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국내 수입차 시장이지만, 비단 성장하고 있는 것이 독일차 뿐은 아니다. 그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던 프랑스 차들도 지난 해 푸조 2008 출시 이래로 눈에 띄게 판매가 늘었다. 지난 7월 푸조는 610대, 시트로엥은 69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푸조 315대, 시트로엥 41대) 대비 큰 폭의 판매 신장을 이뤘다.
물론 수입차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기도 했지만, 프랑스 차들이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그 동안 푸조와 시트로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난해한 디자인과 특유의 고집스러운 엔지니어링으로 인해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이 한 세대 진화하면서 거부감도 줄어들고, 뛰어난 효율과 경쟁모델 대비 우수한 상품성이 조금씩 소비자들에게 어필되고 있는 것이다.
시트로엥의 막내 해치백, DS3 또한 다시금 주목받는 모델 중 하나다. 안팎으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뉴 라이트 시그니처’라는 화려한 수사와 함께 LED 라이트로 화장을 고쳤고, 실내도 조금 손봤다. 작은 디테일 업이지만 상품성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시트로엥 브랜드를 통해 DS3를 선보이고 있지만, PSA는 시트로엥과 DS 브랜드를 구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룹 내에서 DS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워내겠다는 야심이다. DS가 독립 브랜드가 될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프랑스 대통령 의전차로 DS5가 사용될 정도니, 유럽이나 신흥시장인 중국에서는 의미 있는 분리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한국에서 시트로엥은 푸조 브랜드의 빈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인승 미니밴인 C4 피카소와 그랜드 피카소, ‘고급진’ 프랑스 차에 해당하는 DS 라인업이 그렇다. DS3는 B 세그먼트 해치백으로 푸조 208과 뼈대를 공유하지만 훨씬 개성있는 스타일로 차별화된다.
일단 눈매가 달라졌다. 앞서 PSA는 소형 모델에도 적극적으로 LED 라이트를 도입해 왔다. DS3는 국내에 출시된 푸조와 시트로엥 중 가장 작은 모델에 LED가 적용된 모델이다. 3개의 LED와 1개의 제논 모듈로 구성된 라이트는 기존보다 고급스럽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프렌치 감성이 넘친다. LED 라이트는 멋질 뿐 아니라 수명도 더 길고, 낮은 전력 소모량으로 차량의 효율도 높여준다. 뉴 라이트 시그니처 모델에는 테일램프에도 LED가 적용됐다.
그 밖의 익스테리어에는 큰 변화가 없다. 최근 기교를 줄이고 단정하게 바뀌고 있는 푸조에 비하면 여전히 시트로엥은 화려하다. 곳곳의 디테일에 멋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강렬한 존재감이 마음에 들지만, 튀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DS3는 모두를 위한 차가 아니다. 길 위에서 시선을 끄는 아이코닉 디자인은 명백한 DS3의 강점이다.
실내에서도 곳곳에서 변화가 이뤄졌는데, 가령 시트는 가죽과 패브릭을 혼합한 하프 레더 타입으로 바뀌었다. 앉는 부분에는 패브릭이, 몸을 홀딩해주는 볼스터 부분에는 가죽이 적용돼 푹신하면서도 코너에서는 몸을 잘 지지해준다. 다만 시트 포지션은 조금 어색하다. 시트 높이가 다소 애매하고, 키 180cm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 스티어링 휠 텔레스코픽 작동 범위가 짧고 변속 레버도 멀다. 아무래도 아담한 체구의 운전자에게 더 어울린다.
넓은 앞유리와 창문 덕에 작은 체구에 비해 답답함이 적다. 호쾌하게 뻗은 대쉬보드와 굵직한 디자인의 버튼들도 개방감을 키워주는 데에 일조한다. 그러나 버튼의 조작감이 프리미엄을 논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새로 바뀌었는데, 한글화가 이뤄진 점이 눈에 띈다. 아틀란 내비게이션도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면서 편의성이 좋아졌다. 복잡한 블루투스 연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휴대전화에서 바로 블루투스 신호를 잡으면 연결되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인터페이스 조작이 직관적이지 못한 점은 흠이다.
현재 국내 시판 중인 DS3에는 한 종류의 엔진만 탑재된다. PSA의 여러 소형 라인업에 두루 사용되고 있는 1.6L 직렬 4기통 HDi 엔진은 효율을 강조한 세팅이다. 최고출력은 92마력, 최대토크는 23.5kg.m이며, 여기에 ETG(Efficient Tronic Gearbox)라 불리는 반자동 변속기가 맞물린다. 이러한 제원 상의 수치는 역동성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절대적으로 빠르지는 않더라도 DS3는 충분히 재미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엔진의 출력은 높지 않지만 경쾌한 가속감이 일품이다. 2.4L급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에 맞먹는 높은 토크 덕분이다. 직결성이 뛰어난 ETG 변속기는 이 필요충분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자릿 수 출력에도 불구하고 가속은 100km/h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그 뒤에도 힘이 남는다. 오르막에서도 답답함이 없다. 여기에 형제 브랜드인 푸조보다 탄탄하고 스트로크가 짧은 서스펜션, 여유 있지만 묵직한 스티어링 감각이 날개를 달아준다. 4m가 되지 않는 짧은 차체는 도시에서든, 교외에서든 기민하게 움직인다.
ETG 변속기는 푸조의 MCP 변속기와 대동소이한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동화된 수동 변속기에 해당한다. 클러치 조작을 대신 해 주는 ETG는 여전히 특유의 울컥임이 낯설지만, 수동 변속기보다도 효율이 좋다. 울컥임 역시 변속 타이밍에 액셀러레이터에서 살짝 발을 떼 주면 한결 줄어든다. 수동 모드로 변속 레버나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변속하면 충분히 재미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컴팩트한 차체에 경쾌한 디젤 심장과 쫀득한 하체가 어울리니 와인딩 로드에서도 제법 재미있다. 출력이 낮지만 브레이크 용량과 미쉐린 타이어 그립에도 여유가 있어 불안함 없이 몰아붙일 수 있다. 사실 별 기대 없이 달려봤는데, 예상을 뛰어넘게 즐거웠다.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 연비는 복합 19.0km/L나 되고, 실연비 또한 가뿐히 공인연비를 상회했다. 연비를 의식하지 않고 다녔음에도 시내 연비는 16km/L에 달했고, 고속도로에서는 25km/L도 내다 봤다. 복합 연비는 20.5km/L을 기록했다.
화장을 고친 DS3 뉴 라이트 시그니처는 도도한 프랑스 미녀와도 같다. 모든 이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자신만의 뚜렷한 스타일을 고집한다. 그러나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
물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은 DS 브랜드가 프리미엄화를 공언하고 있는 만큼 마감 품질을 개선하고 버튼류의 형상과 조작감을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 또 ETG의 우수한 효율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은 만큼, 차후에는 앞서 푸조 308에 도입된 토크컨버터 방식의 변속기를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도 DS3는 꽤나 매력있는 선택지다. DS3는 미니보다 존재감 강하고, 폴로 못지 않게 실속 있다. 혼자 또는 두 사람이 타기에 충분한 공간과 성능을 지니고 있다. 나를 보다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소비자라면 과감히 DS3를 선택해보기를 추천한다. 남다른 선택은 도로 위에서 만인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