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지만 그 동안 유독 프랑스와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오래 전 파리에 이틀 정도 머물렀던 기억과, 2년 전 영국으로 가기 위해 유로터널을 찾았던 기억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제네바 모터쇼 취재 후 프랑스를 좀 둘러 볼 계획을 세웠다. 프랑스 여행에 동행할 차는 시트로엥 피카소다. 아니 그랜드 피카소다. 어쨌든. 프랑스차 피카소를 타고 프랑스를 종단하는 것이 이번 여정의 목표다. 그런데 프랑스 남쪽 해안 도시에 화가 피카소의 흔적을 둘러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목표를 하나 더했다. 스페인이 아니라 본격적일 수는 없지만 아쉬운대로 피카소와 함께 피카소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거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일행과 작별한 후 시승차를 받기로 한 시트로엥 센터로 향했다. 센터는 약 6km 정도 떨어진 프휵띠도흐가에 위치해 있어서 택시로 큰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자 담당자인 에밀이 1층으로 내려와 반갑게 맞이해 줬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옆에 전시돼 있는 C4 칵투스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에밀한테 원래 예정보다 3일정도 일찍 돌아올 텐데 혹시 시승차를 칵투스로 바꿔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남아 있는 차가 없단다. 대신 돌아오는 날 시간 여유가 있으면 잠시라도 타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겠단다. 그게 어딘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준비된 피카소를 전달받았다. 에밀은 자상하게 차의 작동법에 대해 알려줬고, 사실 한국에서 이미 타 봤다고 하자 큰 걱정 없이 보내줬다. 중요한 건 네비게이션을 영어로 바꿔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주차장을 나와서 네비에 급하게 목적지를 입력했다.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몽환적인 수도원, 몽생미셸. 그래, 가보는 거야.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거리가 무려 357km다.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오후 3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부산까지 혼자 차 끌고 가는 셈이다. 금요일 이른 오후라 아직 막히진 않겠지만 부담이 안될 수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몽생미셸 아니면 어딜 가겠는가? 몽생미셸을 찍고 내려와야 북쪽 노르망디 해안에서 남쪽 지중해 해안까지 프랑스 종단이 성사되는 것이다.
일행과 헤어지기 전 파리 여행 가이드에게도 물어봤었다, 혹시 몽생미셸 앞에다가 차를 세워놓고 사진 찍을 수 있는지. 그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 가보는 거다. 몽생미셸((Mont St-Michel)은 그대로 번역하면 ‘성 미카엘의 산’이란 뜻이다.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시트로엥 센터가 시내에서 약간 외곽이다 보니 이내 순환도로에 접어들었고, 잠시 후 본격적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에 접어 들자 차들의 통행도 많지 않고 편안하게 달리기에는 그만인 조건이었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제한속도가 130km/h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과속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제한속도를 철저히 지키면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은 반드시 표지판으로 미리 알려준다는 사실을 그 다음날 알았다.) 다행히 규정속도로만 달려도 도착예정 시간은 노을을 찍기에 여유가 있었다.
프랑스 북부로 가면서 고속도로 주변에서 눈에 많이 띈 것은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시골이었고, 고속도로 주변 큰 나무들에 우리나라 겨우살이처럼 보이는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부자 나라의 전원 풍경이라 그런지 더 여유로워 보였다.
몽생미셸까지 가는 동안 구간 통행료를 내는 곳은 없었고, 통과하면서 일정액을 내는 톨게이트가 몇 번 있었다. 지역에 따라 3유로 전후를 냈다.
4인 정도 가족이 자동차로 유럽을 여행한다면 그랜드 피카소는 단연 추천 1순위가 될 만한 차다. 4인이 타고도 넉넉한 실내 공간과 여유 있는 화물공간을 갖춰, 꽤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짐들을 싣기에도 부족함이 없겠다.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여유 있게 놀기에도 딱이다. 유럽에서는 왜건의 인기가 높긴 하지만 가족 여행이라면 미니밴 만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이미 몇 번 시승해 봤지만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계기판은 여전히 신선하다. 대형 모니터에 각종 계기와 정보들이 깔끔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인터페이스 구조는 다른 차들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식과 조금 다르고, 그림과 의미도 서로 매치가 잘 안 돼 처음엔 기능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큰 문제는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왼쪽 계기는 디지털 속도계를, 오른쪽에는 네비게이션 화면을 주로 이용하였고, 가운데 트립컴퓨터 수치에도 많이 집중했다. 예상 총 주행거리가 3~4천km정도 되니 연비가 어떻게 나오는지 수시로 체크하게 됐다.
시트로엥 C4 그랜드 피카소에는 2.0 터보 디젤엔진과 6단 자동 변속기가 얹혔다. 최고출력 150마력과 최대토크 37.7kg.m를 발휘한다. 유로 6를 만족시키며 오염 물질 배출도 크게 감소됐다. 2.0 디젤 엔진 덕분에 그랜드 피카소의 주행은 상당히 여유롭다. 가속도 경쾌하고, 고속도로에서 가끔 고속으로 밟아도 듬직하게 속도를 높여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시트로엥이 자랑하는 매우 안정적인 하체다. 편안하면서도 안정성이 뛰어나 장거리 여행에 말 그대로 제격이다. 사실 그랜드 피카소는 혼자 여행하기에 과분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번 여행에 매우 듬직한 동반자가 돼 줬다.
3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몽생미셸 근처에 이르자 멀리서 수도원의 첨탑 끝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몽생미셸을 직접 보는구나. 시간은 6시 반이 넘어가는데 아직 해가 떨어지기 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가까이 가면서 시골 논 옆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몽생미셸이 아직 멀리 있어서 배경에 조그맣게 나오는 정도였다.
서둘러 몽생미셸 앞으로 가려고 길을 재촉하는데, 앞에 차단 봉이 나타났다. 그런데 어디에도 돈을 내거나, 표를 끊거나 하는 곳이 보이지 않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다. 이건 뭐지? 차단 봉 앞까지 가도 열리지는 않는다. 살펴보니 영어로 비상시에만 통과할 수 있다고 적혀 있고, 인터폰 버튼이 하나 붙어 있다. 인터폰을 눌렀더니 한참 후에야 응답이 오는데, 통과할 수 없단다. 외곽에다 차를 주차하고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단다. 이런!!! 내가 몽생미셸까지 온 것은 수도원을 구경하겠다는 게 아니고, 수도원을 배경으로 피카소 사진을 찍겠다는 건데, 대충 봐도 몽생미셸은 배경으로 찍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을 찾았다. 역시 주차장에선 이런 저런 장애물에 가려서 몽생미셸이 보이지도 않고, 설령 보인다 하더라도 너무 멀고 앵글도 안 맞다. 망원렌즈라도 갖고 왔으면 오던 길 가 어디에 세우고 멀리서 당겨서 찍어 볼 수도 있을 텐데, 이번 출장길에는 표준 줌만 달랑 갖고 왔으니 낭패다. 다시 주차장을 나와서 주변 동네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촬영하기에 마땅한 포인트가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구글지도를 펼쳤다. 길이 막힌 곳은 D275번 노란색 길 위였고, 마침 지도 상에는 작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몽생미셸 가까이까지 갈 수 있는 포인트(지도 속 빨간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이 논인지 뻘인지, 또 실제 그 곳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다. 일단 가보는 거다.
지도를 보며 주변 동네를 헤매다가 강을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찾았다. 차 한대 밖에 지날 수 없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 다시 지도를 보며 가는데도 동네에서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결국 지도상의 원하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길의 마지막 수백미터는 제방 위에 있는 ‘농로’다. 그야말로 농사를 짓기 위해 경운기나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이다. 어쨌든 길은 길이다. 분명 트랙터 같은 차량이 다닌 흔적이 선명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
차에서 내려서 잠시 길을 살펴 본 후에 농로를 따라 그 길의 끝까지 갔다. 승용차 수준의 하체를 가진 피카소가 가기에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 길의 끝부분에서는 120도 정도로 꺾어져서 몽생미셸의 반대편으로 길이 이어졌는데, 그 꺾어진 부분에 약간의 공터가 있었다. 마주 오는 트랙터가 있으면 비껴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천만다행이다.
그 곳에서 차를 돌리기도 하고 앵글을 살펴가면서 차의 위치를 정하는 사이 해는 서쪽으로 사라져 간다. 하늘에 구름은 없지만 아쉽게도 바다 쪽에 옅은 안개가 있어서 화려한 노을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아쉬운 중에 대만족이다.
몽생미셸 바로 밑 주차장에다 차를 멋진 각도로 세우고 촬영하려고 했던 꿈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은 것도 같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다행이지만 굳이 한 가지 아쉬움을 이야기하자면 바닥의 분위기가 피카소보다는 칵투스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칵투스와 함께 왔다면 정말 최상의 궁합이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린 노르망디를 서둘러 떠나야 할 시간이다.
파리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였다. 호텔 근처 대로변 주차라인에 마침 자리가 하나 있어서 차를 세우고는 아침 10시까지 주차하기로 하고 주차요금을 지불했다. 요금이 무척 싸게 나왔다. 횡재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밤부터 아침 9시까지 요금을 안 받는 것이었다. 결국 밤새 주차요금이라고 생각한 것이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주차요금이었던 것이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서둘러서 몽쥬 약국에 갔다. 한국사람들에게 너무나 유명해진 곳인데, 약국이라기 보다는 기능성 화장품 등을 국내보다 무척 싸게 살 수 있는 주요 쇼핑코스 중 하나다. 비록 아내가 보내온 쇼핑 리스트에 맞춰서 구입하긴 했지만 그 아이템들 덕분에 확실히 아내에게 점수를 딸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쇼핑을 마치고, 다시 파리 시내에 있는 지인을 만나 파리 근교로 나갔다. 마침 그 근처에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내고, 묻힌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있었다. 지인의 안내로 그 동네에서 고흐의 흔적들을 둘러봤다. 피카소를 타고 피카소의 흔적을 찾아 떠나기 전 고흐를 먼저 만난 것이다, 그것도 우연히.
그 작은 동내 곳곳에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된 곳 마다 고흐의 그림과 설명이 안내되어 있었다. 고흐 그림 속의 실제 배경을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재미가 독특했다.
마지막으로 고흐의 무덤도 찾았다. 동생과 함께 나란히 묻힌 고흐의 무덤은 세계 적인 대가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했다. 그 동내 다른 평범한 사람의 무덤과 차이가 없었다. 어찌 보면 이런 게 정말 멋진 인생일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들이 남아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데 무덤이 화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그의 그림이 유명해 진 것은 그가 죽고 난 후의 일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는 지방 영주의 성도 잠시 둘러봤다. 성안을 구경하진 않고 성을 배경으로 사진만 몇 장 찍었지만 성은 참 멋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성은 그리 크지 않은 시골 성이란다. 그 사실은 오후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중 들른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 보고서 실감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 넓은 정원까지 여유 있게 둘러봤다.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파리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에펠탑을 찾았다. 이틀 전 박람회장 언덕에서 잠시 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에펠탑을 배경으로 피카소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였다. 마침 잠시 차를 세울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어서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에펠탑 주변을 두어 바퀴 돌아서 주차 공간을 찾아 주차를 했다. 우와, 내가 에펠탑 옆에다 주차를 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누가 그러더라, 타워에 올라가려고 줄 서지 말라고. 그래서 타워에 올라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유 있게 산책하면서 에펠탑을 감상했다.
노을이 아름답게 붉어질 즈음 8시 정시가 되자 타워에 일제히 반짝이는 불들이 들어왔다. 매 정시마다 5분(?)간 타워 전체에 반짝이는 불이 들어 오는 거다. 노을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에펠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에펠탑 바로 아래 있다 보니 탑을 찍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좀 더 예쁘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늘 그렇듯이 ‘자동차와 함께’가 아니면 그냥 기념 사진일 뿐이니 이렇게 담은 것 만으로도 만족할 만했다.
예약해 놓은 게스트 하우스로 향하는 길에 퐁네프를 찾았다. 줄리엣 비노쉬의 여러 영화들 중 ‘퐁네프의 연인들’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 퐁네프 다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거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어두울 만큼 이미 시간이 늦어서 근처에 주차하고, 잠시 다리 위를 거닐며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 파리에서의 봄 밤은 그렇게 뽕네프 다리 아래 세느 강물을 따라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