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경량 스포츠카라고 하면 로터스 정도를 떠올리지만, 영국에 가면 훨씬 더 극단적인 하드코어 경량 스포츠카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전설적인 로터스 세븐의 설계를 인수해 초경량 자동차를 만드는 케이터햄이다. 영국에는 케이터햄과 비슷한 형태의 경량 키트카를 생산하는 업체가 여럿 있지만, 그 중 원조라 할 만한 것은 단연 케이터햄이다.
그런 케이터햄이 간만에 신 모델을 선보였다. 정확히는 전설적인 구형 모델의 부활이다. 클래식 스포츠카들을 기념하는 2015 굿우드 리바이벌 행사에서 공개된 한정판, ”슈퍼라이트 트웬티(Superlight Twenty)”는 이름 그대로 엄청나게 가벼울 뿐 아니라, 오직 20대만 생산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케이터햄 스포츠카는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엔진과 차체 설계 등이 각 모델의 개발 컨셉에 따라 상이하다. 그 중에서도 1996년에 처음 출시된 슈퍼라이트 시리즈는 말 그대로 초경량에 초점을 맞춰 많은 매니아들을 거느린 모델이다. 원조 슈퍼라이트는 2004년에 단종됐지만, 그 후예인 R400, R500 등은 오늘날 케이터햄의 주력 모델로 자리잡았다. 가장 강력한 620R의 경우 무려 310마력을 발휘, 0-60mph(약 96km/h) 가속을 단 2.9초만에 끝마치는 원초적 스포츠카다.
케이터햄이 이번에 슈퍼라이트 트웬티를 내놓은 것은 이러한 슈퍼라이트 라인업의 출시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여느 한정판 모델처럼 압도적인 고성능 엔진이 달려있는 것은 아니지만, 케이터햄과 세븐 스포츠카의 본질인 경량화에 집중했다.
초경량에 대한 집착은 외관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느 세븐과 흡사한 모습이지만, 슈퍼라이트 트웬티는 어떤 외부 도색도 실시하지 않았다. 도료의 무게조차 덜어내기 위함이다. 때문에 외관은 순수한 알루미늄 강판으로 만들어졌다. 그 밖에 노즈나 리어 윙과 같은 부분은 카본 파이버 강화 플라스틱(CFRP)로 만들어졌고, 전면 윈드실드의 무게조차 덜어내기 위해 공기 흐름을 바꿔주는 조그만한 에어로 스크린을 달았을 뿐이다. 그 결과 익스테리어에서만 6kg의 경량화를 이뤄냈다.
실내 또한 극도로 절제된 스타일로, 플래그십 모델인 620R에만 적용되는 카본 인테리어 패널과 카본 스포츠 시트가 적용된다. 그 밖에 한정판을 위한 전용 게이지와 “Twenty”라고 적인 전용 기어노브, 한정 수량이 적힌 넘버 플레이트가 장착돼 슈퍼라이트 트웬티만의 개성을 살려준다. 무게가 느는 것을 막기 위해 옵션은 오직 도색과 우천 시에 대비한 장비, 히터만 선택이 가능하다.
수 kg의 경량화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차의 중량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슈퍼라이트 트웬티의 중량은 498kg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경차의 공차중량이 1,000kg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가벼운 것이다. 슈퍼라이트 트웬티는 이 가벼운 차체에 137마력을 발휘하는 1.6L 포드 시그마 엔진을 탑재한다. 여기에 6속 수동 변속기가 맞물리고, 경량 플라이휠과 LSD, 스포츠 서스펜션 팩이 기본 장착된다.
가벼운 차체에 경쾌한 엔진이 맞물리니 톤당 마력은 275마력에 달하며, 이는 BMW M4(약 279마력)와 비슷한 수치이다. 실제로 슈퍼라이트 트웬티는 0-60mph 가속을 4.9초만에 끝내며, 최고속도는 122mph(약 196km/h)에 달한다. 실제 주행에서는 차와 운전자가 일체화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제원 상 성능보다 훨씬 원초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케이터햄의 CEO인 그레이엄 맥도널드는 “슈퍼라이트는 20년 전 대성공을 거둔 모델이고, 우리가 이후 모델들을 개발하는 데에 큰 영감을 주었다”며 “슈퍼라이트는 운전자들에게 자동차의 가장 순수한 운전 즐거움을 선사해 왔고, 우리가 그 전설적인 모델을 20년 만에 부활시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직 20대만 생산되는 슈퍼라이트 트웬티는 미조립 상태의 키트카 또는 조립된 완성차 형태로 구입이 가능하다. 키트카의 가격은 26,995파운드(한화 약 4,870만 원)이며, 완성차는 29,995파운드(한화 약 5,410만 원)에 판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