즈음 짧은 시승이 끝났다.
아니 이 괴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4모터 전기 자동차의 매력적인 가능성을 온 몸으로 실감한 시승이었다.
마지막으로 어코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수소연료 전지차 뉴 FCV (이틀 뒤 동경모터쇼에서 ‘클래리티 퓨얼셀’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를 시승했다. 어코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2모터 시스템을 적용했지만 토요타와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는 시스템이다. 짧은 시승이어서 가장 중요한 효율성 등을 점검해 볼 수는 없었고, 매끄러운 주행성능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클래리트 퓨얼셀은 먼저 일본에서 시판을 시작한 토요타 미라이에 비해 디자인이 보다 무난한 정통 세단형이고, 주행가능 거리가 700km로 더 긴 점 등이 특징이다. 가속은 부드러우면서 무난했고, 주행감각은 무척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가 매력이었다.
이들 외에도 여러 엔진과 변속기에 대한 설명과 각 기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등이 중간중간 계속됐고, 클래리트 퓨얼셀 시승을 끝으로 이날 2015 혼다 미팅은 막을 내렸다.
정말 길고도 바쁜 하루였다. 하루 종일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보기도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가슴은 무척 뿌듯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운 후에 가지는 여유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에 비해 최근 혼다 브랜드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고, 과거 기술의 혼다로 불렸던 것에 비해 최근 혼다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날 혼다 미팅을 통해 지금 혼다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부 기술은 타 브랜드들에서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일부 브랜드가 앞서 가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또 어떤 기술은 혼다의 뚝심과 고집이 만들어낸 매우 혁신적인 것도 있었다. 남들과 섞여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도 있지만, 꿋꿋이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그들의 철학을 지켜나가는 혼다의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