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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그먼트의 표준에 도전하다, 재규어 XE 2.0d R-스포츠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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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역이든 “표준”은 존재한다. 가령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갈 수 있는 지가 관건이 되고, 즐겨 찾는 카페들은 으레 세계적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와 비교되곤 한다. 자동차 업계도 비슷해서 중형 세단들은 토요타 캠리를 기준으로 평가받기 마련이고, 스포츠카라면 포르쉐 911 등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약진으로 점차 격화되고 있는 D-세그먼트 컴팩트 세단 시장에서 표준이라 할 만한 차는 역시 BMW 3시리즈다. 합리적인 상품성과 모난 곳 없는 스타일링, 연비·성능의 밸런스가 훌륭한 파워트레인 등 여러 면에서 골고루 준수한 완성도를 갖췄기에 D-세그먼트 경쟁자들은 언제나 3시리즈를 타겟으로 삼기 마련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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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세그먼트에서 주목할 만한 신예가 등장했다. 영국 프리미엄 브랜드 재규어의 막내, XE다. 2009년 X-타입 단종 이후 실로 오랜만에 엔트리 라인업이 부활했다. 그런데 간만의 컴백임에도 헤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동급 경쟁자들을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물론 3시리즈의 벽은 견고하다. 기존 라이벌인 메르세데스-벤츠의 C클래스와 아우디 A4가 포진하고 있고, 렉서스 IS나 인피니티 Q50, 캐딜락 ATS같은 쟁쟁한 후발주자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XE의 놀라운 완성도는 이빨을 감추고 있던 재규어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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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가 컴팩트 세단을 만든 것이 처음은 아니다. XE라는 이름은 처음이지만, 앞서 언급한 X-타입의 후계자다. 물론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X-타입은 지금 돌아보면 재규어 라인업에서 꽤 튀는 존재였다. 포드 몬데오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해 초기에는 4륜구동 모델만 나오다가, 2002년에는 재규어 역사상 최초의 전륜구동 버전이 추가됐다. 또 재규어 최초로 에스테이트(왜건) 버전이 출시된 모델이기도 하다.

X-타입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판매됐고, 동급에서 매우 유니크한 클래식 재규어 스타일 디자인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철옹성같던 독일 컴팩트 세단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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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년 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재규어는 무서운 속도로 경쟁자들을 따라오고 있고, 차의 완성도나 스타일링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XE만 하더라도, 재규어의 최신 패밀리 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클래식한 4개의 헤드라이트를 지닌 X-타입은 비록 운치있지만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반면 XE는 누가 보더라도 호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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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이트 내에는 “J 블레이드” 형태의 LED 주간 주행등이 탑재돼 멀리서도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시승차는 2.0 디젤 R-스포츠 트림으로, 일반 모델보다 스포티한 디테일들이 눈에 띈다. 멋진 18인치 투톤 알로이 휠이나 안개등 위치의 메탈 재질 가니쉬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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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근육질인 앞모습에 비해 칼로 잘라낸 듯 수직적인 뒷모습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테일램프는 면적이 매우 넓은데, 내부에 스포츠카 F 타입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이 숨어 있다. 좀 더 얇고 예리한 스타일이어도 좋았겠다. 제동등과 방향지시등, 후진등은 LED가 아닌 벌브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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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비례는 상당히 롱노즈 숏데크로, 도약 직전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과 맹수-이를테면 재규어-를 연상시킨다. 근사한 비례는 가만히 서 있어도 속도감을 느끼게 해 주지만, 대신 캐빈룸이 좁아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극단적으로 짧은 트렁크 리드가 약간은 어색한 느낌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스탠스가 상당히 스포티하다는 데에 이견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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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모듈화된 알루미늄 바디를 엔트리 모델에 적극적으로 도입 중이다. 형제 브랜드인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높은 알루미늄 비율을 보였는데, XE는 차체의 75% 이상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이는 동급 최고수준이다. 자연히 차체강성은 높아지고 무게는 줄어든다. 공기저항계수(Cd) 또한 동급 최저 수준인 0.26에 불과해 효율을 높이는 데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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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XE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진으로 본 인테리어는 실망스러웠다. 역동적인 외관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물의 인테리어는 기대를 크게  뛰어넘는다. 플래그십인 XJ와 유사한 랩어라운드 스타일로, 도어 트림에서부터 대쉬보드 상단까지 크게 둘러싼 디자인은 요트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 밑에 단정하게 정리된 버튼들은 부산스럽지 않고 마감 품질도 좋은 편이다. 맑은 소리를 내는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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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하이그로시와 가죽 모두 재질감이 발군이다. 동급 중에서 XE와 인테리어 품질을 견줄 만한 차는 C 클래스 외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고풍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규어는 모던함에 가깝다. 로터리 식 시프트 다이얼이나 디스플레이에 집중된 여러 기능들이 그렇다. 입체감이 부각된 대쉬보드 곳곳의 디테일은 현대조각같은 느낌도 준다. 다만 도어 트림의 버튼 배치는 조작하기가 다소 불편하다. 버튼이 2단으로 배치돼있는데, 손이 편하게 닿는 위치가 아니다. 버튼식 시동은 있지만 문을 여닫을 땐 리모콘 키를 사용해야 하는 점도 옥에 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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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터널이 높고 넓은 편이라 운전석이 아니라 콕핏에 앉은 것처럼 꽉 조여주는 느낌을 준다. 나쁘게 말하면 좀 답답할 수도 있다. R-스포츠 모델에는 스포츠 버킷 시트가 기본 장착되는데,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볼스터를 조절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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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가 좁은 편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뒷좌석도 넉넉치는 않다. 키 180cm인 기자가 뒤에 앉으면 헤드룸도, 레그룸도 다소 부족하다. 체구가 작거나 여성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온 가족을 위한 패밀리 카로 쓰기에는 확실히 좁겠다. 수납 공간이 적은 것도 옥에 티. 다만 짧은 트렁크 리드에 비해 트렁크 적재용량은 455L로 충분한 편이다. 개구부가 좁아 큰 짐을 넣을 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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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달리게 생긴 XE가 정말로 잘 달려줄 지, 쭉 궁금했던 부분이다. 선대 모델인 X-타입의 경우 컴팩트한 바디에도 불구하고 승차감은 대형차처럼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오랫동안 숙성된 새로운 막내의 달리기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국내에는 2.0 디젤, 2.0 가솔린 터보, 그리고 XE S를 위한 3.0 V6 가솔린 슈퍼차저 등 3가지 엔진 라인업이 제공된다. F 타입과 동일한 3.0 슈퍼차저 엔진이 가장 탐나지만, 실질적인 주력 모델은 2.0 디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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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디젤의 심장은 화제의 주역, 인제니움 엔진이다. 차세대 모듈러 엔진인 인제니움 엔진은 향후 다양한 디젤 라인업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높다. XE에 최초로 탑재되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레인지로버 이보크 등에 순차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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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에 따라 2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국내에는 상위 버전이 우선 투입됐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43.9kg.m에 달한다. 최근 부분변경된 BMW 320d가 190마력에 40.8kg.m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출력은 조금 낮지만 토크가 더 높다. 여기에 ZF 8속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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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걸면 공회전 시의 소음·진동이 심한 편이다. 하지만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솔린만큼 조용하고 회전질감도 부드럽다. 일상 주행 중에는 정차 시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이 작동하니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다. 시야나 시트 포지션도 무난하고, 재규어 최초로 적용된 EPAS(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의 이질감도 없다. 다만 정체 구간에서 간혹 심한 변속 충격이 뒷통수를 때리는 경우가 있었다. ZF 9속 변속기가 적용된 이보크나 디스커버리 스포츠에서도 종종 겪은 충격이다. 변속 충격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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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벗어나 고속화도로에 올라섰다. 제법 탄탄한 서스펜션 느낌이 기분좋다. 탄탄하되 불쾌하게 튀지는 않는다. 속도를 붙여도 불안정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초고속 영역에 들어서자 요철이나 굴곡진 도로에서 다소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다. 단단하지만 댐핑 스트로크가 긴 탓일까? 독일차처럼 속도가 오를수록 노면에 달라붙는 듯한 안정감은 부족하다. 고속주행의 첫인상은 만족보다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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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향을 바꿔 와인딩 로드에 오르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 재규어는 평원에 사는 동물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길에 들어서자 자신의 무대를 찾았다는 듯 예리하게 코너를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타이어가 앞 225/45R18, 뒤 245/40R18로 약간 언더스티어 성향을 띠는 세팅임에도, 코너 안쪽을 깊숙히 파고 드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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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완성도 높은 서스펜션도 일조한다. 앞 더블위시본, 뒤 인테그럴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은 수직 방향의 충격 뿐 아니라 수평 방향의 충격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횡방향으로 힘을 많이 받는 코너에서 XE의 하체가 빛을 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군다나 댐핑 스트로크가 충분해 노면이 좋지 않아도 접지력을 잘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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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엔진은 무겁기 때문에 코너링 성능 저하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XE는 그런 제약들을 비웃듯 놀라운 코너링을 보여준다. 4L급 가솔린 엔진에 육박하는 높은 토크 덕분에 업힐에서도 힘이 부치지 않는다. 드라이브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꾸자 운전자가 변속을 지시할 때까지 강제변속하지 않고 기다리는 점도 기특하다.

행여 자세가 흐트러져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면 전자장치가 최소한으로 개입해 운전을 방해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해 준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외치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재미있고 가솔린 못지 않게 경쾌하다. 코너를 도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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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연비는 복합 14.5km/L, 도심 12.6km/L, 고속 17.6km/L이다. 실주행연비는 이보다 훨씬 뛰어나 도심에서 14km/L 정도를 유지했고, 80km/h 정속주행 시 30km/L, 100km/L 정속주행 시 25km/L 까지 높아졌다. 특히 고속연비가 뛰어나 장거리 운행이 많다면 메리트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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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표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BMW 3시리즈가 세그먼트의 표준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몇 가지를 추리자면 무난하면서도 젊은 디자인, 준수한 달리기 성능, 그리고 충분한 럭셔리함 정도가 있겠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한 가지에 치중하다가 다른 것을 놓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강호들과 차별화를 도모하는 후발주자들의 경우 강점을 살리려다보니 다른 부분을 희생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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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재규어 XE는 모든 면에서 매력적이면서도 특별히 모난 구석을 찾기가 어렵다. 작은 단점들이 있지만, 다른 장점들이 그것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주행질감은 경쾌하고 예리하며, 마감 품질은 동급 최고 수준으로 고급스럽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끄는 디자인은 차를 세우고 내린 뒤에도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미 너무 흔해진 독일 경쟁자들에 비해 XE의 존재감은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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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첨단 설계와 차세대 기술은 차의 내적 완성도는 높여 주지만 일상의 주행에서 느껴지는 요소들은 아니다. 반면 피부에 와 닿는 부분-디자인, 주행성능, 마감품질-들이야말로 운전자의 만족도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부분이다. XE는 내적인 완성도 뿐 아니라 외적인 완성도까지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D-세그먼트 컴팩트 세단의 표준을 한 계단 상향시켰다고 할 만하다.DSC_1654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의 행보는 매우 공격적이다. 3년 간 1,500억 원을 서비스 인프라 강화에 투자하고 있으며, 글로벌 신차를 발빠르게 국내 시장에 선보이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XE를 연달아 출시하며 브랜드의 문을 크게 넓혔다. 엔트리 모델은 브랜드의 성장동력이 되기 때문에, XE의 성공에 거는 기대가 크다. 사흘 간 만나본 재규어 XE는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괄목할 완성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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