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자동차회사를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에게 가장 중요한 모델은 무엇일까? 기함인 에쿠스, 브랜드의 허리인 쏘나타 등이 떠오른다. 혹자는 해외시장의 효자모델인 i20이나 국산차 최초로 1,000만 대가 넘게 생산된 베스트셀러, 아반떼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물론 현대의 입장에서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없듯 모든 모델들이 중요하겠지만, 현대차 프리미엄 모델의 ‘창세기(Genesis)’를 연 제네시스는 유독 각별한 모델일 것이다. 국산차 최초로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면서 기존에 대중차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던 현대의 프리미엄 이미지 리더로 선봉에 선 차가 바로 제네시스다.
그런 제네시스의 후속 모델 역시 현대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됐을 터. 지난 2013년 11월, 2세대 제네시스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등장했다. 최근 현대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만큼 논란도 많았지만, 어쨌든 2세대 역시 시장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연착륙했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2015년형 제네시스로, 상품성이 개선되고 하위 트림의 옵션 선택 폭이 넓어졌다. 특히 안전사양이 강화되고 현대가 공격적으로 홍보 중인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이 탑재된 점이 눈에 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현대차, 그것도 이슈를 몰고 다니는 제네시스의 시승기를 쓰는 것은 퍽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무엇이 아직도 부족한 지 확실히 파악해야 제대로 된 칭찬과 쓴 소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네시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이번 시승에서는 변화된 부분들을 중심으로 차를 살펴보기로 한다.
디자인이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제네시스의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편이다. 나이들어 보였던 1세대에 비해 2세대는 상당히 세련돼졌고, 특히 프론트 오버행이 줄어들면서 매우 스포티한 비례가 만들어졌다. 보다 젊은 층이 제네시스를 타도 ‘아버지 차’를 타고 나왔다는 오해는 면할 수 있겠다.
제네시스는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처음으로 적용된 모델이다. 유려한 곡선 위주였던 기존 플루이딕 스컬프처에 비해 직선적이고 모던한 분위기가 더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플루이딕 스컬프처 1.0에서의 뚜렷했던 개성이 흐려진 것 같아 불만이다. 더욱이 제네시스라는 상징적인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1세대와의 디자인적 연결성이 떨어지는 점도 아쉽다. 물론 전반적인 디자인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현대만의, 제네시스만의 색깔을 더 보여줬어도 좋았겠다.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글로벌 업계에서는 전력효율이 뛰어나고 배광 능력이 우수한 LED 헤드램프가 표준으로 자리잡는 추세인데, 아쉽게도 아직 2세대 제네시스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신형 투싼이나 출시가 임박한 2세대 K5 등 하위모델에도 속속 적용되고 있는데 준 플래그십 모델인 제네시스에 적용이 늦어지는 것은 경쟁력 하락의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제네시스의 출고용 타이어 소음 이슈로 리콜이 진행된 것을 의식해 2015년형부터는 출고용 타이어가 컨티넨탈 제품으로 바뀌었다. 출시 1년 만에 고객 반응에 발빠르게 대응해 출고 사양을 변경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 만큼 제네시스라는 모델에 대해 현대가 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는 증거다.
2015 제네시스는 상품성 강화에 촛점을 맞춰 하위 트림에서의 옵션 선택 폭을 넓히고 기본적용 사양을 확대하는 변화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실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리얼 우드와 알루미늄, 나파 가죽 등 마감재의 퀄리티가 뛰어나고 버튼의 재질감과 조작감이 우수하지만 하이글로시 재질에 빛이 반사돼 1열 열선 및 통풍 시트 작동 램프가 잘 보이지 않는 등 옥에 티도 있다.
제네시스는 오너 드리븐으로도, 쇼퍼 드리븐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 매력이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 모델로서, 2열 전자동 슬라이딩 및 리클라이닝과 통풍 및 열선 시트 기능이 탑재돼 있으며 1열 시트 뒷면에 디스플레이 모니터도 장착됐다.
이번 연식변경에서는 안전사양이 대폭 강화된 점이 핵심이다. 전 트림에 동승석 승객 구분이 가능한 어드밴스드 에어백이 기본 적용되면서 카 시트 사용 시 안전도를 높였다. 또 2열 가운데 좌석에 헤드레스트가 추가됐다. 국내 소비자들이 그 동안 강력하게 요구해 온 안전사양이 뒤늦게나마 기본 적용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 밖에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가 하위 트림에 확대적용됐고, 차량 주변을 보여주는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AVM)과 전동식 트렁크가 3.3 트림에서도 선택 가능하게 바뀌었다. HUD 탑재 모델의 경우 HUD 수평 기울기 조절 기능도 추가됐다.
제네시스의 파워트레인은 총 4종류로 3.3 후륜구동, 3.3 HTRAC, 3.8 후륜구동 및 3.8 HTRAC이 그것이다. 시승차는 3.8L V6 람다 GDi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그리고 4륜구동 시스템인 HTRAC이 조합된 최상위 모델. 최고출력 315마력에 최대토크는 40.5kg.m에 이르며 풀타임 전자식 4륜구동이 탑재된다.
제네시스의 심장은 V6 후륜구동 세단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고 매끄럽지만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실으면 폭발적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가속이 시작된다.
8단 파워텍 자동변속기는 부드럽지만 빠르게 변속을 마친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변속기 단수를 낮출 때 회전수 보상이 이뤄진다는 점. 현대기아차에서 그간 선보이지 않아 불만이 많았던 기능이다. 일본차처럼 극적이거나 BMW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울컥임 없는 다운시프팅이 이뤄진다는 것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HTRAC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은 선회각이나 주행 모드, 주행 상황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구동력을 배분한다. 스포츠 주행 시 뒷바퀴가 점진적으로 미끄러지는 오버 스티어 성향을 보이다가 앞바퀴가 끌고 가 주면서 안정적으로 코너를 탈출한다. 약한 언더 스티어 성향을 보이는 아우디 기계식 콰트로보다는 후륜 구동력 배분율이 높은 닛산의 아테사 ET-S와 더 비슷한 주행 감각이다.
이미 2세대 제네시스의 주행 성능에 대해서는 검증과 평가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고급스러운 서스펜션 세팅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특히 일상 주행과 중·고속 영역에서는 동급 수입차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하체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초고속 영역에서의 안정감은 확실히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공인연비는 3.8 HTRAC의 경우 복합 8.5km/L, 도심 7.4km/L, 고속 10.5km/L이다. 시승 간 연비를 고려하지 않은 일상 주행에서 시내 연비는 7km/L을 기록해 공인연비보다 낮았지만, 고속도로 연비는 13km/L 가량을 기록해 공인연비보다 높았다. 복합 연비는 9km/L을 기록했는데 시승 간 고속도로 주행 비율이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공인연비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2015 제네시스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LKAS, Lane Keeping Assist System)이 국산차 최초로 탑재됐다는 점. 이 기능은 말 그대로 차선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차가 능동적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는 기능이다. 국내 적용 사양은 차선 폭을 감지해 차선이 지워지거나 그림자에 가려진 경우에도 가상 차선을 그려 계속 주행하는 가상 차선시스템도 함께 적용돼 높은 인식률을 갖췄다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이다.
여기에 앞 차와 간격을 자동으로 유지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앞 차와 충돌 위험이 있을 때 차가 능동적으로 제동을 실시하는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AEB)이 더해지면 초보적인 자율 주행 기능이 완성된 셈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 기능들을 이용해 운전자 없는 제네시스가 줄지어 주행하다가 급제동하는 광고를 북미에서 내보낸 바 있다.
국내에 한 발 늦게 적용된 것은 얄밉지만, 어쨌든 새로운 기능들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수입 경쟁차들이 앞다퉈 적용하고 있는 기능이라 기술적 완성도를 비교하기도 좋겠다.
오후 9시 경,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다가 서서울 톨게이트를 지난 뒤부터 ASCC와 LKAS를 켰다. 교통량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장비 만으로 어디까지 주행할 수 있을 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테스트는 서서울 톨게이트~성산대교에 이르는 약 25km 구간에서 진행했다.
LKAS는 60km/h 이상에서만 켤 수 있고 속도가 60km/h 밑으로 떨어지면 경고음과 함께 자동으로 꺼진다. 일부 수입 모델이 저속에서도 작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차선을 따라가는 움직임은 미국차의 LKAS보다는 훨씬 부드럽다. 약 30m 가량 차선이 지워진 코너 구간에서는 잠시 차선을 이탈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차선을 잘 따라갔다. 정체구간에서 속도가 떨어져 해제된 때를 제외하고 성산대교까지 오는 내내 제네시스는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주행했다.
ASCC는 어떨까. ASCC도 이제 기술적 완성도가 많이 높아졌다. 속도와 거리를 지정하면 앞 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앞 차가 정차하면 완전 정차, 이후 재출발까지도 가능한 최신 버전이다.
반응 속도도 빠른 편이라 0.5~1초 내외의 짧은 시간만에 앞 차량의 차선 변경을 인식해 가·감속을 실시했다. 정차 시에도 다가가서 급정거하지 않고 지그시 속도를 줄이는 것이 제법 영리하다. 코너에서도 앞 차를 잘 인식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등 기술적 만족도가 상당하다. 성산대교까지 올라오면서 목동 부근에서 급하게 끼어든 차를 피할 때를 제외하고는 ASCC가 계속 제 기능을 했다.
결과적으로 25km 구간의 주행에서 기자가 직접 차량을 조작한 것은 2~3회에 불과했다. 제네시스에 적용된 기초적 자율 주행 시스템들은 그 완성도가 매우 높고 수입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장거리 운전 중 부득이하게 주의가 흐트러지는 경우에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뻔한 얘기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현대 제네시스는 잘 만든 차다. 특히 2015년형은 첫 출시 당시보다 더 나아졌다. 동급 최고 수준의 편의장비와 뛰어난 마감 품질, 만듦새 좋은 파워트레인과 자율 주행을 넘보는 전자장비까지 차의 모든 부분들이 제 값어치를 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수입 모델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더 나아져야 한다. 특히 제네시스가 대중차가 아닌 프리미엄 모델을 지향하기에 더욱 그렇다. 가장 유력한 경쟁모델인 독일 3사의 5시리즈, E 클래스, A6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밸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제네시스만의 가치가 필요하다.
이미 이 세그먼트에서는 어떤 회사든 잘 만든다. 어떤 차를 사도 후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시스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BMW 운전 재미, 메르세데스-벤츠의 완벽주의, 아우디의 기술력과 같이 현대만이, 제네시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목표와 가치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됐다.
또 한 가지, 제네시스는 현대의 야심작인 만큼 최신 기술이 아낌없이 투입됐다. 하지만 그 선도적 기술력이 제네시스 이외의 모델에 적용되는 속도가 더딘 것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이번에 출시된 올 뉴 투싼의 경우도 유럽에서는 LKAS가 적용됐지만, 국내에서는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아예 만들 수 없는 것이라면 기대조차 않지만, 제네시스를 통해 이미 잘 한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다른 모델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얄미울 뿐이다. 현대가 제네시스만 잘 만드는 회사가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사실 상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의 플래그십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최신 기술력이 발빠르게 하위 모델들에도 확산될 필요가 있다. ASCC, LKAS, 어드밴스드 에어백, 변속기 회전수 보상 기능 등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제네시스의 첨단 사양들이 발빠르게 ‘현대의 표준’이 돼야 제네시스가 현대라는 브랜드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에 대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경쟁사들이 현대의 가파른 성장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제네시스의 만듦새는 현대에게 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 능력을 현명히 활용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은 현대의 몫이다. 괄목할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쉴 틈 없이 진보해야 하는 제네시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