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F1 한국 그랑프리가 개최된 이래로 오랫동안 답보 상태였던 한국 아마추어 모터스포츠 문화가 서서히 꽃피고 있다. 아직 성숙함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다양한 아마추어 대상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개최되고 스포츠 주행을 체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모터스포츠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레이싱 서킷이다. 순환이라는 뜻의 라틴어 ‘circum‘에서 유래한 서킷은 같은 코스를 순환하는 폐쇄형 경기 주로를 의미한다. 반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의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코스의 경우 순환하지 않기 때문에 서킷이라는 말 보다는 ‘코스’, ‘스테이지’ 등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국내에는 4개의 상설 서킷과 1개의 비상설 서킷이 존재한다(BMW 드라이빙 센터 등 완성차 업체 시설 제외). 그 중 스포츠 주행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과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인제 스피디움 등 2곳. 영암의 경우 F1 서킷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많은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350km 이상 떨어져 접근성의 한계가 있다.
반면 2013년 개장한 인제 스피디움은 최근 수도권에서 가장 각광받는 서킷이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접근이 수월할 뿐더러, 고저차가 심해 평지에 위치한 다른 서킷에서 느낄 수 없는 아찔한 주행 재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킷 내에 콘도와 호텔 등 숙박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다양한 패키지를 통해 모터스포츠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흔히 서킷이라고 하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모터스포츠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자기 차로 즐거운 모터스포츠 입문이 가능하다.
서킷을 체험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인제 스피디움 홈페이지(http://www.speedium.co.kr)에 접속하면 날짜 별로 스포츠 주행이나 이벤트 개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인제 스피디움은 평일에도 상시 스포츠 주행을 운영하지만, 기업 임대나 모터스포츠 행사가 있는 날에는 스포츠 주행이 개최되지 않거나 서킷 일부 구간이 폐쇄될 수 있으니 꼼꼼히 확인하자.
특히 첫 방문이라면 날짜에도 유의해야 한다. 서킷 주행을 위해 필수적인 서킷 라이선스 교육은 매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매 주 마지막 평일 스포츠 주행일, 또는 주말에만 서킷 라이선스 취득이 가능하다. 가령 금요일에 기업 임대로 스포츠 주행이 없는 경우 목요일에 라이선스 교육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방문일을 정했다면 사전에 예약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내에서 날짜와 시간을 정하면 세션 별로 개별 예약이 가능하다. 평일에는 예약 없이도 대부분의 세션에 여유가 있지만,주말에는 원하는 시간에 서킷을 타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여러 세션을 예약할 경우 도시락이 제공되거나 트랜스폰더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한다.
이제 짐을 챙기고 떠날 시간이다. 서킷 주행 시에는 헬멧과 장갑이 필수다. 헬멧은 하프 페이스 타입도 무관하며, 장갑은 손가락을 모두 덮는 타입이어야 한다. 또 미연의 사고 발생 시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긴 팔, 긴 바지를 착용해야 한다. 여름에도 예외는 없다.
인제 스피디움의 주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상하답로 130이다. 내비게이션에 ‘인제 스피디움’ 또는 ‘인제 오토 테마 파크’ 등을 검색해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타고 종점인 동홍천 IC까지 간 뒤 국도길을 40분여 더 들어가면 된다. 국도 구간에서도 상당 부분이 고속화돼 있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전 6시께 남양주 톨게이트에서 출발하면 아침 식사를 하더라도 7시 30분~8시 사이에 도착할 수 있다.
서킷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주행 접수. 6번 피트와 7번 피트 사이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센터를 방문해 라이선스 교육 신청서와 주행 서약서 등을 작성한 뒤 주행 비용과 라이선스 교육 비용을 결제하면 접수가 완료된다. 아마추어 라이선스 교육은 10만 원이며, 1년 간 유효하다. 주행 비용은 이벤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세션 당 5만 원이다. 그 밖에 헬멧 대여와 트랜스폰더(계측기) 대여도 모두 접수처에서 이뤄진다.
트랜스폰더는 서킷의 계측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자식 계측기로, GPS 기반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나 여타 계측기보다 정확한 랩 타임 측정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계측기는 메인 스트레치 구간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조수석 앞 휀더 부근에 청테이프 등으로 고정시키면 원활한 계측이 가능하다. 트랜스폰더를 사용해 계측한 랩 타임은 공식 기록으로 인정돼 공신력을 인정받으며, 인제 스피디움 웹사이트에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접수를 마치면 교육이 시작되기 전까지 차량을 주행에 맞게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트 포지션을 조정하고 트랜스폰더와 차량 모니터링을 위한 단말기 등을 장착한다. 서킷에서는 일반 도로와 차원이 다른 횡G가 걸리는 만큼, 차 안에서 주행에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덜어내는 것이 좋다. 트렁크를 모두 비우고 가방이나 다른 짐도 모두 내려놓자.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대쉬보드 상단의 방향제나 장식품도 치우는 것이 좋다. 타이어 공기압도 충분히 채워 코너링 시 사이드 월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
서킷 주행 경험이 없다면 순정 상태의 차로 주행이 가능한 지 궁금할 것이다. 롤 케이지, 버킷 시트, 6점식 안전벨트 등을 의무 장착해야 하고 각종 부품 규정이 있는 레이싱 이벤트와 달리 아마추어 스포츠 주행에서는 특별한 개조가 필요 없다. 롤 케이지나 여타튜닝이 없더라도 순정 그대로 서킷 주행이 가능한 것이다. 단, 소화기 비치는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조수석 하단에 부착해 두면 화재 발생 시 원활한 초동 대처가 가능하다.
서킷 라이선스 교육은 약 1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이론 교육 후에는 페이스 카 선도 하에 서킷을 몇 바퀴 주행하며 직접 코스를 숙지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라이선스 주행 시에는 코스를 숙지하는 데에 촛점을 맞추고 무리한 주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과연 내 차로 주행이 가능할까’ 걱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인제 스피디움에서는 주행 차종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고 있다. 디젤 엔진은 물론 MPV도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카렌스, 카니발 등이주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단, 공도 주행이 가능한 양산차의 경우 배기음이 105dB를 넘어서는 안 된다.
라이선스 교육을 마친 뒤에는 세션에 맞춰 서킷 주행에 참가하면 된다. 각 세션은 20분 간 진행되며, 세션 사이마다 5분 씩 정리 시간이 있다. 세션 시작 5분 전 쯤 차량에 탑승해 5번 피트를 통과, 진출로로 이동해 주행을 준비하면 된다. 코스 진입 시 오피셜에게 주행권을 제시하면 진입이 가능하다.
20분 간 주행은 자유롭게 즐기면 되지만, 일반 승용차 운전자에게 팁을 주자면 20분 간 무작정 달리는 것은 차에도, 기록에도 좋지 않다. 특히 요즘 처럼 무더운 여름철에 계속해서 가혹 주행을 하다 보면 엔진과 변속기에 무리가 가는 것은 물론, 타이어와 브레이크가 열로 인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 한다.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정 랩을 주행할 때마다 속도를 충분히 낮추고 주행하며 열을 식혀주는 것이 차량 컨디션 유지와 기록 경신에도 좋다.
20분은 길지만 짧은 시간이다. 한참 서킷 주행에 몰두하다 보면 금새 시간이 지난다. 주행 시간이 종료되면 LED 전광판으로 된 디지털 플래그 또는 포스트 위의 오피셜이 적기를 발령한다. 원래 모터스포츠에서 적기 발령은 경기 중지를 의미하는데, 스포츠 주행 중 적기가 발령되면 세션이 종료되었다는 뜻으로, 신속히 피트로 진입해야 한다. 적기를 무시하고 계속 주행할 경우 다음 세션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직접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것이 부담되거나 가족과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 인제 스피디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프로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스포츠카에 동승하는 서킷 택시, 최대 4인까지 탑승하고 서킷을 천천히 돌며 체험하는 서킷 사파리는 물론 카트장과 시뮬레이터, 어린이를 위한 RC카 체험도 마련돼 있다. 그야 말로 온 가족을 위한 모터스포츠 체험 공간인 셈이다.
스포츠 주행에 참가한 운전자는 호텔과 콘도 숙박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인제 스피디움 호텔과 콘도는 인제군 내의 유일한 고급 숙박 시설로, 서킷을 내려다 보는 이색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악산과 내린천 등 주변 휴양지를 이용하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서킷 주행을 꿈꿔 왔지만 식구들 때문에 눈치가 보였던 이들도, 인제 스피디움에서는 스포츠 주행과 더불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안락한 숙소와 주변의 관광 명소까지 모두 잡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여름 휴가 시즌, 모터스포츠의 열정이 끓는 당신이라면 인제 스피디움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와, 어떤 차와 함께 하더라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