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서도 내가 꿈꾸던 스포츠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었다.” 창업자 페리 포르쉐가 남긴 말처럼, 포르쉐는 지난 수십 년간 모든 매니아들이 꿈꿔 온 스포츠카를 현실로 가져 온 회사다. 여타 스포츠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찔한 주행 감성과 퍼포먼스, 사운드를 동경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2종의 SUV와 세단까지 만드는 포르쉐지만, 여전히 포르쉐의 본질은 ‘스피드’다. 그리고 스피드에 대한 갈망이 가장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모델이 바로 포르쉐의 허리와도 같은 911이다. 1963년 탄생한 이래로 911은 포르쉐 그 자체나 다름 없었고, 많은 이들을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주역이다.
이번에 시승한 911 타르가 4 GTS는 911의 수많은 가지치기 모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모델이다. 지난 해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돌아온 911 타르가의 아이코닉 디자인과 904 카레라 GTS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공도 최강의 퍼포먼스를 계승하는 GTS 엔진의 조합은 기존 911 타르가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포르쉐의 완벽주의적 처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최신 모델인 7세대(991) 타르가는 과거 1~3세대 911 타르가의 디자인에 대한 오마주다. 전복 사고에 취약한 카브리올레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B필러를 살려 두고, 그 위에 탈착식 탑을 장착한 것이 최초의 타르가 탑이다. 시칠리아에서 개최된 ‘타르가 플로리오’ 경주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포르쉐가 붙인 ‘타르가’라는 명칭은 이제 B필러가 있는 탈착식 오픈탑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상징적인 은색 B필러와 버블 형태의 뒷유리는 2, 3세대 911 타르가에서도 계속 유지됐다. 그러다가 4세대(993) 타르가 부터는 통유리로 된 루프가 전동식으로 슬라이드 되는, 오늘날의 파노라마 썬루프와 흡사한 형태로 바뀌었고, 6세대(997)까지 그런 형태가 유지됐다. 과거의 상징적인 B필러가 되살아난 것은 지난 해의 일이다.
한편 GTS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면 1964년 등장한 904 ‘카레라 GTS’가 나온다. 904는 원래 F1에서 GT카 레이스로 자리를 옮기며 포르쉐가 선보인 레이스카의 이름이다. 당시 FIA GT 규정에 따르면 경기용 차는 공도 주행용으로 일정 수량이 양산돼야 한다는 호몰로게이션 규정이 있었으며, 이를 준수하기 위해 공도용으로 세팅된 차가 바로 카레라 GTS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Gran Turismo Sport)의 약자인 GTS는, 오늘날까지도 포르쉐 라인업 중 공도 주행을 염두에 두되 가장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라인업의 총칭이다.
911 타르가에는 그간 GTS 버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올해 911 타르가 4 GTS가 사상 최초로 선보인 것은 911 타르가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포르쉐의 상징적인 타르가와 전설적인 GTS의 만남이 반세기만에 성사된 것이다.
외관 상으로는 타르가 특유의 은빛 B필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뒷편의 곡면 유리 역시 존재감이 뚜렷하다. 911 라인업 중 타르가보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모델은 없을 것이다. 개성있는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911 특유의 라인은 그대로다. 카브리올레보다 뛰어난 차체 강성도 타르가 바디의 장점 중 하나.
이미 타르가의 유려한 디자인은 명성이 자자한데, 여기에 GTS의 터치가 더해진다. 프런트에는 스포츠 디자인을 채택, 보다 과격한 범퍼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헤드라이트는 스모키 바이제논 타입이 적용되고, 포르쉐 다이내믹 라이팅 시스템(PDLS) 기능도 탑재된다. 도어 하단에는 GTS 로고가 새겨져 있고, 롤오버 프로텍션 바의 targa 로고도 유광 블랙 컬러로 처리됐다. 리어 에어 인렛 스크린과 모델 로고의 유광 트림에도 블랙 컬러가 더해졌고, 심지어 엔드 머플러 마저 검정색이다. 시승차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20인치 센트럴 락 휠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GTS의 특권이다.
특히 911 타르가 4 GTS의 압권은 뒷모습이다. 포르쉐는 4륜 구동 모델의 뒤 윤거를 22mm 넓게 만들며, 타이어도 10mm 더 두꺼운 것을 장착한다. 이 ‘와이드 휀더’ 덕분에 풍만한 뒷태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는데, 심지어 거대한 후면 유리가 통째로 열리며 19초 만에 타르가 탑을 수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중을 압도한다. 비록 움직이면서 탑을 여닫을 수는 없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나 섹시한데.
실내 역시 911의 그것에 기초하되, GTS만의 레이싱 감성이 살아 숨쉰다. 모든 실내가 레드 스티치와 알칸타라로 꼼꼼하게 덮여 있고, 카본 트림이 적용돼 앞서 시승했던 911 타르가 4S보다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붉은 색 GTS 로고가 박힌 이 운전석에 앉아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시트는 세미 버킷 타입이지만 전동식으로 볼스터를 조절할 수 있어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감이 없다. 안전벨트에도 붉은 색 액센트가 들어가 있다. 사소한 차이지만 일반 911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911 타르가 4 GTS의 경우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가 기본 탑재되면서 스포츠 플러스 모드와 런치 컨트롤 기능, PASM(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다이내믹 엔진 마운트, 포르쉐 트랙 프리시전 앱 기능 등이 함께 내장된다. 대쉬보드 상단에 자리잡은 근사한 크로노도 포함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크로노에는 랩타임 측정 기능과 시계 기능이 모두 포함돼 있다.
911만의 5륜형 클러스터에서도 GTS의 색이 드러난다. 클러스터 중앙의 타코미터가 붉은 색으로 처리돼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준다. 진짜 하드코어한 달리기를 떠올리게 하는 911 GT3에 비하면 아직은 레이스카보다는 고성능 GT카의 인상이 강하지만, 안팎의 붉은 색과 검은 색 터치는 질주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911 타르가 4 GTS의 3.8L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그 레이아웃은 같지만 많은 부분을 손봤다. 흡기계통의 많은 부분이 개선됐고, 그 결과 최고출력은 타르가 4S보다 30마력 높은 430마력을 내며 최대토크는 44.9kg.m으로 동일하며, PDK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최고속도는 301km/h, 0-100km/h 가속은 4.3초면 마무리된다. 타르가 4S보다 0.1초 빠른 것이다.
사실 포르쉐에 타면 이런 수치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위치한 키홀에 911을 닮은 키를 꽂아 넣고 돌리는 순간, ‘포르쉐 노트’라 불리는 특유의 칼칼한 배기음이 대기를 울린다. 다른 엔진들은 따라올 수 없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만의 사운드다. 타르가 4 GTS에는 스포츠 배기 시스템까지 장착돼 그 감동이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다. 디젤 엔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톱 앤 스타트 기능과 탄력주행 시 클러치를 떼는 코스팅 모드가 탑재돼 공인연비는 7.9km/L에 달한다. 실연비와의 괴리도 심하지 않아 시내에서도 6km/L 이상이 꾸준히 나와주고, 고속 순항에서는 10km/L도 쉽게 넘길 수 있다.
묵직한 붉은 바디는 당장이라도 도로를 집어삼킬 것만 같지만, 일상 주행에서의 거동은 다분히 침착하다. 스포츠모드가 아니라면 액셀러레이터는 묵직하고 스티어링 휠은 가볍다. 모든 움직임에 여유가 있다. 마치 스포츠카가 아니라 평범한 세단을 모는 것 같다. 서스펜션조차 외관의 압도적 카리스마에 비하면 탄탄하지만 통통 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노멀 모드에서의 얘기다. 드라이브 모드를 바꾸면 순식간에 타르가 4 GTS는 카랑카랑한 비명을 지르며 내달린다. 가속 시 뒷차축에 무게가 실리는 리어 엔진 구조와 트랙션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4륜 구동 시스템 덕분에 순간적인 가속에도 휠 스핀 없이 430마력이 온전히 네 바퀴로 전달된다. 구동력은 앞바퀴에 최대 50%까지 배분된다.
공교롭게도 시승 기간 동안 날씨가 궂었다. 부슬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는데, 타르가 탑은 달리는 동안 실내로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정수리를 쓸고 지나간 바람이 롤오버 프로텍션 바에 부딪치면서 와류를 만들고, 가끔씩 내장재의 잡음이 들려왔지만, 빗속에서 바람과 포르쉐의 고동을 느끼며 달리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탁 트인 길에 들어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PDK가 번개처럼 변속하며 포르쉐 노트가 축축한 대기를 울렸다. 순식간에 속도는 100km/h를 넘어선다. 속도를 높여 갈 수록 노면을 움켜쥔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가변식 스포츠 배기 시스템의 사운드는 으르렁거림에서 포효로 바뀐다. 매 순간이 짜릿하다. 터보가 난무하는 요즘 업계에서 자연흡기, 그것도 수평대향 6기통 심장의 유니크한 회전질감은 울림이 크다.
와인딩 로드에 들어서면 리어 엔진 특유의 거동이 짜릿하다. 코너를 돌아 나갈 때마다 조금만 가속 페달을 깊이 밟으면 뒷바퀴가 미끄러진다. 하지만 순식간에 앞바퀴로 구동력이 전해지면서 불안감 없이 차를 끌고 나간다. 행여라도 오버스티어나 언더스티어가 발생할 요량이면 순식간에 토크 벡터링이 개입해 자세를 바로 잡는다.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과 스포츠 모드 서스펜션은 노면이 좋지 않더라도 튀지 않고 요철을 매끄럽게 걸러낸다.
한 때 911은 강력하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맹수같다는 평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덜 전문적인 운전자라도 다룰 수 있는 조련된 맹수와도 같다. 물론 운전 실력을 갖췄다면 더욱 아찔한 주행을 즐길 수도 있다. 911의 주행이 한결 편해진 것은 더 많은 고객을 노리는 포르쉐 브랜드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GTS(그란 투리스모 스포츠)’라는 이름처럼, 911 타르가 4 GTS는 안락한 그랜드 투어러와 매서운 스포츠카의 절묘한 경계에 위치해 있다. S는 아쉬운, 하지만 GT3는 두려운 이들을 위한 최적의 타협안이다. 거기에 은색 띠를 두른 타르가만의 디자인은 쿠페보다 훨씬 세련됐다. 간혹 바람이 들이치지만 시선을 강탈하는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 예전보다 도로 위에 많아진 포르쉐들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이기적인 완벽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