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자동차 브랜드-특히 긴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들은 응당 자기만의 지독한 고집을 가지고 있다. 가령 포르쉐는 수십 년동안 공랭식 엔진을 911의 차체 뒷쪽에 배치했고, 페라리는 레이스카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스포츠카를 제작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고집이 고성능 브랜드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볼보는 2020년까지 볼보 차량의 교통사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제로(0)로 만들겠다며 안전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다.
독일어로 “Freude am Fahren”, 우리말로 하면 “운전의 즐거움”을 모토로 삼는 BMW에게도 그런 고집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운전의 재미를 위해 후륜구동(또는 후륜기반 4륜구동) 자동차만 만든다는 원칙이다. 동물에 빗대어 후륜구동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었고, 브랜드의 가장 작은 모델인 1시리즈 해치백조차 동급에서는 보기 드물게 후륜구동을 채택했다. 실제로 1916년 설립 이래로 지난 100년여 간 BMW 뱃지를 단 전륜구동 양산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2014년까지는 말이다.
2012년, BMW 액티브 투어러 컨셉트카가 등장했다. 2시리즈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후륜구동인 2시리즈 쿠페와 달리 전륜구동 파워트레인을 얹는다는 소식에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BMW가 전륜구동이라니! 포르쉐가 처음 SUV와 세단을 만들 때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심지어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C-세그먼트 MPV라는 것은 BMW의 세력 확장 욕심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BMW가 꼭 이런 차까지 만들어야 하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어쨌든 2014년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는 컨셉트카의 모습 거의 그대로 시판됐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에도 선보였다. 여전히 브랜드 최초의 전륜구동이라는 타이틀은 화제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운전의 즐거움을 간판으로 내건 BMW가 그저 몇 대 더 팔자고 MPV를 만들었을 리 만무하다. 앞바퀴 굴림으로 시작된 BMW 변화의 바람, 액티브 투어러를 시승해 봤다.
첫 인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명확한 패밀리 룩을 지닌 BMW 특유의 디자인 덕도 있지만, 전체적인 비례가 기아차 ‘카렌스’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1.5박스 바디 타입은 유럽에서는 흔하다. 앞서 한국에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B 클래스도 비슷한 비례를 가지고 있다. 컴팩트한 차체지만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액티브 투어러의 족보를 따지자면, BMW 그룹 산하 브랜드인 ‘미니’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액티브 투어러는 3세대 미니(코드명 F56)와 UKL1 플랫폼을 공유한다. 물론 BMW의 주행 감각에 맞는 설계가 더해졌다. BMW 뱃지를 단 전륜구동 모델은 액티브 투어러가 처음이지만, 이미 BMW 그룹은 미니를 성공적으로 키워내면서 전륜구동 개발 노하우를 쌓아왔다. 이제서야 전륜구동이 적용된 것은, 미니를 만들어 오면서 쌓인 “이제는 전륜구동으로도 우리가 지향하는 주행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장*전폭*전고는 4,342*1,800*1,555(mm), 휠베이스는 2,670mm다. 폭스바겐 골프보다 약간 큰 정도로, 현행 BMW 모델 중에서는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전륜구동은 프로펠러 샤프트가 없기 때문에 공간활용도가 뛰어나고, 특히 이렇게 컴팩트한 세그먼트에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MPV의 경우 필수적인 요소다. 실제로 비슷한 크기의 해치백인 1시리즈와 비교해봐도,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고 A 필러를 앞쪽으로 당겨 훨씬 넓은 캐빈룸을 확보한 것을 알 수 있다.
헤드램프는 바이-LED 타입으로, BMW의 소형 라인업 중에는 최초로 적용된 LED 헤드램프다. 상급 모델들과 달리 ‘앞트임’ 패밀리 룩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근육질의 라인들이 돋보인다. 뒷모습에는 BMW의 대표적인 ‘L’ 형태의 테일램프가 적용됐는데, D 필러가 꼿꼿이 선 MPV형 바디에 적용된 모습은 아직 낯설다. 어쨌든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액티브 투어러가 BMW 가족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전륜구동 채택의 힘은 실내에서 드러난다. 액티브 투어러의 실내는 넓다. 절대적으로 넓은 것은 아니지만, 5명이 타고 짐을 싣기에 충분히 넓다. 프로펠러 샤프트가 없어지면서 센터 터널이 대폭 낮아졌는데, 덕분에 1열 센터 콘솔도 낮아져 개방감이 더해지고, 2열 가운데 좌석도 앉을 만 하다. 여담이지만 기존 1시리즈의 2열 가운데 좌석은 끔찍하게 좁고 불편했다.
시트 포지션이 BMW 치고는 높지만, 이 차가 MPV라는 것을 고려하면 낮은 편이다. 대개 껑충한 시트 포지션을 갖춘 여느 MPV와 달리, 액티브 투어러의 시트 포지션은 비유하자면 일반적인 승용차 수준이다. 그럼에도 넓은 윈도우와 윈드실드, 전진한 A 필러로 인한 사각을 최소화 하는 쿼터 패널 글래스 등의 설계로 시야는 좋은 편이다. 실용성과 운전 감각의 절묘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BMW가 자랑하는 HUD가 전 모델에서 배제된 점은 아쉽다.
센터페시아는 운전석을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어 조작성이 좋다. 최신 BMW 모델 중에는 이례적으로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 시프트 레버가 적용돼 있다. 가죽 부츠로 덮여있는 BMW의 시프트 레버라니, 요즘 기준에서는 퍽 이색적이다. 탁 트인 1열 곳곳에는 수납공간이 있는데, 도어 트림에는 1.5L 페트병도 수납할 수 있다. 암레스트를 겸하고 2단 수납공간을 갖춘 센터 콘솔 형태는 미니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납공간이 풍부한 편은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MPV의 경우 패밀리 카로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수납능력은 필수적인 덕목이다.
뒷좌석의 높은 실용도는 액티브 투어러가 지금까지의 운전자를 위한 BMW와는 궤를 달리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2열 시트는 전후 13cm나 슬라이딩이 가능하며, 40:20:40 폴딩을 지원한다. 시트 폴딩 시에는 트렁크 적재용량이 468L에서 최대 1,510L까지 늘어나 웬만한 짐도 거뜬하다. 양쪽 좌석 모두 ISOFIX가 탑재돼 있고, 가운데 좌석에도 헤드레스트와 3점식 안전벨트가 적용돼 안전에 대해서도 걱정이 없겠다.
더불어 액티브 투어러는 전 모델에 도어 핸들을 터치해 문을 잠그거나 열 수 있는 컴포트 액세스와 발 동작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는 전동식 테일게이트가 기본 탑재된다. BMW는 유독 국내 수입 모델 기본 트림에 이 기능을 빼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여성 운전자가 많고 패밀리 카로 활용되는 모델인 만큼 편의사양을 적극적으로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패밀리 카라고 해도 BMW인 이상 주행 성능을 완전히 제쳐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에서 액티브 투어러는 가솔린 3종, 디젤 3종 등 6가지 심장을 얹지만 한국에는 218d 한 종류만 들어오고 있다. 성능과 내구성을 개선하고 유로6 배출가스 규제를 준수하는 2.0L 직렬 4기통 트윈파워 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3.7kg.m의 경쾌한 성능을 낸다. 이와 함께 새로이 개발된 8단 스텝트로닉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효율과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모두 살리는 데에 촛점을 맞췄다.
출력에 비해 가속은 제법 경쾌하다. 디젤 엔진의 특성 상 고회전에서는 약간의 토크 하락이 느껴지지만, 실용영역에서는 반응 속도가 느리다고 느낄 겨를 없이 가벼운 엔진 반응이 인상적이다. 또 동급 경쟁 엔진 대비 소음 진동이 심하게 느껴졌던 구형 엔진에 비해 NVH 대책이 대폭 강화된 점도 인상깊다. 동승자들이 디젤 엔진이 맞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매끄러운 변속 실력을 뽐내는 변속기는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의 빠른 변속과 회전수 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포츠 모드와 달리 에코 프로, 컴포트 모드에서는 간혹 너무 빨리 변속해 원하는 가속을 하지 못하거나 다시 시프트 다운을 하면서 울컥임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변속기의 움직임은 심한 충격 없이 매끄럽게 이뤄진다.
코너링이나 요철을 넘을 때의 감각은, ‘보다 부드러워진 미니’에 가깝다.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주행 감각이 BMW의 예리함보다는 미니의 발랄함과 더 비슷하다. 코너를 재치있게 빠져나가는 손맛이 있다. 무거운 디젤 엔진과 전륜구동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BMW의 집착은 사라지지 않아서, 무게배분은 거의 50:50에 가깝다. 덕분에 전륜구동 디젤차에서 흔히 느껴지는 언더스티어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전반적인 코너링 성능은 뉴트럴 스티어와 약한 언더스티어를 오가는 수준이다. 쉽게 풀어 쓰자면, 레이아웃에 비해 뛰어난 코너링이라는 뜻이다.
고속화 도로에 올라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아보면 수치 상의 제원 이상으로 꾸준하고 뒷심있는 가속이 이뤄진다. 0-100km/h 가속 시간은 8.9초이고 안전 최고속도는 210km/h인데, 체감은 그보다 빠르다. 특히 작고 무게중심이 높은 차체와 205mm의 좁은 타이어 트레드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고속 안정성을 자랑한다. 적당히 무거워지는 스티어링 휠은 운전이 능숙하든, 그렇지 않든 액티브 투어러의 고속주행에 별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스티어링 휠을 틀어 고속에서 차선 변경을 해 보면, 아찔할 정도의 휘청임이 느껴진다. 형편없이 자세가 흐트러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방금 전까지의 고속 안정감이 무너지는 느낌은 분명하다. 스포츠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55 시리즈의 고편평비 타이어 때문일까? 아니면 제법 부드러운 서스펜션 탓일 수도 있겠다. 과격하게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고속에서 코너링이나 차선 변경이 불안정한 느낌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중저속 영역의 부드러우면서도 명쾌한 코너링에 비하자면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공인 연비는 복합 17.0km/L, 도심 15.6km/L, 고속 19.1km/L이다. 시승 간의 실연비는 도심에서는 14km/L 정도로 공인 연비보다 조금 낮았지만 고속도로에서 80~100km/h를 오가는 주행 시에는 24km/L까지 손쉽게 올라갔다. 도심 연비도 큰 부담이 없지만 장거리나 고속도로 주행이 많다면 연비 면의 부담은 거의 없겠다.
액티브 투어러는 BMW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앞바퀴에서 시작된 변화가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해외에서는 액티브 투어러의 7인승 버전인 그란 투어러까지 등장했다. 장차 BMW는 1, 2시리즈 라인업을 모두 전륜구동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 처음 시작하는 전륜구동이 낯설거나, 뭔가 불편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수입 MPV의 파이는 작기 때문에 절대적인 판매 볼륨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BMW의 감각적인 드라이빙 성능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넓은 공간과 경쟁 모델 대비 합리적인 가격, 높은 상품성을 두루 갖춘 액티브 투어러가 이 세그먼트의 구입을 고려하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가치는 충분하다. 비단 메르세데스-벤츠 B 클래스 뿐 아니라 C-세그먼트 해치백들과도 경쟁할 수 있겠다.
변화는 늘 진통을 동반한다. 전통적인 BMW 매니아들은 전륜구동 모델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앞서 포르쉐가 팬들의 엄청난 비난에도 불구하고 카이엔과 파나메라를 성공시키며 스포츠카 개발의 자본적 주춧돌을 쌓아 온 것을 우리는 이미 봐 왔다. 전륜구동 엔트리 모델을 통해 보다 넓은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것은 보다 본질에 가까운 BMW를 만들기 위한 초석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 편으로는 집요했던 100년의 고집을 현실의 벽 앞에 꺾는 모습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어쨌든 라인업 확장을 통해 더 BMW다운 BMW를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면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닐까. 액티브 투어러가 단순히 ‘BMW가 만든 전륜구동 MPV’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