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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의 가치, 르노삼성 SM7 노바 VQ2.5 RE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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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QM3이 판매 호조에 힘입어 르노삼성의 메인 모델이 됐지만, 사실 르노삼성의 시작은 승용 세단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쏘나타가 중형 세단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1998년, 1세대 SM5를 출시한 구 삼성차는 세단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IMF로 자동차 판매가 반토막이 났던 시기에도 삼성차는 단일 모델로만 4만 대 이상을 팔며 선전했다.

이후 르노와의 파트너십을 시작하면서 르노삼성의 세단은 두 번의 큰 세대 교체를 겪었다. 2세대 SM5가 나올 때는 그 플랫폼을 활용해 SM7이 첫 선을 보였고, 3세대 SM5와 2세대 SM7이 출시되면서 그간 닛산에 기반을 뒀던 차체가 르노의 것으로 바뀌었다. 르노삼성은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남다른 대안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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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르노삼성 세단들의 시장 경쟁은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수입차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대등한 라이벌이었던 국산차들의 품질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풀 모델 체인지는 아직 요원하다. 이는 구원투수로 나선 QM3를 제외한 르노삼성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번에 시승한 SM7 노바는 이 처럼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르노삼성이 내놓은 최신 플래그십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또 이름의 ‘노바(초신성)’처럼 다시 한 번 밝게 빛나기를 꿈꾸는 르노삼성의 희망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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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출시된 SM7 노바는 2011년 출시된 2세대 SM7의 부분 변경 모델로서, 밋밋했던 전면부 디자인을 수정하고 실내 편의사양을 일부 조정한 모델이다. 벌써 2세대가 출시된 지 4년 차에 들어섰고, 부분 변경 모델도 출시 반 년이 넘었지만 길에서 너무 흔히 보이는 그랜저나 K7에 비하자면 아직 참신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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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7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2011년 서울모터쇼에서 르노삼성은 SM7 컨셉트카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었는데, 양산 모델에서는 컨셉트카의 디자인 큐는 이어받았지만 디테일이 많이 밋밋해졌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웠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의 패턴 디테일이나 테일램프, 휠 디자인 등에서 컨셉트카와의 괴리감이 심했고, 이처럼 무난하다 못해 심심한 디자인이 초기 판매 부진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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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M7 노바로 넘어오면서 디자인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 평면적이었던 전면부는 볼륨감이 대폭 강화되고 디테일도 다듬어졌다. 현재 르노삼성 전 라인업은 물론 유럽 르노의 패밀리 룩과도 상통하는 T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중후함과 역동성이 동시에 잘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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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치 알로이 휠도 화려한 멀티 스포크 타입으로 바뀌면서 휠 아치를 꽉 채우는 느낌을 준다. 올 초 부분 변경된 동생, SM5 노바와도 전면부, 휠 디자인 등의 패밀리 룩이 강화되면서 모델 별로 디자인이 따로 노는 느낌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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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운 것은 기왕 손보는 김에 뒷모습도 손을 봤다면 더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페이스(face) 리프트라서 앞모습만 바뀐 걸까? 컨셉트카의 화려했던 테일램프와 범퍼 디테일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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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대비 실내의 레이아웃은 거의 변화가 없다. 오디오 조작 패널이 약간 바뀐 정도다. 그래도 명실상부한 브랜드의 기함인 만큼 디테일에서 멋을 내고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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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나파 가죽은 동급 경쟁자들보다 훨씬 좋은 재질감을 자랑한다. 르노삼성의 매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소한 마감의 차이에서 오는 묘한 만족감은 다른 차에서 찾아볼 수 없는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거추장스럽지 않은 센터페시아 내장형 퍼퓸 디퓨저나 청랑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12-스피커 보스 오디오 시스템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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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스티어링 휠은 향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 중 하나다. 상단에 우드를 적용했지만 SM3, SM5와 동일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버튼류도 잘 보이지 않는 스티어링 휠 뒷쪽으로 모두 숨겨버려 처음 탔을 때 조작이 어렵다. 멋진 디자인과 탁월한 재질감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위치에 자리잡은 시프트 패들이나 기함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수동식 텔레스코픽 기능도 신경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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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7 노바가 출시되면서 스마트 미러링 기능이 추가됐는데, 휴대폰과 와이파이 연결을 통해 양방향 조작이 이뤄지는 기능이다. 이를 통해 휴대폰의 미디어 소스를 구동하거나 음악 서비스인 멜론,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T-맵 등을 통신사와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호환성은 좀 더 보완될 필요가 있겠다. 구글 넥서스 5를 사용하는 기자의 경우 어플리케이션 설치와 차량 연동까지는 성공했지만 T-맵이 구동되지 않아 내비게이션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아이폰 등 일부 기종에서도 작동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 활용 가능성이 높은 기능인 만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호환성을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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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의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좋은 평가를 받은 파워트레인은 그대로 유지된다. 엔진은 2.5L V6와 3.5L V6 등 두 가지인데, 둘 다 세계적으로 완성도를 인정받는 닛산의 VQ 계열이다. 시승차에 탑재된 VQ25DE 엔진은 과거 인피니티 M 세단(닛산 푸가), 닛산 세드릭, 닛산 티아나 등에 탑재됐던 명엔진으로, 최고출력 190마력에 최대토크 24.8kg.m의 준수한 성능을 낸다. 변속기는 토크컨버터 타입의 6속 자동변속기가 적용된다.

엔진의 회전 질감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다운사이징 열풍이 불면서 2.5L급 6기통 엔진이 멸종위기에 처한 만큼 SM7 노바의 엔진은 더욱 빛을 발한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마치 섬세한 악기처럼 매끄럽게 회전을 시작한다. 변속기는 퍼포먼스보다는 부드러움에 촛점을 맞춰 세팅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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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는 초반 반응이 민감한 편이라 시내 주행에서 답답함이 없다.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면 스포츠 모드를 작동시키면 된다. 계기판에 출력 그래프가 나타나면서 응답성이 더욱 향상된다. 조용하고 편안한 줄만 알았던 르노삼성에서 이런 반전 매력을 만나게 될 줄이야! 가르릉거리는 엔진의 회전 질감에 빠져 자꾸만 속도를 내게 된다. 기왕이면 변속기의 반응 속도도 더 민첩하게 세팅돼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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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파워트레인에 비해 서스펜션은 지극히 르노삼성답게 부드럽다. 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근래의 많은 차들이 탄탄한 유럽형 하체 세팅을 지향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성향이기 때문이다. 안 좋은 노면을 물흐르듯이 지나갈 때는 퍽 만족스럽지만 코너에서의 롤링이나 가속·제동 시의 피칭은 댐퍼의 감쇠력이 너무 무른 탓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서스펜션이 무르다 보니  고속에서 요철을 지날 때 자세가 흐트러지기도 하고, 또 스포츠 모드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에도 한계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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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서스펜션 세팅을 선호하는 소비층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유럽 혼혈 브랜드의 색깔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되려 경쟁사보다 더 유럽적인, 보다 탄탄한 세팅도 필요하겠다. 무른 것과 부드러운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유럽 취향인 QM3의 쫀득한 하체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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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연비는 복합 10.2km/L인데 시승 간 실연비는 복합 9.5km/L을 기록해 공인 연비보다 다소 낮았다. 고속도로에서는 13.5km/L까지 연비가 높아졌지만 막히는 시내에서는 7km/L까지 떨어졌다. 배기량이 있는 만큼 기초대사량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4기통 엔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VQ 엔진의 탁월한 감성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의 연비 희생이 아깝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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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르노삼성은 여느 경쟁사보다 좋은 환경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소형차를 만들어 왔고, 최근에는 독보적인 전기차 기술력까지 확보한 르노와, 북미에서 꾸준한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수준의 엔진 기술과 풍부한 고성능 모델 개발 경험을 갖춘 닛산의 잠재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QM3의 성공에서 보여지듯 얼라이언스의 시너지 효과를 십분 활용한다면 향후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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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7은 그러한 시너지 효과가 어떤 식으로 발휘되는 지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르노의 바디에 닛산의 엔진을 얹어 색다른 유럽풍의 날렵한 스타일링과 훌륭한 엔진을 모두 손에 넣었다. 여기에 르노삼성 특유의 마무리가 더해져 제법 멋진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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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족하기는 이르다.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쟁자들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 그랜저와 K7 모두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고, 쉐보레는 북미에서 임팔라를 들여온다. 내부 사정으로 잠시 멈춰섰던 SM7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장 흐름에 발을 맞춰야 한다. 보다 탄탄하게 조여진 세팅과 공격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익숙함이 구태의연함으로 전락하는 것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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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새로운 자극에 취해 익숙한 것의 가치를 잊고 산다. 그러나 익숙한 것에도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긴장감과는 다른 편안함과 여유가 익숙한 것에 남아있다. SM7 노바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어필할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을 여전히 발산하고 있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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