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의 점유율이 무섭게 치솟고 있는 최근의 시장에서 국산차들의 반격 역시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 달 싼타페 부분 변경 모델 출시 이래로 쉐보레는 볼륨 모델인 경차 스파크의 신형을 선보였고, 쌍용은 코란도C의 엔진을 변경하는 한편 판매가 순항 중인 티볼리의 디젤 버전을 출시했다. 현대차는 쏘나타에 PHEV와 디젤, 1.6 터보를 추가하며 7종 파워트레인으로 중형 세단 시장 사수에 나섰다.
반면 지난 해 쏘렌토와 카니발을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던 기아차는 올해 마땅한 신차 없이 상반기를 보내야 했다. 올 초 모닝의 부분 변경 모델이 출시됐지만 큰 변화가 없었고, 그 밖에는 대부분 일부 사양 변경 정도에 그쳐 기아차 입장에서는 꽤나 심심한 상반기였을 터다.
4월 서울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고 지난 7월 15일에 정식 출시된 신형 K5는 기아차로서는 간만의 풀 체인지 모델이다. “2개의 얼굴, 5개의 심장”을 초기부터 강조했음에도 이달 초 형제차인 쏘나타가 라인업 확대로 선수를 쳐 다소 김이 샜지만, 어쨌든 디자인 기아의 성장을 이끈 일등공신인 만큼 안팎의 기대가 적지 않았다.
기아차의 이미지는, 보다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젊고 스포티한 차’ 정도로 정리된다. 현대차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모델들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지만, 기아 엠블렘에는 어딘가 모를 역동성과 스포티함이 녹아 있다. 실제 세팅 또한 현대의 동급 모델보다는 탄탄하고 꽉 조여진 느낌이 강하다.
그런 이미지가 쌓인 데에는 피터 슈라이어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의 공이 컸다. 직선의 예리함을 살린 디자인이 기아차 전 라인업에 적용되면서 그 전까지 방향을 잡지 못했던 기아차의 패밀리 룩이 단숨에 정립됐고,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은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1세대 K5는 특히 그 디자인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아직까지도 기아차의 역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우수한 디자인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중형 세단 시장에서 쏘나타의 판매를 넘어섰던 적이 있을 정도다. 2세대 K5를 디자인하면서, 선대 모델의 이러한 명성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이뤄졌을 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2세대 K5의 디자인은 변화보다는 계승에 촛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최근 곡선을 가미하기 시작한 여타 기아 모델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스타일이 특징적이다. 엣지있는 선을 강조하면서도 선대 모델의 특색있는 요소들을 명쾌하게 재해석해 계승하고 있다.
과연 2세대의 디자인이 성공적인 진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편으로는 심플한 면과 선의 조화가 인상적인 1세대 K5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에 비하자면 다소 디테일의 기교가 늘어서인 지 굉장한 감흥은 없다. 그러나 잘 된 디자인이라는 것이 사견이다.
스포티 디자인의 K5 SX도 햇빛 아래에서 봤으면 좋으련만, 아쉽게 시승차는 모두 모던 디자인인 MX로만 준비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2세대 K5는 두 가지 디자인이 마련됐고, 외관 상으로는 범퍼와 리어 디퓨저 형상에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첫 시도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많은 브랜드가 자사 라인업에 두 가지 디자인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여타 브랜드의 스포츠 디자인에 비하자면 K5의 두 얼굴은 너무 소극적인 차이 뿐이라 일반 소비자들은 어느 것이 ‘스포츠’인 지 헷갈릴 정도다. 젊은 소비자를 노렸다면 아예 좀 더 과격한 디자인을 채택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BMW의 M 스포츠 패키지나 토요타의 스포츠 트림처럼 공격적인 스타일을 더하고, 라디에이터 그릴 등에서 차이를 줬어도 좋았겠다.
MX 모델은 앞서 선보였던 스포츠스페이스 컨셉트카의 범퍼 디자인을 이어받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에어 커튼 형상은 자를 대고 자른 듯 예리하고, 안쪽으로 몰린 안개등은 좌우 각 3발의 LED가 육각 형태로 배치돼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주간 주행등은 헤드라이트에 내장됐으며, 헤드라이트는 듀얼 프로젝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다.
전면부에서는 특히 핫스탬핑 공법으로 만들어진 입체감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눈길을 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호랑이 코 형상의 그릴이지만, 크롬 베젤을 위아래에만 넣어 헤드라이트와의 일체감이 잘 살아난다.
뒷모습은 예전보다 날카로워진 테일램프와 두툼해진 범퍼의 비례가 절묘하다. MX는 레드 베젤 테일램프와 검정색 일반 디퓨저가 적용되는데 멋스러운 SX 디퓨저에 비하자면 검정 플라스틱으로 마감된 MX 디퓨저는 영 심심하기도 하다.
전장*전폭*전고는 4,805*1,860*1,465(mm)로, 형제차인 쏘나타와 전장은 같지만 5mm 좁고 10mm 낮다. 루프가 낮고 숄더 라인이 높아 수치 이상으로 날렵해 보인다. 중형 세단 세그먼트의 특성 상 보수적 소비자와 젊고 역동적인 소비자가 공존하기 마련인데, 쏘나타가 보수적으로 방향을 튼 것과 대조적으로 K5는 두 소비자층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BMW를 빼 닮았네.” 신형 K5의 실내를 보자 마자 든 생각이다. 1세대 K5는 당대의 아우디와 비슷한 운전자 지향형 센터페시아 디자인을 선보인 바 있는데, 2세대는 실내 디자인에서 BMW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령 사다리꼴 디스플레이나 그 아래 AV 시스템과 공조기 조작 버튼의 배치가 그렇다. 반면 반광 크롬이나 대쉬 보드의 재질감은 고급스럽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지만, 이제는 보다 확고한 인테리어 패밀리 룩을 고민할 때도 됐다.
시트는 고급스럽지만 쏘나타에 비하면 시트를 최대한 낮춰도 시트 포지션이 높은 느낌이다. 시트가 높은데 루프는 낮고 유리 면적도 좁아 시야가 영 답답하다. 두툼한 대쉬보드 형상도 한 몫 한다. 1세대와 마찬가지로 불편한 시야에 대한 지적은 면하기 어렵다. 젊은 소비자들이야 멋진 디자인을 위해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중장년층은 불편한 시야 때문에 쏘나타에 더 눈길이 갈 것도 같다.
동승석에는 중형 세단 최초로 워크인 디바이스를 탑재, 운전자의 조작 편의성을 높였다는데, 과연 쓸 일이 많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북미 사양에만 있는 퀼팅 시트가 더 탐난다. 이미 K9에 적용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퀼팅 시트를 기아의 인테리어 차별화 포인트로 살리는 것은 무리일까?
반면 스티어링 휠은 매우 만족스럽다. 3스포크 디자인은 적당히 세련되면서도 조작하기도 편하고, 그립감도 좋다. SX에 장착되는 D-컷 타입은 더 두툼하고 타공 가죽이 적용돼 더욱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D-컷 스티어링 휠에는 패들 시프트도 기본 장착된다.
비행기의 조종간처럼 생긴 시프트 레버도 손에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조작감도 예전에 비해 절도 있게 바뀌었다. 버튼이나 레버의 조작감에서 오는 국산차와 수입차의 감성 품질 차이는 이제 옛 말이 된 것 같다. 오히려 웬만한 수입차보다 만족도가 높다.
또 한 가지,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무선 충전기가 탑재됐다. 별도의 조작 없이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올려놓는 것 만으로도 충전이 시작된다. 외부에 위치해 부득이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할 때도 번거롭지 않겠다. 스마트폰을 올려둔 채로 시동을 끄면 계기판에 스마트폰을 챙기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나타난다.
시승은 고속화 구간과 약간의 시내 구간을 아우르는 코스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 시승차는 1.7 디젤. 마침 얼마 전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얹은 쏘나타를 시승했기에 수평비교가 가능했다.
시승차로 디젤이 준비된 것은 그 만큼 중형 세단에서 디젤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미 형제차인 쏘나타는 신차 계약 중 디젤이 3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디젤의 인기가 높다. 물론 단순히 연비가 좋고 토크가 높다는 이유는 아니다. 디젤을 사도 될 정도로 승용 디젤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1.7 U2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이 141마력으로 K5의 모든 엔진 중 출력이 가장 낮지만, 34.7kg.m의 최대 토크는 전 라인업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특히 최대토크가 1,350rpm부터 나오기 때문에 시내 주행에서는 매우 경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타코미터를 보고서야 디젤인 것을 알았을 정도로 K5 디젤의 정숙성은 매우 우수하다. 털털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걸러진 엔진 사운드만 들린다. 정차 시에는 ISG가 작동해 시동을 끄며, 오토 홀드 작동 중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쏘나타에 비하자면 스트로크가 짧고 탄탄한 느낌이 강하다. 신형 모델에는 후륜 멀티링크에 듀얼 로어암을 적용해 보다 안정성을 높였다는 것이 기아차의 설명이다. 젊은 소비자들은 좋아하겠지만 중장년층에서는 단단한 하체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속도를 높여보니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7속 듀얼클러치 변속기(DCT)에 눈이 간다. 앞서 동일한 DCT가 적용된 현대차를 여러 대 타 봤지만, 이렇게 변속이 빠른 차는 없었다. 업시프팅은 물론, 다운시프팅에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변속기 제어 로직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빠른 변속이 마치 폭스바겐의 DSG를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변속 충격은 잘 억제됐다. 변속기의 변화는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변속 느낌이 좋아 패들 시프트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커졌다. SX 모델은 모든 트림에 패들 시프트가 기본 적용되지만, MX 모델에서는 어떤 트림에서도 패들 시프트를 고를 수 없다.
단점도 보였다. 가솔린 대비 무거운 엔진 탓에 코너링에서는 언더스티어가 발생해 거동이 예리하지 못하다. 또 유독 브레이크 답력이 후반부에 몰려 있어 초반에 밀리는 듯한 불안감이 종종 느껴진다. 깊이 밟아 보면 답력은 충분한데, 이러한 브레이크 세팅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이어 공기압이 냉간 36psi 정도로 맞춰진 상태에서 복합 연비는 16km/L 정도를 기록했다. 복합 공인 연비 16.5km/L과 별로 차이나지 않았지만, 아직 길들이기가 이뤄지지 않은 새 차임을 감안할 때 실연비는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탄 두 번째 시승차는 또 다른 핵심 모델인 2.0 CVVL. 전통적 중형 세단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2.0L급 가솔린 모델이다. 168마력의 최고출력과 20.5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누우 CVVL 엔진이 탑재됐으며, 6속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출력과 토크 모두 허용 범위 이내일텐데, 과감하게 DCT를 도입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디젤 모델을 탄 직후에 가솔린 모델을 타니 정숙성은 배로 느껴졌지만, 대신 밋밋한 토크감에 답답하기도 했다. 부족한 토크는 6,000rpm 이상까지 회전하는 자연흡기 가솔린의 매력으로 대신한다. 아무래도 토크 컨버터인 만큼 변속에는 다소 지체가 느껴진다. 하지만 부드러운 변속은 보수적인 소비자들이 왜 여전히 2.0 가솔린과 토크컨버터를 찾는 지 알게 해 준다.
이 두 번째 시승차는 어댑티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와 차선 이탈 경보(LDWS), 후측방 경보 등이 탑재됐다. 특히 ASCC는 앞 차 속도에 맞춰 정차까지 지원하는 타입으로, 별도의 조작 없이 부드럽게 톨게이트까지 통과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동승자는 ASCC 작동 여부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작동한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변속 타이밍이 미뤄지고, 스티어링 휠도 한결 무거워진다. 엔진이 가벼워 코너링에서도 훨씬 가뿐하고,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도 앞선 시승차와 달리 고르게 분포해 있다. 다만 시트의 볼스터가 단단했던 쏘나타와 달리, 볼스터의 형상은 우수하나 너무 부드러워 제대로 홀딩이 되지 않는 점은 옥에 티다. 같은 그룹 산하지만 시트만큼은 현대차 쪽이 아직 더 우수하다.
공인 연비는 복합 12.0km/L이며, 시승 간 시내 구간에서는 9km/L,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15km/L 정도를 기록했다. 짧은 구간이라 정확도가 높지는 않으나, 실제 주행에서도 공인 연비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아 K5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모습으로 진화에 성공했다. 매 모델 체인지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보다, 기존의 특징적인 요소를 계승하는 형태의 디자인 변신은 브랜드 전체의 헤리티지 구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게다가 그 결과물이 세련되고 멋스럽기까지 하니 아쉬울 것이 없겠다.
뼈대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지만, K5와 쏘나타는 분명히 다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보다 편안한 차를 원하는 소비자를 노리는 쏘나타와 대조적으로, K5는 그 이미지 그대로 스포티한 차를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잘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세련된 실내와 탄탄한 서스펜션은 젊은 층의 선호도를 높힐 수 있는 요소들이다.
아직 ‘완벽’을 논하기에는 디테일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장차 연식 변경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큰 우려는 없다.
중형 세단이라는 심심한 세그먼트에 디자인 한 큰 술, 스포츠 한 큰 술을 넣고 잘 섞어낸 K5는 수입차의 공세에 대한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될 것이다. 두 개의 디자인과 다섯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성은 상당부분 충족된 데다, 주행 성능에 대한 갈증도 해소됐다. K5가 쏘나타를 뛰어넘는 “형제의 난”을 다시 한 번 기대하는 것도 결코 기자만의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