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랜저의 독주에 의미 있는 견제 세력으로 부상한 쉐보레 임팔라는 준대형차 고객이 호감을 가질만한 큰 차체와 중후하면서도 스포티한 디자인, 넓은 실내공간, 그랜저에 견줄만한 충분한 편의, 안전 장비를 갖췄고, 미국보다 더 싼 가격표를 달았다. 이로써 수입차이긴 하지만 수입차의 핸디캡이 거의 없어진 임팔라의 그랜저를 향한 선전포고에서 승리를 향한 기대감과 결연한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관심 있는 경쟁 모델 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말릴 일이 아니고, 장려할 만한 일이다.
국내 준대형차 시장에 아주 오랜만에 대단히 흥미로운 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아니 이제 막 싸움이 시작됐다. 그 동안 알페온으로 시장에서 제대로 잽도 한번 못 날려보던 쉐보레가 새로운 선수를 기용해 출전시킨 것이다. 지난 11일 국내 출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바로 다음날 전격적으로 시승회까지 치른 쉐보레 임팔라가 그 주인공이다.
임팔라는 사실 국내에선 생소한 모델이다. 동물의 왕국을 열심히 본 시청자라면 사슴을 닮은 이 동물의 이름은 상당히 익숙하겠지만, 자동차 임팔라는 그 오랜 역사에 비해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된 모델이다. 쉐보레 임팔라는 1958년 등장해 현재는 10세대에 이른, 나이가 58세나 된 장수 모델로 미국 준대형 모델의 표준이자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을 수입하는 형태로 이번에 국내에 소개됐다.
그런데 단순히 미국에서 잘 팔리는 모델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품성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국내 리그에 출전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수 공항을 출발해 경남 남해 부근에서 임팔라를 시승했다. 고속도로와 남해안의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가 적절히 조화된, 그리고 남해의 절경이 어우러진 멋진 구간에서 이뤄진 시승에서 임팔라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임팔라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질 부분은 차체 크기와 디자인이다. 임팔라는 차체 사이즈가 5,110 x 1,855 x 1,495mm에 휠베이스 2,835mm로, 그랜저의 4,920 x 1,860 x 1,470mm에 휠베이스 2,845mm와 비교하면, 휠베이스가 그랜저보다 10mm 짧지만, 길이는 무려 190mm가 더 길다. 임팔라의 길이는 제네시스보다도 길고, 에쿠스의 5,160mm에 근접할 정도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거대해 보이는 느낌은 아니다. 상당히 스포티한 디자인 때문이다. 보닛에는 두 개의 깊은 주름도 팠고,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는 예리함이 돋보인다. 덕분에 앞모습에서는 스포츠카 까마로의 모습도 살짝 보인다.
옆모습을 보면 차체가 무척 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앞 펜더에서 뒤 도어핸들까지 이어지는 예리한 캐릭터 라인과 함께, 뒤 펜더를 감싸듯 치켜 올라가는 라인이 그냥 심심한 미국 대형차 느낌이 아닌 세련된 스포츠 세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앞 뒤 오버행이 긴 모습에서 휠베이스 대비 무척이나 긴 차체 길이를 실감할 수 있다.
반면 뒷모습은 다소 의아할 정도로 심심하다. 화려했던 앞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시승 중 앞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금새 시선을 다른 차로 옮겨 버리고 싶을 정도다. 전혀 임팔라 만의 특징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뭐, 어쨌든 전반적으로 임팔라의 외형은 존재감 있는 사이즈와 중후하면서도 역동적이고, 과감한 앞모습에서 그 동안 그랜저, K7, 아슬란, SM7 등에서 디자인적 차별점, 혹은 개성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임팔라의 외관 색상이 검정, 은색, 흰색, 이렇게 3가지뿐이라는 점이다. 물론 앞으로 다양한 색상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채색 단 3가지라니……
실내도 공간과 디자인에서 나름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차체 길이 대비 짧은, 그리고 그랜저보다 짧은 휠베이스를 생각하면 실내가 왠지 좁을 것 같지만 실제 레그룸과 헤드룸 수치에서 임팔라가 그랜저보다 더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고 쉐보레 측은 주장한다. 실제 차에 타 봐도 공간에서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실내 디자인도 그 동안 봐 왔던 쉐보레, 혹은 미국차와는 확연히 달라진 세련된 라인이 시선을 끈다. 다만 데시보드의 플라스틱 질감과 패턴 등은 급이 좀 떨어져 보이지만 그 외엔 비교적 무난한 수준이다.
시승차는 데시보드 상단을 갈색으로 좀 더 화려하게 감싼 모하비 투톤 스타일인데, 갈색 부분이 가죽이 아니고, 합성수지이지만 스티치를 넣어서 시각적으로는 꽤 고급스럽게 꾸몄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부분은 버튼을 누르면 위로 스스륵 전동식으로 열리는 시크릿 큐브가 적용됐다. 전동식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확실히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는 애플 카플레이가 적용된 마이링크가 주목을 끈다. 아이폰을 케이블로 연결하기만 하면 모니터에 사용가능한 앱들이 표시되는데, 전화나 메시지, 음악 등을 모니터 화면을 터치하는 것으로 바로 실행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 동안 쉐보레가 편의 장비면에서는 상당한 열세였는데, 이번 임팔라는 그랜저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는 수준의 편의장비를 대거 확충했다. 하이패스와 냉방시트, 뒷좌석 열선시트를 갖췄고, 세이프티 패키지를 선택하면,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이 더해진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스티어링 휠 좌측에 위치한 리모컨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리고 11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보스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수준 높은 음악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도 나름 의미 있는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뒷좌석 공간도 넉넉할 뿐 아니라, 전용 리모컨 장치가 마련됐고, 220V 인버터를 장착해 전화나 노트북 충전과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안전장비 면에서도 동급 최다인 10개의 에어백을 전 모델에 기본 적용했는데, 이에는 운전석과 동반석 무릎 에어백이 포함된다. 또한, 전방충돌 경고 시스템, 후측방 경고 시스템,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차선변경 경고 시스템,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과 같은 안전 사양들도 전 모델에 기본 제공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에서 최고등급의 안전성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동안 현대, 기아차의 내수 차 안전도에 의혹(?)을 제기해 왔던 이들이라면 분명 주목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임팔라는 2.5리터 엔진을 얹은 LT와 LTZ, 3.6리터 엔진을 얹은 LTZ 이렇게 3가지 트림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승회에는 모두 3.6 LTZ 모델이 등장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주력으로 판매될 모델은 2.5 모델이겠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강력한 성능의 임팔라 3.6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쉐보레의 포석이다.
V6 3.6리터 엔진은 최고출력 309마력과, 최대토크 36.5kg.m를 발휘한다. 그랜저 3.0은 270마력, 아슬란 3.3은 294마력, SM7 3.5가 258마력이므로, 최대 배기량과 더불어 동급 최강의 출력을 갖췄다. 다만 차가 큰 만큼 공차 중량에서 그랜저보다 약 140kg 정도 무거운 점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변속기는 하이드라매틱 6단 자동이고, 복합연비는 9.2km/L, 고속 12.0km/L, 도심 7.7 km/L의 연비를 기록한다.
덩치가 있음에도 309마력의 파워는 상당히 경쾌한 가속을 선사한다. 행사장에서 쉐보레가 밝힌 0~100km/h 가속 시간은 6.8초인데, 실측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다만 말 그대로 덩치가 있는 만큼 체감 가속력은 이에 살짝 뒤진다. 변속은 6,500rpm이 넘어서 이뤄지는데 1단에서 70, 2단에서 110km/h를 돌파한다. 1, 2단 기어비가 무척 길다.
그런데 100km/h 정도로 정속주행 하다 급가속을 하기 위해 엑셀을 끝까지 밟았을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급가속이 안 된다. 보통은 기어가 3단 정도까지 내려간 후 강하게 가속하기 마련인데, 임팔라는 5단으로 기어가 내려간 듯한 후에 더 이상 기어가 내려가지 않고 부드러운 가속만 진행될 뿐이다. 어쩌면 5단으로 내려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기어 프로그램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저속에서는 킥다운 하면 급가속이 되는데, 어느 정도 이상 속도가 올라간 후에는 급가속이 전혀 되지 않는다. 부드럽게 가속이 되긴 하지만 추월을 시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수동모드를 사용하기 편한 것도 아니다. 시프트 패들은 없고, 수동모드를 사용하려면 기어레버를 D 아래 M으로 옮긴 후에 레버 윗면의 ‘+’, ‘-‘ 버튼을 눌러서 변속해 줘야 한다. 불편할 뿐 아니라 이런 장비로는 정교하게 와인딩을 달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물론 쭉 뻗은 고속도로를 주로 달리게 되는 미국차의 특성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킥다운 조차 안 되는 세팅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내가 탄 차만 그런 건가?)
급가속에 대한 부분만 제외하면 주행에 대한 부분은 무척 만족스럽다. 특히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다듬어진 하체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높다. 대형 세단인 만큼 심하게 단단하진 않다. 기본적인 안락함을 확보한 상태에서 타고난 안정감이 빛을 발한다.
요즘은 현대차도 하체의 안정감이 무척 좋아졌다. 아슬란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랜저나 제네시스 모두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현대차의 안정감은 어딘가 인공 감미료가 첨가된 맛이 난다면, 쉐보레의 안정감은 자연의 맛을 그대로 잘 살려낸 맛 같다. 그 맛의 깊이와 풍미에서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부드럽게 와인딩을 달릴 때뿐 아니라 일상 주행에서도 몸으로 전달되는 안정감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크다.
반면 고속에서는 하체는 분명 안정적인데도 스티어링이 기대만큼 무거워지지 않고, 유격도 꽤 있는 편이어서 차선변경 등에서 안정감이 반감되는 모습이다. 고속에서의 스티어링 감각을 조율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 처음 상륙한 임팔라는 기대 이상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준대형 세단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어필한 만한 매력을 많이 갖췄다. 물론 현대 그랜저나 아슬란과 비교할 때 한국 고객의 성향에 맞는 세련됨과 정교함 면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여전히 미국적인 색체가 많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미국차들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달라진 부분이 분명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하는 방향인 것도 확실하다.
전반적으로 이번 임팔라 3.6 모델은 강력한 파워를 갖추고 있지만 편안하게 주행하도록 세팅된 차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흥정과 싸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에 상륙한 임팔라가 절대적인 챔피언 그랜저와 제대로 한 번 붙어 봤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싱겁게 끝나 버리는 싸움이 아니라 제대로 좀 치고 받는, 볼 만한 싸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해 진다.
지금은 수입차인 임팔라가 국내 시장에서 판매에 성공할 경우 국내 생산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꼭, 그리고 속히 그 날이 오기를 또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