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는 6월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 웨이에서 렉서스 고객을 대상으로 ‘렉서스 어메이징 익스피리언스 데이 (LEXUS Amazing Experience Day)’를 개최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 중 최초로 한국에 발을 내딛은 지 15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렉서스는 지난 15년 간 수입차 시장 저변 확대에 적잖은 공을 세웠다. 탄탄한 주행감성을 지닌 독일차에 비해 여유롭고 안락한 구성으로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딱 맞는 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던 적도 있다. 최근에는 독일 디젤의 아성에 주춤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디자인 컨셉이 자리를 잡고 하이브리드가 다시 미래 친환경차로 각광받으면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렉서스의 매력이 대체 무엇일까? 편안함과 안락함, 고급스러운 마감 품질, 우수한 내구성과 만족도 높은 서비스 등이 있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렉서스의 예리한 주행감각이다. 독일차와 견줘도 손색없는 뛰어난 달리기 실력은 렉서스의 높은 가치를 완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오랫동안 렉서스는 스포츠 모델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지난 2006년 ‘F’ 디비전을 런칭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실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토요타 모터스포츠의 요람인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유래한 F 디비전은 2007년 IS F를 통해 처음으로 고성능의 가능성을 내비쳤고, 2009년에는 렉서스 최초의 슈퍼카인 LFA를 선보이면서 실력을 발휘했다. 이번에 한국에도 런칭한 RC F는 F 뱃지를 단 세 번째 작품. 그 밖에도 전 모델에 스포츠 패키지인 F 스포츠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우위에 있는 하이브리드 기술력 역시 렉서스의 자랑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는 유일하게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인 CT와 HS(국내 미출시)를 시판 중이며, 전 라인업에 걸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 중이다. 우수한 효율과 정숙성, 내구성 등 여러 면에서 렉서스 하이브리드는 남다른 매력을 지닌다.
4일 오전에 치뤄진 미디어 대상 행사에서는 렉서스 F 스포츠와 하이브리드 모델들을 타고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달리는 시승 체험이 진행됐다. 기자는 RC F와 RC 350 F 스포츠, IS 250 F 스포츠 등 F 라인업 3종을 시승했다. 추첨을 통해 차종이 선택돼 하이브리드 모델을 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첫 번째 차는 RC F. 5.0L V8 엔진이 473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낸다. 국내에는 올해 15대 한정으로 판매 중이며, 전 모델에 카본 패키지가 기본 적용돼 있다. 많은 경쟁 모델들이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을 채택하는 상황에서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 이색적이다. 한 편으로는 고출력인데다 엔진이 너무 무거워 조작하기 어렵지는 않을 지 우려도 됐다.
첫 바퀴는 워밍업 형태로, 레이아웃이 익숙치 않은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한 바퀴 돌아봤다. 전장 4.3km에 이르는 스피드웨이는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폐쇄된 뒤 지난 해 공사가 완료됐지만 아직까지 일반 개장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성지이면서도 신비로움에 둘러싸인 곳이다.
기존 구간은 익숙하지만 새로 추가된 구간은 낯설다. 긴 가속구간 이후의 새로운 구간은 고저차가 심한 복합코너가 연속돼 마치 인제 스피디움을 연상시킨다. 그 뒤에는 일본 스즈카 서킷같은 교차 지점을 지나 연속 헤어핀을 통과한다.
웜업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가속해봤다. 드라이브 모드는 스포츠 플러스, 토크 벡터링 디퍼렌셜(TVD)은 트랙 모드로 설정하고 변속기를 수동 모드로 당겼다. 우렁찬 8기통 사운드와 함께 치고 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자이언트 코너에서 RC F는 바닥을 움켜쥐고 돌아 나갔다. 거대한 엔진이 무색할 정도로, 우려했던 프론트 헤비로 인한 조작성 악화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상당히 뉴트럴하게 원하는 만큼 회전했다.
이어지는 가속 구간에서는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꾸준한 토크감이 일품이다. 터보 엔진처럼 특정 구간에서 우악스럽게 치고 나가다가 고회전에서 처지는 느낌이 없다. 운전자가 패들 시프트를 당길 때까지 자동 변속이 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후의 복합 코너 구간에서는 TVD가 진가를 발휘했다. 토크 벡터링이란 주행 상황에 따라 디퍼렌셜이 능동적으로 좌우에 구동력을 배분해 주는 기능이다. 연속된 코너와 고저차로 인해 하중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TVD는 차의 거동을 안정시키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줬다.
RC F와 사랑에 푹 빠졌는데, 다음 차를 탈 시간이 됐다. 이어서 탄 차는 RC 350 F 스포츠, 그 다음 차는 IS 250 F 스포츠. 순서대로 더 낮은 성능의 모델을 타자니 롤러코스터를 탄 뒤에 회전목마를 타는 기분이었다. 순서가 정 반대였으면 점진적으로 향상된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RC 350이 밋밋한 차는 결코 아니다. 쫀득한 서스펜션은 코너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고, 6기통 엔진은 경쾌하고 매끄러운 회전질감을 자랑한다. 터보가 대세인 업계 분위기 속에서 자연흡기 엔진의 부드러움은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RC F가 본격적인 트랙 주행에 최적화된 파이터라면, RC 350은 안락함과 스포티함을 두루 갖춘 그랜드 투어러와도 같다.
IS 250 F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3L 미만의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이 대거 퇴출되면서 오히려 IS 250의 가치가 돋보인다. 컴팩트 세단이지만 부담 없는 서킷 주행에 충분한 F 스포츠 서스펜션 덕분에 운전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더군다나 LFA를 연상시키는 F 스포츠 전용 계기판은 운전 내내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준다.
그 밖에도 행사장에서는 렉서스의 다양한 차들을 타고 슬라럼 체험을 하거나 렉서스 모델로 즐기는 레이싱 게임 등이 마련됐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렉서스 최초의 슈퍼카, LFA의 실물 전시도 이뤄졌다. 오랫동안 쌓여 온 ‘강남 쏘나타’, ‘사모님 차’ 등 편안하지만 따분하다는 이미지를 벗겠다는 노력이 돋보였다.
렉서스는 올 초 요시다 아키히사 사장의 발표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브랜드”라는 중장기 비전 실현을 위해 “와쿠도키(가슴 두근거림의 일본어)”라는 상품 전략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이브리드와 퍼포먼스라는, 어찌 보면 양 극단에 위치한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자 한다.
정숙성과 효율로 각광받는 하이브리드의 명성을 이어가면서, 한 편으로는 F 스포츠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렉서스’ 이미지로는 잘 연상되지 않는 레이싱 서킷에서 15주년 기념 행사를 치뤘다는 점만 보더라도 렉서스의 퍼포먼스에 대한 자신감과 열망이 드러난다.
지난 15년 간 안락함과 고급스러움의 아이덴티티를 쌓아 온 렉서스의 다음 15년은 어떤 색으로 칠해지게 될 것인가? 당찬 렉서스의 전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