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글로벌 800만대 판매를 달성한 현대자동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다.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최근 현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고성능 자동차를 통한 기술 개발과 브랜드 이미지 향상인데, 이를 위해 재 도전한 WRC에서는 이미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더불어 고성능차 전용 브랜드 ‘N’에 대한 전략도 구상하고 있다. WRC에서의 성과는 대회 즉시, 혹은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WRC에서 습득한 기술이 구체적으로 흘러 들어갈 N브랜드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가운데, 최근 서울모터쇼를 통해 N브랜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힌트들이 제공되고 있다.
첫 번째는 지난해 부산모터쇼에 선보인 벨로스터 미드십 쇼의 후속인 ‘RM15′ 컨셉트카이고, 또 하나는 ‘현대 테크 토크’였다.
현대차는 지난 9일 서울모터쇼 현대차관에서 일반 관람객과 미디어를 위한 ‘현대 테크 토크’를 진행했다. 토크쇼 형식을 빌어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는 자리였는데, 이날은 현대차관에 전시되고 있는 미드십 컨셉트카 RM15의 개발과정과 성과, 적용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고성능 브랜드 N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다루었다.
먼저 결론을 정리하자면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로 ‘N’을 곧 정식 런칭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현재 다양한 모델을 연구개발하고 있는데, 그 중 컨셉트카 RM15는 양산차 브랜드였던 현대차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고성능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 연구를 하고 있는 꼭지점에 있는 모델이다. RM15를 통해 확보된 극한의 고성능차 기술을 향후 여러 모델에 적용해 다양한 고성능 자동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가 N브랜드를 통해 고성능차를 선보인다고 할 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폭스바겐 골프 GTI, 골프 R, BMW M3, M5 등 양산차를 베이스로 고성능을 더한 모델들과 제네시스 쿠페의 성능을 한층 더 강화한 모델, 컨셉트카 RM15의 양산형 모델, 더 나아가 RM15의 미드십 기술을 활용한 고성능 미드십 스포츠카 등을 추측해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어떤 모델이 실제 출시될 가능성이 높은 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012년 고성능차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그 조직을 통해 다양한 고성능 모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정점으로 선행 프로토타입 프로젝트인 RM15가 개발되어 실제 테스트되고 선을 보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현대차는 RM15가 단순한 쇼카가 아니라 기술개발을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실제로 달리는 차임을 보여주기 위해 영암서킷에서 주행하는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고성능차 차체설계팀 박창욱 팀장은 “RM15와 같은 극한의 고성능 미드십 차량을 연구함으로써 기술 수준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게 되면, 향후 다양한 양산 모델에 좀 더 낮은 수준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쉬울 것으로 본다.”고 말해 현재까지 현대의 고성능차 개발의 정점이 바로 RM15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RM15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기술 개발이 된 것일까? 이날 테크 토크를 통해서 RM15를 직접 개발한 여러 연구원들이 다양한 기술과 개발 과정을 소개했다.
고성능차라 하더라도 앞바퀴굴림(FF)이나 뒷바퀴굴림(FR)도 많이 있는데 왜 일부 수퍼카에만 적용되는 미드십엔진/뒷바퀴굴림(MR)방식 차를 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성능차 성능개발 1팀 황인진 책임연구원은 “과거 타 브랜드의 미드십 스포츠카를 처음 경험해 봤을 때 받았던 엄청난 충격 때문에 늘 미드십을 생각해 왔었고, 현대자동차에서 시작하는 첫 고성능 차로 꼭지점인 미드십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양산차 메이커인 현대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개발해 본 적이 없는 고성능 미드십 차량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면 최고의 고성능 차 기술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또한 미드십 레이아웃의 장점으로 뛰어난 코너링 성능을 들었는데, 고성능 차는 빠르게 가속하고, 정지하는 것 뿐 아니라 빠르게 도는 것이 중요한데, 잘 돌기 위해서는 한계상황에서 그립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고, 중량배분 면에서 미드십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부산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벨로스트 미드십 쇼카를 선보였고, 이번에 다시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RM5를 선보였다고 한다. RM15는 ‘레이싱 미드십 2015′를 의미하는데, ‘RM’이라는 이름은 현대차 그룹 디자인 총괄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벨로스터 바디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벨로스터가 예쁘기 때문이었고, 미드십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후 설계, 제작, 성능 육성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양산 모델 중에서 기본이 될 모델을 골라야 했다고 한다. 벨로스터는 휠베이스가 2,650mm로 미드십 고성능 스포츠카에 적합한 크기이며, 휠베이스와 트레드의 비례도 무척이나 중요한데 벨로스터의 트레드가 미드십으로는 좀 좁은 편이라 트레드는 확대해서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선보인 벨로스터 미드십 이후 RM15는 2대를 제작해 이미 영암서킷을 500랩 이상 돌았으며, 그 중 한 대가 서울모터쇼에 전시되었고, 지금도 한 대는 영암 서킷에서 열심히 성능 향상 중이다. 처음 제작한 RM15가 테스트 도중 크게 부서지는 사고가 있었고, 이를 통해서 안정성과 안전에 대해 더 높은 기준을 수립하고, 1대를 더 제작하게 되었다.
RM15에 적용된 기술들을 살펴보면, 우선 뛰어난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개발 적용했고, 차체 뒷부분 미드십에 장착되는 엔진 공간을 위해 롤 케이지를 부착했다.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차체 비틀림 강성은 37,800Nm/deg를 달성했는데, 이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34,000Nm/deg보다도 높은 수치다. 미드십 레이아웃을 통해 중량배분은 43 : 57을 달성했다.
뛰어난 접지력을 위해 서스펜션은 고성능 수퍼카에 적용하고 있는 인휠 더블위시본 구조를 적용했고, 단조 휠과 미쉐린 파일럿 수퍼스포츠 타이어를 장착했다.
벨로스터 미드십의 경우 최대 횡G가 1.39G를 달성했는데, 이는 고성능 수퍼카 수준이다. 하지만 당시 목표는 1.4G였고, 불과 0.01G의 아쉬움 때문에 또다시 성능 개선을 하게 됐다고 했다.
고성능 엔진 못지 않게 경량화가 무척이나 중요한데 개발팀은 경량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다양한 곳에서 얻었다.
첫 번째는 옛날 할머님이 쓰시던 대나무 소쿠리로, 탄력 있는 대나무를 서로 엮음으로써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구조를 형상할 수 있는 데서 착안해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개발했다.
두 번째는 WRC 경기 중 현대의 i20 WRC카가 코스를 벗어나면서 독일의 포도밭으로 6회전 전복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런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가 무사했으며, 차체의 변형이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1cm 이하여서 수리 후 다시 경기에 참가해 우승까지 이룬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롤 케이지 강성의 중요성을 확인하였고, RM에도 엔진부에 롤케이지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피겨여왕 김연아의 스핀과 회전 관성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낮은 속도로 스핀할 때는 몸을 뻗어 우아한 자세를 연출하지만, 빠른 속도로 스핀할 때는 몸을 오므려 고회전을 완성하는 것을 볼 때, 무게 중심에서 가장 먼 부품의 경량화가 반응성 향상의 포인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해 차체 외판에 가장 가벼운 CFRP를 적용함으로써 137kg을 감소시켰고, 차량 전체로는 총 195kg 경량화를 이뤄 차체 중량은 1,260kg에 불과하다. 또한 지붕에도 CFRP를 적용해 무게 중심을 낮췄다.
고성능 차에서는 다운포스도 무척 중요한데, RM15는 차체 전면과 지붕, 측면, 바닥 등 모든 면의공기 흐름을 분석, 연구하여 최선의 컨티션을 확보했고, 대형 GT 윙을 더해 200km/h에서 124kg의 다운포스를 발생시킨다. 이는 일반 수퍼카보다도 6~7배나 더 높은 성능이다. 이처럼 강력한 다운포스가 발생되면 코너링에서 더 뛰어난 접지력으로 안정적으로 돌 수 있긴 하지만 가속에는 불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극한의 성능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이러한 시도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엔진은 2.0 터보 GDI 엔진을 뒤로 돌려서 미드십에 장착하고, 6단 수동 변속기를 적용했으며, 최고출력은 300마력/6,000rpm, 최대토크 39kg.m/2,000rpm, 0~100km/h 가속은 4.7초에 불과하다.
SNS를 통해 들어온 질문 중에는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면 좌우측 토크가 달라져 컨트롤 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RM15는 엔진을 가로배치하고 좌우 드라이브 샤프트의 길이를 같게 만들었는데, 토크의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좌우 샤프트의 직경을 각각 25파이와 28파이로 다르게 했다고 한다.
이번 모터쇼를 통해서 무대 전면에는 미드십 컨셉트카인 RM15가 등장했지만 실제 고성능 브랜드N을 통해서 선보일 모델들은 골프 GTI와 같은 FF나, 골프 R같은 4WD 모델들도 있을 텐데 그런 모델들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RM15가 기술개발을 위한 선행 프로토타입 프로젝트의 최고 정점임을 감안하면 힌트가 될 것이라는 답변을 함으로써 현재 다양한 모델 개발이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더불어 조만간 N 브랜드와 관련된 정보들을 순차적으로 조금씩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RM15의 양산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고객의 반응이 뜨거우면 양산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므로 고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현대자동차의 N 브랜드 개발은 분명히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이미 시작을 했으니 잘한 일이다. RM15의 성과도 첫 시도로서는 무척 고무적이다. 하지만 RM15의 양산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산형 모델의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할 것이며, 각 모델들의 완성도를 얼마나 끌어 올리느냐가 더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고성능 차를 위해 개발된 기술을 통해 현대자동차 전체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또한 역시 중요하다.
현대 고성능차 개발 연구원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이제 조금 더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자.