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차’란 무엇일까. 많은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자동차를 우리는 흔히 국민차라고 부른다. 단순히 판매가 많을 뿐 아니라,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타기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 또 잠깐동안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닌, 오랜 기간에 걸쳐 나름의 헤리티지를 쌓아 그 나라 국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의 대표 모델이야말로 국민차의 영예를 얻게 된다.
쏘나타는 국민차다. 아니, 오랫동안 국민차였다. 1985년 처음 출시된 쏘나타는 젊은이든 중장년층이든 무난히 탈 수 있고 적당한 공간과 성능을 갖춰 대한민국 중산층의 상징과도 같은 자동차로 성장해 왔다. 세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쏘나타가 길거리를 뒤덮은 것만 봐도 쏘나타의 ‘국민차’로서의 권위가 증명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격동하는 2015년의 자동차 시장은 국민차 쏘나타에게도 결코 녹록치 않다. 젊은 소비자들은 중형 세단보다는 더 실속있고 개성 넘치는 소형차를 선호하고, 중년층 이상은 더 고급스러운 윗급 모델을 선택한다. 무엇보다 연평균 2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는 수입차들이 점차 저렴한 가격대에 포진하면서, 쏘나타 뿐 아니라 중형 세단 전체의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은 쏘나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자의 선택 폭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택했다. 파워트레인은 단일 모델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7종에 달하고, 파워트레인에 따라 디자인을 3가지로 다양화했다. “이 중에 하나 쯤 네 취향이 있겠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는 것이 현대의 전략이다.
기존에도 이미 쏘나타는 2.0 CVVL, 2.0 LPi, 2.4 GDi, 2.0 터보, 하이브리드 등 5가지 파워트레인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2016년형이 나오면서 2.4 GDi는 단종되고 1.6 터보와 1.7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추가됐다. 특히 1.6 터보와 1.7 디젤은 최근 시장의 대세인 다운사이징과 DCT(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가 적용돼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1.7 디젤의 경우 2016년형 출시 이후 전체 계약 중 3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장차 쏘나타의 핵심 라인업이 될 전망이다. 겉보기에는 일반 쏘나타와 구별하기 어렵지만, 디젤 특유의 엔진음이 나는 쏘나타는 영 낯설기만 하다.
사실 쏘나타에 디젤 심장이 탑재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NF 쏘나타에 2.0 디젤 엔진이 탑재된 적 있지만, 당시만 해도 승용 디젤에 대한 인식이 나빴고 소음과 진동이 요즘처럼 효과적으로 억제되지 못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픈 기억이 있던 디젤 엔진을 10년 만에 다시 탑재한 것은 그 사이에 디젤 엔진에 대한 자신감이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겠다.
외관 상으로는 헤드라이트 내에서 포지셔닝 램프 역할을 했던 부분이 LED 주간주행등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유선형 주간주행등은 멀리서 보면 메르세데스-벤츠의 그것을 닮았다. 테일램프 역시 2.0 터보에만 적용됐던 LED 타입이 전 라인업으로 확대 적용됐다.
겉에서는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어 차에 탑승했다. 회전수가 6,000rpm까지만 새겨져 있는 디젤 전용 계기판이 쏘나타에 달려 있으니 이색적이다. 디젤 모델인 만큼 ISG(아이들 스톱&고)도 탑재돼 진동 억제와 연비 개선을 동시에 노린다.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대 이상의 정숙성에 감탄하게 된다. 수입차 대비 시끄러웠던 기존 현대차의 디젤 엔진과는 다른 느낌이다. 털털거리는 소음이 부드럽게 억제되고 회전 질감도 같은 엔진이 탑재된 타 모델보다 부드럽다. 정차 시에는 재빨리 ISG가 작동해 시동이 꺼지며, 브레이크 오토 홀드 기능 작동 시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시동이 켜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든다.
쏘나타 디젤에 탑재된 1.7L 직렬4기통 U2 엔진은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토크 34.7kg.m의 성능을 낸다. i40, 올 뉴 투싼에 탑재된 것과 동일한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쏘나타의 7가지 라인업 중 가장 낮지만, 최대토크는 2.0 터보 다음으로 높다. 풍부한 토크 덕분에 시내에서도 고속에서도 출력 부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낮은 출력때문에 고속에서 힘에 부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초고속 영역까지 꾸준한 가속이 이어진다.
이미 i40와 투싼에서 검증됐듯, 새로운 DCT 변속기는 엔진과 궁합이 좋다. 디젤 엔진의 상대적으로 느린 반응속도를 기민한 변속기가 보완해주고, 필요충분의 성능을 동력손실 없이 바퀴로 전달한다. 현대차에 따르면 운전 재미를 강조한 i40에 비해 보다 패밀리 카로서의 안락함에 촛점을 맞추고 세팅했다고 한다. 때문에 변속은 빠르지만 여유가 있고, 기어비도 넉넉한 편이다.
쏘나타 디젤의 공인 연비는 복합 16.8km/L다. 주행구간이 짧아 실연비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려웠지만, 100km/h 순항 연비는 19km/L 가량을 기록했고 시내 구간에서는 13km/L 정도가 나왔다. 다만 시승차의 타이어 공기압이 냉간 50psi 정도로 높게 채워져 있던 만큼 일상 연비는 이 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1.6 터보를 시승했다. 북미에서는 쏘나타 에코로 앞서 선보인 모델이다. 북미에서 일반 모델과 비슷한 디자인을 채택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2.0 터보와 비슷한 전면부 디자인이 채택됐다. 역동적인 범퍼 디테일과 스포티한 전용 18인치 휠이 특징이다. 단, 2.0 터보는 외부의 크롬 장식들이 반광처리된 반면 1.6 터보는 일반 유광 크롬을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실내에서는 우드 트림 대신 카본 파이버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적용되고, 3-스포크 스포츠 스티어링 휠이 적용됐다. 이미 2.0 터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D-컷 타입으로, 그립감이 퍽 우수하다. 반면 계기판은 6시 방향에 바늘이 위치한 2.0 터보와 달리 일반 타입이 적용됐고, 시트 역시 일반 쏘나타와 같다. ‘풀 옵션’ 선택이 가능한 디젤과 달리, 1.6 터보에서는 차선이탈 경보, 긴급 제동 시스템,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을 선택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1.6 터보의 심장은 1.6L 직렬4기통 감마 T-GDi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27.0kg.m인데 204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벨로스터 터보와 기아 K3쿱에 비해 최고출력은 24마력 낮고 최대토크는 동일하다. 다운사이징 엔진 만큼 벨로스터 터보에 비해 터빈 크기를 줄여 출력보다는 효율을 높이고 실용 영역 토크를 강화했다는 것이 파워트레인 개발진의 설명이다.
디젤을 시승한 직후에 타서 더욱 체감됐지만, 1.6 터보 역시 아이들링 상태의 정숙성이 발군이다. 작은 배기량 덕인지 오히려 2.0L급 엔진들보다 조용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조용한 다운사이징 엔진이 과연 쏘나타를 이끌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그러나 가속을 시작하면 그런 우려가 모두 무색해 진다. 기존 2.4 GDi보다도 높은 최대토크가 1,500rpm의 실용 영역부터 뿜어져 나오면서 경쾌하게 쏘나타를 이끈다. 디젤과 마찬가지로 발빠른 DCT는 출력을 빠짐없이 전달한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두터운 토크는 충분히 재미있는 운전을 가능케 한다. 오히려 2.0 터보보다 덜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빠른 변속이 중형세단임을 잊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드라이브 모드를 노멀이나 에코로 바꾸면 시내에서는 부드러운 주행을 이어나간다.
DCT는 타 모델과 마찬가지로 변속 속도를 다소 희생하는 대신 변속충격을 최소화하는 세팅이다. 업시프트는 빠른 편이지만, 다운시프트 속도가 느린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6,000rpm에서 강제변속이 이뤄지는데 다운시프팅 시 5,500rpm까지 회전수를 보상해주는 것은 꽤나 고무적이다.
중요한 점은 1.6 터보가 재미있는 운전을 지향하되 스포츠 모델은 아니라는 점이다. 2.0 터보 대비 R-MDPS와 전용 서스펜션 등 스포츠 사양이 빠지기 때문에 하드코어한 주행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선택 사양으로라도 스포츠 패키지를 적용해 줬다면 더 다양한 수요층을 공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멋스러운 디자인에 비해 밋밋한 하체나 핸들링이 민망하다.
오는 8월 경에는 1.6 터보를 기반으로 30주년 기념 한정판 쏘나타가 나온다고 하니 한정판 모델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300대만 판매되는 30주년 기념 에디션은 1.6 터보와 DCT를 보다 스포티하게 튜닝하고 스포츠 서스펜션과 전용 디자인 및 사양이 적용된다고 한다.
1.6 터보의 공인 연비는 복합 13.4km/L로 2.0 CVVL보다도 높다. 가솔린 라인업 중 가장 연비가 좋은 만큼 2.0 CVVL을 선택하려던 소비자도 마음을 돌릴 수 있겠다. 짧은 주행 중 테스트한 실연비는 시내에서 10km/L, 고속도로에서 18km/L 정도를 기록했지만, 디젤과 마찬가지로 공기압이 높은 상태이므로 일상 주행에서는 이에 못 미칠 전망이다.
‘쏘나타’ 이름의 유래가 된 소나타(sonata)는 원래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을 위한 기악곡의 한 형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나타는 형식과 규칙이 강조된 고전파 시대에 정립되고 완성됐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이 사랑했던 소나타는 교향곡 등에 비하자면 비교적 형식이 자유로웠지만, 어쨌든 고전파의 주류 음악답게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쏘나타는 이러한 유래와 잘 어울리는 차였다. 완전히 권위적이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지만 모나지 않은무난함과 보수적인 주행성능이 그러했다. 바로크 시대부터 수 세기 동안 소나타가 사랑받았듯, 쏘나타 역시 국민차로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면서 별다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개성을 추구하는 자동차 시장의 낭만파 시대가 도래하면서, 쏘나타 역시 그 형태를 바꾸기로 했다. 겉모습은 대동소이하지만 무궁무진한 조합을 선보이는 쏘나타는 이제 환상곡이나 변주곡에 가깝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은 쏘나타 30년 역사상 가장 작은 배기량이지만 가장 강한 개성을 뽐내는 두 개의 다운사이징 엔진이다.
현대의 ‘쏘나타 실험’이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수입차의 위협적인 증가세에는 개성 추구라는 소비 패턴의 변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데, 무난하지만 동시에 몰개성적인 차로 여겨지는 쏘나타가 엔진만 다양해졌다고 해서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택지가 늘어났으니 어쨌든 마음을 끌 요소는 많아졌고, 상품성 또한 부족하지 않다.
현대는 앞으로 쏘나타를 연간 10만 대 이상 팔겠다고 선언했다. 중형 세단의 설 곳이 점차 좁아지고 있는 작금의 시장에서 일곱 가지 변주곡을 내세운 쏘나타가 국민차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지, 관심 있게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